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생활한복을 입고 다니며 고궁 산책을 즐기는 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단골이기도 하다. 올해 초, 여느 때와 같이 들른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외규장각 의궤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프랑스가 뺏어가고 오랜 기간 힘겹게 되찾은 그 의궤? 뉴스에서 이름만 듣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에 냉큼 안으로 들어섰다.
의궤의 정의, 역사는 차치하고 가장 마음 아팠던 것은 '소실의 역사'였다. 병인양요 때 약탈당한 사실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 행방이 밝혀진 것은 그로부터 100년이 훌쩍 넘은 시점이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1975년 재불학자 고 박병선 박사가 그 존재를 밝히고 반환에는 그로부터 20년을 더 필요로 했다. 그러니까 외규장각 의궤가 모두 반환되기까지는 약 145년이 걸린 셈이다.
이 전시실은 2011년 체결된 한국과 프랑스 정부 간 합의문 및 ~ 대여와 대차에 관한 약정을 준수함.
기나긴 노력에도 우리는 우리의 창작물의 권리를 온전히 소유하지 못했다. 전시실 초입에 크게 박힌 문구가 대한민국 사람으로 하여금 응당 울분을 일으켰다. 우리 조상님이 대대로 기록하고 창작한 기록물을 왜 우리는 대차해야 하는가? 우리는 무엇을 내 것이라 당당히 말하고 소유할 수 있는가?
외규장각 의궤는 단순한 책이 아니다. 그것은 기록이고, 절차이며, 한 나라의 왕실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구성했는지를 보여주는 문화적 좌표다. 그런 책이 1866년 프랑스군에 의해 약탈당해 국외로 반출되었고, 오랜 세월 파리 국립도서관의 서고에 묻혀 있었다. 우리는 수십 년간 해당 문화재의 반환을 요구해 왔으나 프랑스 정부는 '국가 공공재는 양도할 수 없다'라는 법적 원칙을 내세웠고, 그 결과 나온 타협안이 '영구 임대'였다.
법적 소유는 프랑스에 남겨두고, 실질적인 소장과 전시는 한국에 맡긴 것이다. 우리가 찾던 것은 단지 종이가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적 기억이자 정체성의 파편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법적 장벽 앞에서 기억을 빌려 쓰는 위치에 머무르게 되었다.
흔히 우리는 "내 것"이라는 말을 '내가 만든 것', 혹은 '내가 산 것'이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외규장각 의궤는 우리가 만들었지만 빼앗겼고, 되찾았지만, 여전히 남의 것이다. 이 기이한 모순이 가능했던 이유는 단 하나-힘의 비대칭이다. 프랑스는 자신들의 법체계에 따라 '국가 자산'을 내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법이 만들어진 기반에는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역사가 있다. 과거의 강자가 만들어 놓은 규칙이, 지금도 원 소유자의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결국 소유란, 기록의 진위나 도덕성보다 누가 더 강한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는 국제 정치에서만이 아니라, 일상 속 저작권 분쟁이나 디지털 자산 문제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문화는 공공재인가, 민족의 유산인가? 의궤 반환 논의가 본격화될 때, 프랑스 측 일부 지식인은 이렇게 주장했다. "이러한 귀중한 유산은 세계의 것이지 특정 국가의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얼핏 아름다워 보인다.
문화는 인류 전체의 것이며, 경계와 소유를 넘어 공유되어야 한다는 이상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공유'가 일방적으로 누군가의 상실을 전제할 때 발생한다. 의궤는 '조선'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생산된 지식이고, 그 안에는 조선이라는 질서와 세계관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것은 누구든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이기 이전에, 한민족의 기억과 삶을 반영한 결과물이다. 그것을 빼앗은 쪽이 "이건 모두의 것"이라 주장하는 순간, 소유는 탈맥락적 탈취가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까? 아니,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법적으로는 빌린 것일지라도, 문화적으로는 이미 되찾은 것이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 것임을 기억했고, 되찾고자 했고, 마침내 돌아오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유는 종이 한 장의 등기보다, 지속적인 요구와 기억의 힘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외규장각 의궤 사건은 우리에게 말한다. 진짜 내 것이라고 믿는다면, 되찾기 위해 질문하라고.
당신이 만든 것, 당신이 읽은 것, 당신이 기억하고자 하는 것-그 모든 것에 대한 소유는 '잊지 않음'에서 시작된다고. 소유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