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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업본부장 한상봉 Oct 18. 2023

포커로 알아보는 영업(거래)의 세계

영업사원 실전노트

난 카드게임을 좋아한다. 특히 포커. 고스톱도 재밌지만 누가 했던 얘기처럼 죽 깔려져서 누가 이길지 미리 아는 고스톱 보다는 마지막 히든으로 뒤집히기도 하고 끝까지 승부를 알 수 없는 포커가 더 성격에 맞는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의 영업도 딜도 포커와 많이 닮아 있다. 처음 주어지는 3개의 카드는(혹은 2개의 카드) 아주 조금씩이라도 유불리를 안고 시작한다. 확률적으로 이길 수 있는 훨씬 높은 카드를 가지고 시작하는 영업이 있고 이미 소위 말하는 개패를 들고 절대 수주할 수 없을 거라는 예상으로 시작하는 카드도 있다. 하지만 결과는?


홀덤이라는 게임을 예로 시작해 보자. 처음에 각각 주어진 2개의 카드는 사전영업의 정도다. 에이스 두 개로 시작할 경우(그걸 홀덤용어로 에어라인 이라고 한다) 확률적으로 그 영업은 이미 그 카드를 쥔 영업사원이 수주한 거나 다름없다. 모든 주위의 환경과 고객사 담당자가 내 편이고 심지어 내가 쥔 최고의 카드를 몰라보고 자기가 이길 거라고 생각하는 불쌍한 상대를 여유 있게 바라보는 재미까지 있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사실 하나. 홀덤은 처음에 두장을 받아보고 바로 게임을 포기할 수가 있다. 너무나 안 좋은 카드를 받아 쥘 경우(사전영업이 전혀 안 돼있을 경우) 그냥 카드를 접고 다음 판을 위해서 잠시 쉬거나 음료수를 마실 수가 있다. 만약 카드 게임이라면 좋은 패를 가진 사람은 쉽게 그 판을 먹을 수는 있지만 따는 금액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영업은 다르다. 수주는 한판의 금액이 정해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상대가 미리 포기하든 끝까지 따라오던 먹는 금액이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만약 사전영업이 잘되어, 처음에 내가 받는 카드가 훌륭하고 상대의 카드가 좋지 않아 상대가 미리 포기라도 해준다면 내 에너지를 아끼면서 다른 곳에 힘을 쓸 수도 있으니 온전히 이득이다. 사전영업에 영업사원들이 힘을 쏟는 중요한 이유다.


영업이, 포커가 구경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재밌어지려면, 두 경쟁사가 포기하기 힘든 비슷한 두장의 카드를 처음에 받아 드는 경우다. 상대방의 카드가 뭔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내가 가진 카드가 나쁘지 않아 포기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 둘 다일 때, 드디어 포커는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이제 손에 쥔 2장의 카드 앞에 상대도 나도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도 다 볼 수 있는 '플랍'이라고 하는 공통의 카드가 3장 깔린다. 내가 쥔 2장의 카드와 조합할 수 있는 카드들이다. 영업을 진행하다 보면 고객사가 영업회사의 선호도와는 별개로 모든 회사에 기회를 주는 절차들이 있다. 그걸 소위 제안설명회, 또는 RFP 배포라고도 하는데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게 이 제품 혹은 이 서비스이니 와서 제안하라고 요청하는 절차이다.


앞에 새로 깔린 3장의 카드는 고객사가 요청하는 추가정보다. 이제 플레이어들의 셈법이 복잡해진다. 깔려진 카드를 손에 쥔 내 2장의 카드와 매치를 해보니 크게 유리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래서 포기를 할까? 성급한 생각이다. 왜냐면 상대도 그럴 가능성이, 혹은 나보다도 더 불리한 상황이 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포커는, 홀덤은 중간중간 아주 중요한 프로세스가 있다. 바로 '베팅'. 처음에 두장을 쥐었을 때부터 각각의 단계에 플레이어들은 베팅을 한다. 만약 이번 프로젝트를 저희가 수주한다면 요청하신 내용에 더하여 다른 제품을 하나 더 설치해 드리겠습니다 라던가 혹은 경쟁사보다 10% 가격을 더 할인해 드리겠습니다라는 베팅을 할 수도 있다. 만약 그 베팅을 상대가 할 수 없거나 상대는 생각해 내지 못할 경우 내 카드가 나쁘고 플랍에 깔린 3장의 카드가 나와 매치되지 않아도 상대를 포기하게 만들 수 있다. 


