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ia 마을을 찾아가다.
산토리니 섬의 이아(Oia) 마을은 그리스를 소개하는 TV 여행 프로그램이나 유튜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화산섬 마을이다. 푸른 바다, 절벽 위의 하얀색 집들, 그것들을 더욱 아름답게 채색하는 일출과 일몰.
시간이 날 때마다 카메라를 짊어지고 세상 구경을 다니는 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장소였다.
프로펠러 비행기 위에서 바라본 산토리니는 바다 위에 흩어져 있는 여러 섬 중의 하나였다. 경제의 90% 이상이 관광업에 의존한다는데 아직 관광 시즌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번잡하기보다는 조용하고 한가로웠다.
공항에서 셔틀 밴을 타고 가면서 바라본 풍광도 여느 섬마을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산토리니의 북쪽 끝에 위치한다는 이아 마을에 도착하니 사진에서 보았던 바로 그 풍경들이 펼쳐져 있었다. 조금 쌀쌀한 날씨를 감수한다면 여름철보다 지금이 오히려 여유 있게 이아 마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곳엔 우리처럼 생각했을 몇몇 관광객들과 고양이들만 한가롭게 골목길을 오가고 있었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절벽 바위를 파서 만든 동굴집 형태로, 방 하나가 길게 있고 침대 머리 뒤편에 정말로 바위를 파서 만든 것 같은 화장실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비슷비슷한 숙소들이 절벽을 따라 옆으로, 위로, 아래로 이어져 있는 데다 골목으로 연결되어 있어 도무지 어디가 어딘지 구별하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이런 모습의 이아 마을은 '이포스카포'(땅 아래 판 것)라고 오래전부터 그곳 주민들이 짓고 살던 형태의 집이었는데 1956년의 대지진 후 보존과 복구 작업을 통해 재탄생했단다.( 제미나이의 설명 )
그러다 보니 지진의 진동을 분산시키기 위해 천장은 아치형으로 되어있고 절벽의 바위에 붙어있는 형태로 되어있었다. 오래전 묵었던 호주 남부의 오팔 광산도시 쿠버 페디의 지하 동굴집이 생각났다.
무엇보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숙소들에 작은 수영장이 딸려 있다는 것이다. 우리 숙소에는 실내에 자쿠지 크기만 한 수영장이 있었는데, 어떤 숙소에는 실외에 있는 곳도 있었다.
미처 수영복을 챙겨 오지 못한 아들과 나는 각자 혼자 있는 시간을 이용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는 호사를 부렸다. 여행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지친 몸의 피로를 푸는 데에는 그만이었다. 온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수영장 물이 온천수가 아니었을까 짐작되었다.
산토리니에서의 이틀 중 첫날은 이아마을 구경하기, 다음날은 작은 모터보트를 타고 산토리니 섬 주변을 구경하는 크루즈 타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가 갔던 2월 말경의 이아 마을은 조금은 춥고 바람 불고, 그리고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내리던 골목길들, 푸른색 돔과 흰색 벽의 자그마한 집들, 그런 집들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던 관광객들, 경사진 마을의 밑자락에 찰랑이는 푸른 바다, 이곳저곳에서 햇볕바라기를 하고 있는 고양이들, 가장 일몰이 아름답다는 성채보다도 더 아름답던 숙소 앞 의자에서 바라본 석양과 밤하늘.
쌀쌀한 날씨에 구름까지 오락가락했지만 햇빛이 날 때의 이아 마을은 정말 그림 속 마을처럼 예뻤다.
사진 찍기에 진심인 아들은 그 순간들을 앵글로 잡아내느라 여념이 없었다.
석양이 지고 한기가 들 즈음 우리는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다.
바닷가 마을로 왔으니 생선 요리를 시키고 둘러보니 앞의 테이블에 서로 사진을 찍어주었던 일본인 가족이 보였다. 아들과 여행을 온 나처럼 그 가족은 엄마와 두 아들의 여행이라고 했다. 그녀와 나는 우리만 아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음식을 즐겼다.
다음날 아침,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 취소될 수도 있다던 크루즈 여행이 시작되었다.
아들과 나를 싣고 한참을 달리던 밴은 중간에 플로리다에서 왔다는 젊은 커플 네 명을 더 태우고 달려 항구에 우리를 데려다 놨다. 그곳엔 우리와 함께 투어를 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 두 사람 외에도 멀리 남아공에서 왔다는 부부, 중국인 부부, 중국인 아가씨 커플, 그리고 미국 젊은이 커플 등 모두 12명의 승객을 태운 작은 모터보트가 산토리니 섬을 따라 항해하기 시작했다.
여름철에 오면 어느 화산섬에 내려 화산 분화구까지 하이킹을 하거나 레드 비치나 화이트 비치에서 스노클링을 할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바다 위에서 해안가 마을과 절벽을 구경하는 칼데라 항해로만 만족해야 했다.
산토리니는 화산섬답게 검은 암벽이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었는데 산토리니의 깎아지른 절벽이나 이아 마을 같은 절벽은 칼데라의 안쪽 벽이란다.
젊은 크루 한 사람이 중간중간 지형 설명도 하고 우리들에게 와인이나 맥주를 서빙하기도 했다.
크루즈 여행 중 재미있었던 것은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hot-spot에서 수영할 수 있도록 잠시 시간을 준 것이었다. 승선하기 전 미국 젊은이들이 내게도 수영할 것이냐고 묻길래 농담하는 줄 알았더니 진짜였던 거다.
미리 수영복을 챙겨 입고 온 그들은 용감무쌍하게도 봄이 오기 전의 차가운 바다에 풍덩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 출신들은 바다 한가운데 있는 hot-spot에서의 수영을 포기하기 어려웠던가보다. 5분 남짓의 짧은 수영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젊음과 용기, 그리고 무모함(?)에 박수를 보냈다.
그렇게 같이 와인과 맥주를 마시고, 배에서 직접 구워주던 그리스식 바비큐 점심식사를 나누며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사이 일면식도 없었던 우리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아쉽게도 기울어져가는 해와 함께 짧은 크루즈 여행도 끝이 났다.
배 위에서 마음껏 마시고 즐기던 미국 젊은이들은 플로리다에 꼭 놀러 오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밴을 타고 항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던 이아 마을의 숙소로 돌아왔다.
산토리니의 이아 마을은 세상사람들이 시간과 돈을 들여 찾아갈 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 속에는 조금 불편한 현실이 담겨있었다.
포도농사에 의존하던 척박한 섬마을은 아름다운 풍경을 관광산업으로 세상에 내어 놓았고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보러 찾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이 한번 시작된 일은 멈출 수가 없는 법.
이제는 너무 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게 된 것이다. 내가 찾아간 비수기조차 이아 마을 곳곳에 중국, 한국, 일본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성수기엔 어떨지 짐작이 되고도 남았다.
문제는 그곳이 섬이라는 것. 물 부족뿐만이 아니라 모든 물자 공급과 쓰레기 처리가 원활하지 않다는 것이다.
급기야 최근에는 오버투어리즘과 주거비용 상승, 그리고 잦은 지진으로 많은 원주민들이 살던 곳을 떠나 본토나 섬 외곽으로 이사를 가고 있단다. 주객이 전도되었다고나 할까...
여행자로서 나는 괜스레 산토리니와 산토리니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숙소가 쾌적할수록, 제공되는 아침식사가 근사할수록, 렌즈 속 아름다운 풍경이 쌓여갈수록, 내 배낭을 대신 옮겨주고 낡은 미니밴으로 우리를 실어 나르던 이아 마을 사람들의 무표정이 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