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룻을 배우게 된 계기는 대단치 않았다. 학교에서는 한 번쯤 단소를 배우는데, 나는 한 번에 소리가 아주 잘 났다. 그때나 지금이나 단소 수행평가 때 바람소리만 내는 친구들이 부지기수였는데, 나는 눈이 좋고 운동 신경이 좋았다. 비단 모든 운동과 음악에서 근육의 움직임과 모양새를 잘 포착했고, 모사했다. 그런데 플루트의 소리 내는 방법이 단소와 대단히 비슷해 보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렇게 나는 일련의 이유로 나는 지인이 재능이 없어 포기하려던 플루트를 물려받아 2년여 동안 취미로 알차게 즐겼다. 소리 내는 법은 단소처럼 익숙했지만 악기를 옆으로 잡는 자세는 내 딴에 더 우아해 보였다. 그래서 그 우아함에 매료되어 플루트를 시작했다. 나의 플루트와의 만남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낭만적인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그 플루트를 2년 만에 그만둔 까닭은 무엇일까? 플루트의 장점을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은 단점부터 솔직하게 말해보기로 하자. 심한 귀차니즘을 지닌 내게 플루트는 막연한 낭만만으로는 오래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첫째로, 관리가 귀찮다. 여느 금속 관악기가 그렇듯, 플루트 또한 연주 후에는 물기를 꼼꼼히 제거해야 한다. 습기에 예민하고 침이 고이기 쉽기 때문에 부속품을 하나하나 분해해 닦아 주는 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다른 단점은 내겐 매우 부수적이었지만, 두 번째 단점은 단소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플루트 소리 내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에야 단소 취구에 리코더처럼 불기만 하면 소리가 나도록 해 주는 보조 도구가 있다지만, 플루트는 아직 그런 게 없다. 입술로 바람의 방향과 모양을 정밀하게 만들어야 하고 폐활량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큰 진입장벽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몸이 은근히 아플 수 있다. 우아한 백조도 수면 아래에서는 바쁘게 물장구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플루트 역시 가볍고 유려해 보이지만, 팔을 일정한 각도로 들고 있는 채로 손가락과 입 주변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은 만만치 않다. 생각보다 여러 근육을 통제해야 해서 인내심이 없다면 오래 하기 힘들다.
그럼에도 나는 플루트를 좋아했다. 무대에서 플루트는 조용히 빛난다. 청아한 음색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솔로 악기로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높은 고음역대임에도 신경을 거스르지 않는 플루트의 음색은 마음을 경건하게 만들어주었다. 그 울림이 사실은 내가 뱉은 숨결임을 알면 더더욱이나. 나의 입김이 소리가 되어 나를 감싸는 감각은 나를 묘하게 위로해 주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로 무척이나 바빠져서 찰나의 여유를 즐길 새가 없어지자 플루트는 사촌 동생에게 넘겨주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삶에 약간 지쳐버린 지금은 일상의 휴식을 그리워하고, 그때의 플루트가 자꾸만 생각난다.
플루트는 마냥 귀엽거나 간편한 악기는 아니다. 물론 다른 악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휴대가 간편하고 공간의 제약이 적은 편이긴 하다.
소리를 내기까지 꾸준한 관리와 자세 훈련, 인내가 필요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개인적인 악기를 찾는다면 플루트는 분명 좋은 선택이 되어줄 것이다. 클래식, 재즈, 영화, 대중음악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이유는 단연 나의 호흡과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일 터이다. 독주 외에도 플루트의 감성은 앙상블, 오케스트라, 실내악에서도 중심 역할을 한다. 아련하고도 밝고 생동감 있는 드넓은 표현력과 음악적 활용 범위는 무척이나 매력적이다.
플루트는 당신의 묵혀뒀던 한숨을 소리로 풀어 공중으로 흩어지는 경험을 선사한다. 악기 관리 루틴을 비롯한 아주 약간의 수고로움을 견딘다면, 플루트는 우아한 선율과 깊은 위로를 쥐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