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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돌보지 않으면 떠난다.

벌통이 텅텅 비어버렸다. 모두 짐을 싸서 떠나버렸다.

by 유강

그동안 뭐가 그리 분주했는지 모르겠다.

불순한 날씨는 봄인지 겨울인지 모르게 오락가락했고 내 마음도 딸 집으로 한국으로 오락가락했다.

그러는 사이 추적추적 비 많이 오던 봄날은 지나가고 낮이면 90도 가까이 되는 후덥지근한 날들이 이어졌다.

집 주변에 심은 칸나는 싱싱하게 푸른 잎들을 쏘아 올리는데 가제보 앞 큰 나무 아래에 있는 벌통은 웬일이지 잠잠했다. 작년 이맘때엔 몇 차례나 분봉이 이루어지며 두 개의 벌통 주변으로 벌들이 분주했었는데...

어쩐 일인 걸까?

엊그제까지만 해도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열댓 마리의 벌들이 벌통 주변을 날아다녔는데 오늘은 한 마리도 보이 지를 않는다. 사실 벌통 관리는 내 몫이 아니기 때문에 건성으로 보았다. 하지만 건성인 내 눈에도 이건 아닌데 싶었다.

마당을 왔다 갔다 하던 남편과 벌통을 열어보기로 했다. 작년처럼 혹시 룸이 모자라서 분봉이라도 일어날까 싶어 하나 더 올려놓은 벌통은 말 그대로 텅텅 비어있다. 그럴 수 있다. 불순한 날씨에 벌들의 활동이 활발하지 않아 새로운 룸이 필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그 밑의 벌통을 열어보니 참담한 정도다. 붙어있는 벌들이 하나도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벌대신 낯선 무엇인가가 있다.

하얀색 애벌레들이다. 불과 한두 주 만에 벌통의 집주인이 바뀌었다.

벌들이 떠나서 새 집주인이 들어왔는지 아니면 새로운 곤충이 점령해 들어온 것인지는 모르지만 벌집안에 꼬물거리는 흰 애벌레는 평소보다 더 징그럽게 느껴진다.


도대체 벌통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벌집 프레임을 하나씩 꺼내 들고 살펴보니 육각형 작은 벌집들이 죄다 열려있다. 이를테면 벌들이 그동안 열심히 꿀들을 모아 밀랍으로 밀봉해 두었던 것들이 열려있는 것이다.

아,,, 벌들이 이사를 가면서 저장해 놓았던 꿀들까지 몽땅 가지고 가버린 것이다.

밀랍이 죄다 벗겨지고 꿀조차 없어진 것을 확인을 하고 나자 허탈해졌다.

이럴 수가, 이렇게 짐을 싸서 나가버리다니...

몇 년 동안 우리에게 붕붕거리며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던 벌들이었는데...

일 년에 한 번씩 벌꿀을 선물해 이웃들과 그 달콤함을 나눌 수 있게 해 주었던 우리 식구들이었는데...


누군가가, 무엇인가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것은 마음 상하고 슬픈 일이다.

벌들은 우리의 이성보다도 더 정확한 생체적 본능에 따라 "이곳은 더 이상 좋은 집이 아니다."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 사실이 더 마음 상했다. 그동안 풀렸다 다시 추웠다 하는 날씨에 몰살되는 일도 있었고 분봉하면서 대부분의 벌들을 잃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짐을 몽땅 싸가지고 떠나버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다.

그 사실로 인해 오래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다, 무엇이든 누구든 돌보지 않으면 우리 곁을 떠난다.

벌들이 이사 가기로 결정하기까지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했나?

늘 있던 존재들이니 당연히 벌들이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 지난겨울 보온재도 덮어주었고 한두 번 열어보고 살펴주었으니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날씨가 불순하긴 하지만 벌들도 그에 맞추어 적응하리라 기대했었다.

익숙한 환경이니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봄꽃 향기 따라 꿀과 꽃가루를 따고, 여왕벌은 알을 낳고 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니 그 정도로는 안 되었던 거다.

초봄의 높은 기온차를 유심히 살폈어야 했다. 벌통을 덮었던 보온재를 완전히 걷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기온에 따라 밤낮으로 덮어주고 걷어주기를 내 집안 온도 살피듯이 했어야 했다.

벌통 관리도 한두 번이 아니라 정기적으로 벌통 안을 들여다보고 혹시 문제는 없는지, 벌들이 활발하게 활동을 하는지, 해충은 없는지 유심히 관찰했어야 했다. 한마디로 사랑과 정성으로 벌들을 살폈어야 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던 거다. 우리의 관심이 부족하니 벌통은 온도 조절이 잘 안 되었을 것이고, 습도 조절도, 곰팡이나 해충에 취약 해졌을 것이다. 그래서 벌들은 더 좋은 장소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떠났다.


벌들이 다 떠나고 텅 빈 벌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뒷마당의 벌들만 그런 것일까?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그렇다.

내가 하고 있는 일들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도, 우리들이 만들고 있는 관계도 모두 그렇다.

그저 당연하게 여기고 소홀해지는 순간, 그 모든 것들은 변하기 시작한다. 점점 무심해지고 점점 멀어지고 끝내는 끝나고 만다.


당분간 벌통은 그대로 비워 둘 예정이다.

해충이 생겨버린 벌집 프레임은 모두 불살라버리고 햇살 좋은 날 벌통을 깨끗이 씻고 소독을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벌통이 새것처럼 뽀송뽀송해졌을 때 새로운 여왕벌과 식구들을 들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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