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의미도 만들지 않으려는 연습

by 능소니

나는 늘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자극이 보이면 본능적으로 달려들었고, 이색적인 취향은 곧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이었다. 나는 한동안 '특별함'이 나의 증거라고 믿었다. 잊히지 않는 인상, 압도적인 성취와 태도.


그래서 나는 성취를 쌓고, 태도를 지키고, 기록을 남겼다.


무언가에 흥미가 생기면 초보자답지 않게 장비부터 풀세트로 사들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 취미가 어디까지 확장될지, 부업이 될 수 있을지, 어떤 콘텐츠로 만들지 시뮬레이션이 돌아간다. 시작하기도 전에 의미의 무게에 짓눌려 버리는 패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더 멋진 활동'이 아니라,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평범함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너무 갑작스럽고, 잔인하다.


대신 나는 '확장하지 않는 연습'을 해보기로 했다.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과부하를 끄고 꾸준히,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로 이어지는 감각을 기르기 위해.


그래서 몇 가지 장치를 두었다. ▶추가로 사지 않기 ▶수익화나 실력 향상 상상하지 않기 ▶SNS에 올리지 않기 ▶이름 붙이지 않기 ▶언제든 중단해도 아쉬움이 남지 않게 하기.


그렇게 낯설지만, 과열되지 않고, 나를 소모시키지도 않는 이런저런 활동을 시도해보았다.

이렇게 보면 단단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유치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쇼핑 찜 목록에 들어있는 '모래멍 액자' 하나를 두고도 나는 갈등한다. '이걸 사서 책상에 두면 인테리어로도 좋고, 멍 때리는 콘텐츠로 활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럴 때마다 뇌 속의 자동문을 닫는 게임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니요~ 오늘은 안 합니다."


진지하게 반성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귀찮은 민원 전화를 끊는 콜센터 직원처럼, 혹은 퇴근 직전의 직장인처럼 가볍게 밀어내는 것이다. "아니요, 안 해요." 이 유치한 대답이 내 뇌의 과부하를 막는 유일한 안전장치가 되어준다.


이외에도 컵 하나를 10초 동안 바라본다.

목적지 없이 버스를 타고 한 정거장 뒤에 내린다.

사진을 찍되 저장하지 않고 삭제한다.

나의 기분을 메모장에 쓰고 바로 지운다.


아무 의미도 남지 않는 행동들.

아무 확장도 없는 자극들.


가능성 중심으로 사고하던 내게 인위적으로 확장 사고를 멈추는 건 아주 고난도의 체력 소모를 요했다.

나는 이제껏 이런 것들을 견디지 못했다.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남들과 다른 밀도의 삶을 살아야만 내가 증명된다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불꽃'이 아니라 '결'이다. 비생산적이고 무의미한 행동들은 나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그저 "오늘은 안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여유. 이 보잘것없는 연습이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믿어보기로 한다. 보잘 것 없는 것들에 끙끙대는 내 모습을 보고 크게 웃어버리면서.


오늘의 미션은 '아무 의미도 만들지 않기'였다. 결과는? 절반의 성공이다. 여전히 머릿속에선 수만 가지 아이디어가 피어오르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것들을 실행에 옮겨 나를 소모시키지 않았다.

세상은 그대로였고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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