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한 여행이란 없는 것인가?, 출발 전부터 기다림의 노심초사
아들과 8박 9일의 여행을 다녀왔다.
튀르키예 이스탄불과 그리스여행이다.
사실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는 그리스였다. 하지만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을 읽고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관심이 생긴 나를 배려해 이스탄불에 이틀 머물기로 한 거다.
아직 현업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나는 여행을 앞두면 늘 마음이 바빠진다.
내가 없는 동안 챙겨야 할 일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집에 남을 남편에게 인수인계를 하고서도 뒤가 돌아다봐진다. 게다가 이번엔 내 메디케어(노인의료보험) 신청 문제가 걸려있었다.
정부에서 하라는 대로 생일 3개월 전에 에이전트를 통해 신청을 하고, 기다리기로 악명 높은 소셜 오피스에 가서 서류에 직접 사인을 했음에도 뭔가가 진행이 되고 있지 않았다.
내가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시점이었다.
문제는 내 여행일정으로 그것을 바로잡을 시간이 없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1000불이 넘는 내 의료보험료를 한 달 더 내야 하고 그러고도 신청기간을 넘긴 페널티를 물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아이디어를 냈다.
출발 전 약간의 여유시간이 있으니 아들과 소셜 오피스에 가서 함께 그것을 바로 잡으라는 거다.
안 그래도 출발 전 증후군으로 심란스런 나에게 과제를 하나 더 던져준 셈이다.
남편의 생각은 서류진행상 뭔가가 많이 꼬여있으니 영어 잘하는 아들과 함께 소셜 오피스에 가서 해결하라는 거다. 그러지 않으면 여행을 다녀온 후, 그것도 월말 하루를 남겨놓고 나 혼자 가서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던거다.
하는 수없이 출발 당일 아침 나는 아들과 함께 소셜 오피스를 찾아갔다.
아들의 차속에 여행 배낭을 던져놓고 소셜 오피스 앞에 가보니 웬걸, 이미 7-8명이 줄을 서있다.
대략 낭패스러운 상황이다.
이를 어쩐다 싶어 아들을 쳐다보니 기다려보잔다. 그래, 40여분의 여유시간이 있으니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접수를 하고 기다리고, 한 사람씩 번호가 불려지고, 그런데 앗, 창구에서 엉뚱한 번호를 부른다. 뭐지???
그런 사람들은 엄청난 인내심을 갖고 전화로 미리 예약을 했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추운 밖에서 20여분을 기다리고 번호표를 뽑고 하나하나 불려 나가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에겐 그저 새치기로만 보였다.
그렇게 기다리기를 40분.
아들이 여유시간이라고 했던 40여분이 다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으로도 아직 두 명이 더 있다.
기다리기를 그만두고 여행 다음날 혼자 와서 해결해야 할까, 아니면 조금 더 기다려봐야 할까 싶은 순간 아들이 더 기다리잖다. 구글맵으로 교통상황을 계속 지켜보고 있는데 막히지 않는단다. 그렇게 20여분을 더 기다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때의 초조함이란...
드디어 내 접수 번호를 부른다.
접수창에 앉아 서류를 내밀며 옆자리의 아들이 설명을 시작하려 하자, 젊은 동양인이었던 직원이 나를 쳐다보며 묻는다. "한국말이 더 편하시지요?"
"왜 아니겠어요, 호호호..."
나는 유창한 한국말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친절한 한국 직원은 그 자리에서 자판 위를 날아다니는 날렵한 손놀림으로 엉켜있던 내 서류진행과정을 바로잡았다.
그렇게 5분 여가 지나고 모든 것이 다 해결되었다. 이렇게 쉽게 해결될 것을....
드디어 다음달 1일부터는 내 노인의료보험이 발효된단다.
아들과 나는 문제해결의 안도감과 기다림에서의 해방감에 동시에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자 이제 진짜 여행 출발이다.
일사천리로 메릴랜드에서 아들이 살고 있는 워싱턴 디시의 아파트로 가 차를 놓고, 다시 우버를 타고 버지니아 덜러스 공항으로 달려갔다.
우리는 첫 번째 기착지인 이스탄불을 향해 날아갈 터키 항공을 타러 서둘러 걸었다.
그렇게 우리의 여행이 시작되고 있었다. 느긋하기보단 종종걸음치며 시작된 여행이었지만 공항을 향해 달려가는 내 마음은 드디어 여행자의 부푼 마음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등에 맨 돌덩어리 같은 배낭이 벌써부터 어깨를 짓눌러올지라도,
앞서서 성큼성큼 걸어가는 아들을 따라가는 내 발걸음이 반절쯤 뛰면서 뒤쫓아 가고 있을지라도,
마음은 벌써 이스탄불을 향해, 그리스 산토리니를 향해, 아테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