무슨 말이 필요해, 그냥 안아줄게.

다친 아이의 마음을 안아주다.

by 유강

큰아이가 또 작은애를 울렸다.

퇴근 후 집에 들어선 나에게 작은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엄마, 누나가 현관문을 안 열어줬어. 그래서 할머니 집으로 갔다가 다시 왔는데도 문을 안 열어줬어."

"그랬어? 아이코 우리 아들 속상했구나."

"문 열어 달라고 소리쳐도 안 열어줬어. 엉엉, 엉엉엉... 그래서 발로 문을 막 찼는데도 안 열어줘서 다시 할머니 집으로 갔어. 엉엉엉.."

"저런, 누나가 많이 잘못했네. 우리 아들 얼마나 화가 났을까?, 날씨도 더운데 힘들고 화났겠네."

아들은 많이 억울하고 화가 났는지 나에게 쏟아놓으며 점점 큰소리로 울었다.




5살 차이의 아이들은 초등 6학년, 1학년이었다.

4-5년 동안 시댁의 대가족 속에서 큰아이는 점점 '악동'이 되어가고 있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개구진 큰아이는 조부모에겐 늘 꾸중의 대상이었고 사려 깊고 자상한 작은아이는 그들의 귀염둥이였다. 할머니에게 혼이 난 큰아이는 분풀이 대상인 작은 아이에게 또 짓궂게 굴었고 그러면 할머니는 큰아이를 또다시 혼내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었다.

시댁에 더 있다가는 두 아이 다 망가질 것 같다고 느낀 나는 서둘러 분가를 했다.

하지만 이미 큰아이의 마음엔 깊은 상처가 자리 잡았고, 그 깊은 상처에서 나오는 독화살을 조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던 남동생에게 가감 없이 쏟아붓고 있었다.


그즈음 나는 몇 년 동안 공부하던 상담이론의 상담자 훈련 세션에 참여하고 있었다.

매달 있었던 훈련 세션에서 우리는 집단상담을 받으며 성격이론과 상담기법을 배우는 중이었다.

집단상담이 시작되면 우리는 지난 한 달 동안 자신의 가장 큰 어려움이었던 것들을 집단에 내어놓는다.

그리고 집단 구성원들의 피드백과 지도교수님의 코멘트를 받으며 자신과, 자신이 직면한 어려움을 이해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는 했었다.


매 세션마다 나의 가장 큰 이슈는 당연히 늘 말썽을 피우고 다루기 힘들었던 큰아이였다.

오죽했으면 매번 아이 문제를 내어놓는 나를 보고 지도교수님은 "너희는 부부 문제는 없냐?"고 웃으셨다.

젊은 나이의 내게 크고 작은 부부문제가 없었을리가..

다만 그때의 내눈에는 아이의 상처난 마음과 비틀린 행동이 가장 아프게 들어왔고 상담전문가인 지도교수님과 동료상담가들의 의견이 절실했다.

여러 회차에 걸친 분석과 상담으로 큰아이의 성격적 특성과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던 나였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녀석의 문제행동은 쉽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살면서 우리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사랑과 관심, 칭찬 같은 '긍정적인 인정 자극( Stroke)'이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원하는 사랑과 관심 주기에는 인색하고 비난, 질책, 무시 같은 '부정적 인정 자극'을 주는데는 익숙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그런 세상으로부터 긍정적 인정 자극이 주어지지 않을 때, 부정적 인정 자극이라도 얻어내기 위해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부린다.

무관심보다는 세상사람들의 부정적인 시선과 관심일지라도 있는 것이 나으니까.

아니, 긍정이 아니면 부정적인 스트로크일지라도 있어야 우리는 살아갈 수 있으니까.


교실 안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의 긍정적 관심과 지지를 못 받는 아이가 계속해서 말썽을 피우며 주목을 끄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게다가 교실 안 말썽꾸러기는 긍정적 피드백 대신 꾸중과 비난 같은 부정적 피드백일지라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관심을 얻는 데 성공하게 되면 점점 그런 문제행동을 계속하게되고 패턴화 시킨다.

이것을 내가 공부한 이론에서는 심리적 'Kick me.'게임이라고 한다.

관심을 주지않는 세상에 말썽을 피워서라도 "날 좀 봐달라"고 외치면서 걷어차일 상황을 만드는것.