이건 굉장히 중요하다. 왜냐면 상대는 고객사로부터 경쟁사가 그 제안을 했다는 걸 듣게 되면 상대가 무척이나 좋은 패를 들었구나라고 지레 생각하고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에게 그런 기분을 갖게 하여 다음 판, 또 그 다음 판 계속되는 판에 나를 강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 포커판은 아주 편안한 놀이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첫 영업에 약간의 손해를 보더라도 무조건 수주하기 위해 레퍼런스를 만들기 위해 회사들이 노력하는 이유다.


서로 배팅이 들어가고 이제 '턴'이라는 한 장의 공동 카드를 더 펼친다. 만약 이 영업을, 이 사이트의 수주를 포기하려고 했으면 아까 3장의 카드를 오픈했던 '플랍'에서 했어야 했다. 이제 상대나 나나 발을 빼기 어려운 시간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으면 무조건 이 판을 먹겠다는, 이 사이트를 수주하겠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하지만 생각을 그렇게 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하는 건 다를 필요도 있다.


영업사원은 최후의 공개카드 한 장인 '리버'를 받으면 어느 정도 감이 온다. 내가 수주하지도 못할 사이트에 귀한 에너지를 허비했구나, 상대가 나보다 더 좋은 카드를 가졌거나 나보다 더 배짱이 있고 실력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반면 마지막 베팅이 남아있으니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마음을 다잡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유능한 영업사원은 '리버'를 받고도 카드를 접을 줄 안다. 사이트의 영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수주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어느 정도 느끼기 때문에 제일 좋은 건 플랍을 받고 카드를 접는 것이고 두 번째로 좋은 건 '턴'을 받은 뒤, 더 나쁜 건 마지막 공통카드인 '리버'를 받고 접는 것이지만 가장 최악은 모든 걸 다 배팅하고 게임에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한판으로 승부를 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카드게임은 셀 수도 없이 위에서 얘기한 판을 반복한다. 몇 시간을 계속 반복하기도 하고 하다 보면 밤을 새기도 하는 게 카드게임이니까. 영업도 마찬가지다. 첫 영업사이트에 모든 걸 걸어서 다른 곳은 영업해 볼 힘조차 남길 것이 아니라 심기일전으로 다음 판에는 아니면 그 다음 판에는 수주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역량을 배분해야 한다. 그리고 상대보다 내가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그게 첫 카드를 받는 운인지, 더 배짱 있는 베팅의 능력인지를 곱씹고 곱씹어야 한다.


제품의 기능이 부족하다면 그걸 채우거나 다른 매력적인 대체재, 예를 들면 영업의 힘으로 그걸 상쇄하거나 극복할 수 있도록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산만하게 에너지를 흩트리지 않고 게임에 집중하는 성실함을 보여야 한다. 내가 이 사이트를 영업하여 내 고객으로 만들겠다는 결심과 성실한 자세, 집중력으로 게임에 임해야 한다. 당연하고 식상해 보이지만 의외로 포커를 치다 보면 자기가 갖고 있는 카드조차도 까먹고 계속 확인하는 한심한 플레이어들이 많다. 이 판을 꼭 이기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본인이 들고 있는 2장의 카드조차도 기억을 못 하는가?


내 회사의 제품이 사업을 수행하는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솔직하게 파악하고 그게 상대보다 많이 부족한 지 아니면 경쟁력으로 가질 만큼 더 뛰어난지에 대한 개념을 항상 가지고 영업을 진행하고 고객을 응대한다. 그리고 상대가 베팅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고 블러핑인지 여부도 깊게 분석한다. 그리고 이길 때이든 질 때이든 상대가 어떤 스타일로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인지를 늘 검증한다. 그러다 보면 올인에 이병헌처럼 짜릿한 승리를 가져오는 플레이어가, 영업사원이 되어 있을 것이다. 



사족 : 영업사원들은 포커를 많이 친다. 동료들끼리도 혹은 드물게 고객과도 그럴 때가 있다. 그런데 실제로 텍사스홀덤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카드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하이로우'나 서비스카드가 있는 '세븐오디' '바둑이' 같은 걸 많이 한다. 최근 들어 임요환이나 홍진호 같은 왕년의 프로게이머들이 포커를 주업으로 하고 방송에도 자주 오픈되어 홀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거 같은데 아들 녀석이 세무사 시험에 붙으면 꼭 같이 홀덤바를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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