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일기 ①
R=VD. 2010년대 학창시절, 모두의 책상에는 해당 공식이 적혀져 있었다. 생생하게 꿈을 꾸면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Realization = Vivid*Dream)는 뜻으로, 당시 베스트셀러였던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에서 비롯된 유행이었다.
나는 본래 자기 확신이 있었던 사람이었기에, 굳이 해당 공식을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러나 하나둘씩 이루지 못한 꿈들이 쌓여가는 지금, 나는 오히려 아주 계획적으로 간절하게 '소박한 상상'을 시작해보기로 한다.
예측 불가능한 나 자신과 살아온 세월이 너무나 익숙해서, 나 외의 다른 생명체를 들이는 건 무척 조심스러웠다. 웬만한 동물은 다 귀여워하지만, "내가 과연 책임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늘 발목을 잡았다. 한 두번의 검색으로 충동구매를 하는 대신 나는 사육 환경, 수명, 온도, 먹이 등 '내가 감당 가능한 범위'를 오래오래 계산했다.
그 인고의 과정에서 나는 충동과 욕망보다는 책임을 먼저 생각하는 근육을 강화하고 있었다. 이윽고 강아지·고양이 대신 '크레스티드 게코 도마뱀'을 들이기로 결정했다. 게코는 내가 감당 불가능한 선을 아슬아슬하게 넘지 않는 존재였다. 그래서 나는 비로소 "선택해도 괜찮다"고 느꼈다.
나에게는 개명과 함께 서랍 깊숙이 넣어둔 이름이 하나 있다. 아주 흔해서 싫었고, 나를 정확히 지목하지 못하는 것 같아 밀어냈던 이름. 하지만 완전히 버리지는 못한 그 이름을 나는 곧 가족이 될 크레스티드 게코에게 주기로 했다.
말하지 못 하고 자신을 증명할 필요도 없는 작은 생명에게 내 옛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일종의 '허락'이었다. "이 이름은 이제 더 이상 특별해지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돼. 설명하지 않아도, 그저 존재하기만 해도 괜찮아." 내가 나 스스로에게 차마 주지 못했던 허락을, 이 작은 도마뱀에게 대신 건네며 우리의 관계는 시작되었다.
게코는 강아지나 고양이와 다르다. 내가 퇴근해도 반기지 않고, 나를 알아보는 눈치도 없으며, 내 기분에 맞춰 아양을 떨지도 않는다. 지독할 정도로 무심한 이 생명체 앞에서 나는 처음으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 애정'을 연습한다.
그동안 나의 관계는 늘 '균형'을 재는 일이었다. 내가 받은 만큼 갚아야 할 부채감을 느꼈고, 상대의 반응에 따라 내 온도를 조절하느라 애를 썼다. 하지만 게코와의 관계는 다르다. 반응이 없기에 오히려 자유로웠다. 나는 일방향이지만 결코 소모되지 않는 관계에 익숙해져 가기 시작했다.
이 아이는 내 시간을 독점하지도, 내 삶의 중심으로 무례하게 침범하지도 않는다. 이것은 내가 그토록 경계하던 불건강한 의존의 반대편에 있는, 아주 건강하고 담백한 거리감이다. "없어도 괜찮지만, 있으면 더 조심해지는 존재"가 내 방 한구석에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공기는 미묘하게 달라졌다.
게코를 키우는 일은 매일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일이다. 적정한 온도, 일정한 습도, 정해진 시간에 주는 먹이. 내 기분이 바닥을 치든, 조증의 파도를 타고 하늘을 날든 게코의 세상은 평온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여기서 나는 내가 늘 되뇌던 원칙을 몸으로 살아내게 된다. "기분이 태도가 되지 말자."
슬프다고 해서 분무질을 거를 수 없고, 들떴다고 해서 온도를 과하게 높일 수 없다. 게코를 돌보는 행위는 감정과 행동을 분리하는 단단한 근육을 만들어줬다. 나는 이제 누군가에게 사랑받는 대상이 아니라, 한 생명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환경' 그 자체가 되는 법을 배웠다.
방에 들어설 때마다 테라리움으로 향하는 시선, "오늘도 잘 있었구나"라는 조용한 안도. 말하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은 가슴 한편에 묵직한 존재감을 남겼다. 게코는 나를 외롭게 하지도, 과열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내가 어떤 방식으로 타인과 관계 맺는 사람인지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찾아온 게코의 죽음은 떠들썩한 통곡이나 드라마틱한 슬픔보다는, 어느 날 문득 마주한 '텅 빈 테라리움'의 고요함으로 찾아왔다.
그때 나는 "내가 뭘 더 해줄 수 있었을까"라는 자책 대신, "나는 끝까지 책임을 다했는가"를 묻게 되었다. 관계의 끝에서 후회보다 '돌봄의 완결'이라는 존엄을 남기는 방식. 그것이 내가 이 작은 생명과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