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에 갇혀 둘만의 시간을 갖다.

함박눈이 딸과의 특별한 시간을 선물했다.

by 유강

올해 첫눈이 내렸다. 그것도 함박눈이 펄펄 내렸다.

점심 즈음부터 가늘게 내리기 시작한 눈은 2시 부터 함박눈으로 바뀌어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바라보는 창밖의 눈은 무딘 마음에도 소담 소담 내려앉아 9년 전 어느 날을 추억하게 만든다.




9년 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겨울방학을 맞아 집에 오기로 되어있는 큰아이를 데리러 갈참이었다.

큰아이가 다니던 학교는 버지니아주 샬롯츠빌에 있었는데 집에서는 세 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문제는 연일 눈폭풍이 몰아닥칠 것이라 방송 예보가 되고 있다는 것이었는데,,,흠,,, 어쩐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 전에 도착할 것이고, 가자마자 아이를 태워 돌아오면 되지 않을까" 가볍게 생각했다.


그렇게 세 시간 반을 쉼 없이 달려 도착한 살롯츠빌.

도시 초입에 들어서자 눈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예보대로 눈폭풍이 다가오고 있나 보다.

그때만 해도 시간적 여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딸은 카페테리아에서 먹을 것을 챙겨 오는 여유까지 부렸다.

불과 몇십분 뒤의 일을 예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니...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호기롭게 출발을 하는데, 아차차, 이런 이런, 벌써 도로가 차들로 꽉 찼다.

우리가 꾸물거리는 사이 캠퍼스의 모든 차들과 나처럼 아이를 데리러 온 차들이 몇십 분 사이에 도로로 모두 쏟아져 나온 것이다.

평소 같으면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던 도로를 빠져나오는데 한 시간 이상이 걸렸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눈폭풍은 바로 우리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사실 내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사는 곳은 학교보다 북쪽이었고 눈폭풍은 밑에서부터 올라오고 있었던 건데, 지리적 상황을 배제하고 시간만으로 괜찮을 거라 생각한 거였다. 그러니 남쪽에 있는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눈이 내리고 있을수밖에.


소쿠리로 쏟아붓는 눈발 속에 꽉 막힌 도로는 움직일 줄을 몰랐고 차 지붕 위로는 엄청난 눈이 쌓이기 시작했다. 앞 유리와 뒤 유리는 완전히 눈으로 뒤덮여 보이지 않았고 몇 차 앞의 어느 낡은 차에서는 연기가 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정지상태에서 엔진만 돌다가 과열되었던가보다.

그렇게 샬로츠빌을 벗어나지도 못한 채 4시간이 흘렀다. 그러는동안에도 눈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렸다.

그것도 함박눈으로. 난생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이와 나는 도저히 이 상태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는 차를 다시 돌렸다. 우선 우리와 차를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렇게 이미 엉망이 된 도로를 유턴해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렇게 찾아들어간 아이의 기숙사에서 우리는 사흘 밤낮을 버텨야 했다.

대학 기숙사의 침대는, 말 그대로 1인용.

1인용도 정말 콤팩트한 1인용이라 두 사람이 도저히 같이 누울 수 있는 면적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쩌랴, 둘이 모로 누워 옆으로 포갠채 잠을 자야 했다.

부족한 온기는 둘의 체온으로 대신했다.


먹는 것? 한가지밖에 없었지만 양은 충분했다.

그 학기에는 아이가 meal plan을 선택하지 않는 바람에 스스로 음식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때 아이가 먹던 음식은 고구마가 주식이었다. 포만감과 다이어트를 겸 할 수 있대나 뭐래나.

한국 마켓에서 박스로 사다준 한국 고구마가 우리 둘의 유일한 삼시 세 끼가 되었다.

사실 나도 고구마를 엄청 좋아한다. 요즈음도 남편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난로라고 자랑하는 손수 만든 화덕 으로 열심히 군고구마를 만들어먹고있다.

하지만 그런 나임에도 불구하고 삼시 세 끼를 전기밥솥에 찐 고구마로 때우려니 이틀째부터는 먹기도전에 신물이 올라오려고 했다.

딸아이는 힘들어하는 엄마를 위해 온 기숙사 건물을 뒤져 어떤 중국 유학생에게서 쌀 한 공기를 얻어왔다.

앗!, 쌀이다!!!

막 지어진 흰쌀밥에 생 김(이것도 녀석의 다이어트식품이었다.)과 간장만으로 먹는 밥이란!!!

내가 먹어본 쌀밥 중 최고였다.


하지만 하루 24시간을 먹고 자는 것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나. 우리가 감옥에 갇힌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소일거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아이의 노트북으로 영화보기!!!

넷플릭스를 이용했는지 아니면 그냥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영화를 봤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우리 둘은 함께 영화삼매에 빠지곤했다.

그때 봤던 영화 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로는 '왕의 남자'가있다.

창밖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화면에서는 남사당의 외줄타기가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지고있었다.


그렇게 삼일 밤낮을 생존 체험처럼 살다가 우리는 만 사흘이 지나 풀려 날 수 있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우리는 그나마 일찍 되돌아와서 그렇게라도 지낼 수 있었지만 도로에서 몇 시간을 더 버티던 사람들은 모두 대학 실내체육관으로 되돌아가서 난민처럼 사흘을 지내야 했단다. 휴우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큰아이는 유독 바디 터치에 목말라한다.

어릴 때부터 그랬는데 짐작키로는 5살 터울의 동생으로 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아이가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대학생활을 하며 많이 외로워 하고있던 때였다.

그때 나는 처음 겪는 눈폭풍속에서 원 없이 아이를 안아주고 원 없이 다독이는 친밀한 시간을 가졌다.

기숙사 건물 밖으로조차 나갈 수 없게 고립된 상황에서 우리 둘은 같이 먹고 같이 자고 같이 놀았다.

같이 영화를 보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성인이 된 딸과 온전히 우리 둘만의 특별한 시간을 가졌다.


삶은 참 미묘하다.

눈폭풍에 갇혀 난감하고 불편했던 삼 일간의 시간이 지금은 너무도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눈폭풍이 아니었으면 대학생 딸과 삼일 밤낮을 함께 보내는 특별한 순간을 어떻게 경험할수있었겠나.

그 뒤 딸과 휴양지에 삼박사일 다녀오는 좋은 시간들도 있었지만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 눈폭풍 속 둘만의 고립이 더 소중하다고 말하겠다.


그 좁은 방에서, 그 좁은 일인용 침대에서, 찐 고구마로 밥을 대신하던 그 시간들은 딸아이도 나도 힘겨웠던 세월 중의 참 휴식의 시간이었고 참 만남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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