큰아이는 전형적인 'Kick me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걸핏하면 야단치는 조부모,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만 듣고 "너, 도대체 왜그러냐"며 훈계하고 타이르기만 하는 부모, 따뜻하고 좋은 피드백에 굶주린 아이는 동생을 울려서라도 우리 부부의 관심(꾸중)을 얻어내려고 했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패턴화된 문제행동은 해결이 요원해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해결방법을 못찾고 고민만하던 내게 지도교수님이 툭 던지듯 하신 한 말씀.

"그냥 아무 말 없이 안아주면 어떨까?, 그게 아이가 원하는 것이지 않을까?"

순간, 머릿속이 번쩍하며 "이것이다!!"싶었다.


그다음 날부터 나는 큰아이를 안아주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방법은 퇴근하고 집에 도착해, 신발도 벗지 않지 않은 채 현관에 서서 가장 먼저 안아주기.

직장에서도 아이들과 전화로 필요한 것들은 의사소통하고 있었지만( 그때의 직장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시도 때도 없이 전화로 아이들을 챙겨야 했던 나를 이해해주었던 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의 퇴근은 아이들에게는 매일 갖는 작은 기다림의 이벤트였다. 엄마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쏟아내는 아이들의 하루 일과와 그것을 들으며 저녁을 준비하는 우리의 시간들.

나는 그 이벤트에 앞서 중요한 한 가지 의식(Ritual)을 추가하기 시작했다.


"딩동"

"엄마야. 문 열어줘."

거의 예외 없이 큰아이가 문을 연다.

그러면 나는 가방만 바닥에 내려놓은 채 현관에 서서 큰아이를 담뿍 안았다.

처음엔 "엄마 왜 그래?"라고 어색해하며 나의 포옹을 밀쳐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안아주고 싶어서." 하고는 아이를 끌어다 다시 안아주었다.

둘째 날은 마지못해 끌려와 가슴만 안기고 두 팔은 엉거주춤 늘어뜨린 채 안겨왔다. 어색하기 그지없게.

세째날부터는 그냥 멋쩍게 안기기 시작했다.

다음날부터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뛰어와서 나에게 안겼다.

안고 안긴 채 한참을, 우린 3분여 이상 서로를 가만히 안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둘이 서로 안고 있으면 나도, 아이도 온전히 가슴을 맞대고 우리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온 마음으로 하는 포옹이 끝나면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등에 얹은 두 손으로 서로의 등을 토닥토닥 하면서 포옹을 풀었다.

정말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나도, 큰아이도.


그렇게 일주일 정도 지난 어느 날, 포옹을 풀면서 큰아이는 "엄마, 이젠 안 안아줘도 돼"라고 내게 말했다.

큰아이는 내 포옹을 받으며 내가 말로는 전할 수 없었던 '그 무엇인가'를 전달받고 이해했던 것 같다.

그런 이해는 아이를 순하게 만들었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편애하는 동생'이 아니라 그냥 '내 남동생'으로 동생을 대하기 시작했다.


채 한 달이 안되어 큰아이가 몰라보게 달라졌다.

더 편안해졌고 무엇보다 동생을 덜 괴롭혔다.

왜 안 그렇겠나, 동생을 울려서라도 끌어내려던 나의 관심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으니.

그러면서 자연스레 동생과의 사이가 나아져갔다.


정말 한동안 내 삶의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였던 큰아이의 '인정 자극 배고픔( Stroke Hunger)'.

사랑과 관심에 허덕거리며 말썽을 피워서라도 부모의 관심과 시선을 끌어오려 하던 아이의 상처 난 마음.

훈련 세션마다 분석과 이해, 해법의 실마리를 찾아 고민하던 나의 시간들.


아이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말썽에도 불구하고( 생각건대 그것도 사실은 어른들 관점에서의 말썽이었으리라) "너를 이해하고 사랑한다"는 부모의 무조건적 사랑과 지지였던 것 같다. 나의 포옹은 아이로 하여금 더이상 말썽을 부릴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해 주었으리라.


복잡한 가족관계 속에서 악동이 되어가던 큰아이에게 "네가 왜 그러는지 알아. 그래서 엄마는 너를 그냥 안아줄 거야"라고했던 나의 포옹이 가져온 작은 기적이었다.

어떤 때는 많은 말보다 진심 어린 단순한 몸짓과 행동이 사람을 바꾸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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