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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May 23. 2023

음악 방송을 하라고요?

#2 피디, 예능 피디, 음악 예능 피디


나이 먹고 도전할 수 없는 건 키즈모델뿐


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가볍게 웃고 넘기기엔 너무 정답이잖아. 마흔에 이민 가는 사람, 대학 다니는 할머니, 은퇴 후 새 사업을 시작하는 60대처럼, 스스로 이 문장의 증거가 되어주는 인생을 지켜보는 것도 이젠 어렵지 않다. 이걸 유튜브나 인터넷 덕이라고 해야 하나? 꿈이 있어도 표본이 없어 용기를 잃은 채, 나이 앞에서 좌절하던 시대가 지나간 것 같아서 다행스럽다. 오히려 걱정인 건 꿈이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다. "늦은 나이에도 과감히 도전하여 성공한 이야기"를 자주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생긴 부작용이랄까. 이젠 꿈이 없다는 점이 인생을 뒤쳐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시대가 되었다.


각종 합격 수기가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언시생일 때 수없이 읽던 합격 수기를 돌이켜보면, 그들은 탯줄을 자르기 전부터 티비를 보기 시작한 듯했다. 예능이 너무 좋아서 촬영장을 따라다닌 이야기, 이미 독립영화를 몇 편 찍어봤다는 이야기, 스터디 다섯 개를 동시에 돌렸다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피디가 되고 싶다는 나의 꿈은 실체 없는 뜬구름처럼 초라해 보이곤 했다.


하지만 그때 간과했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시간. 그들이 보낸 시간의 정체. 합격 수기를 쓰기까지 그들이 견딘 시간 속엔, 꿈을 세팅하기까지 걸린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땐 몰랐다. 탯줄을 자르기 전부터 티비를 봤기 때문에 언론고시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피디에 관심이 좀 있는 것 같은 바로 그 순간부터 언시 공부를 하다 보니 마치 내가 텔레비전 키드인 것처럼 세팅이 되었고, 정신을 차려 보니 합격이 되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꿈이 이미 정해져 있는 채로 준비에 돌입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몇 없다. 모든 준비가 완벽해지는 타이밍은 없으니 명확한 꿈이 없더라도 도전하고 싶은 방향이 보인다면 일단 뭐라도 시작하는 것이 낫다. 결국 일로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긴 시간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걸 묵묵히 찾아나간 사람들이지, 과 수석이나 입사 수석이 아니지 않나. 일단 준비를 시작하다 보면 길은 만들어진다.



피디, 피디 중에서도 예능 피디


피디의 꿈을 처음 가진 건 드라마 때문이었다. 신윤복이 여자였을지도 모른다는 가정으로 출발, 주연 배우에게 연기대상까지 안겨준 드라마에 열광하며, 출연자와 시청자의 인생을 모두 바꿔놓는 작품을 만드는 건 참 멋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을 보고 내가 꿈을 찾은 것처럼 나도 누군가의 꿈을 찾아주면 얼마나 좋을까. 호랑이 가죽처럼 스크롤에 이름을 남기는 것도 멋지잖아. 영화감독은 예술가지만 방송 피디는 플래너니까 나처럼 예술감각 없는 사람도 전문가들을 스태프로 모으면 뭐 하나 만들 수 있지 않겠어? 예전부터 조모임과 의견 조율만큼은 자신 있었던 터라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지금껏 내가 버티고 있는 건, 방송 피디는 예술가라기보다 플래너라는, 직업군에 대한 해석이 명확했기 때문 아니었나 싶다.)


그러고는 다큐 스터디에 들어갔다. 드라마가 좋긴 한데 너무 좋아하니까 일로는 하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게다가 드라마는 입봉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다큐 피디는 현장에 많이 나가니까 얼른 경험치를 쌓을 수 있겠지? 성격도 다큐에 어울린다는 말을 많이 들었으니 더 고민할 가치도 없지. 재밌게도 이 고민의 흐름에 예능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예능을 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고, 트렌드를 빠릿빠릿하게 따라갈 자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다큐 스터디에 갔더니 너무 쟁쟁했다. 매일 신문을 꼼꼼히 읽는, 방대한 지식으로 중무장한 다큐 피디 겸 기자 지망생들이 뽐내는 유려한 글솜씨에, 주절거리는 일기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의 작문은 발가락도 내밀 수가 없었다. 


그래서 예능을 하기로 했다. 예능 피디라고 해서 쉽게 될 리 만무하지만 적어도 재밌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예능 출신인 신원호 피디의 응답 시리즈도 하나의 희망이 되었다. 예능을 하면 뭐든 만들 수 있구나. 그럼 해야지, 예능.



예능 피디, 예능 피디 중에서도 음악 피디


언론고시에 뛰어든 해엔 종편과 케이블이 대세였다. 채널들이 앞다투어 개국한 지 얼마 안 된 시점, 인기 있는 콘텐츠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하자 지상파만을 바라보던 언시생들이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하니 얼마나 좋아? 나와 컬러가 맞는 듯한 채널을 몇 군데 고른 뒤 공고를 기다렸다. 물론 그 안에 음악 채널은 없었다.


상반기 공고가 쏟아지던 무렵. 살펴보니 내가 가고자 했던 채널은 없고 음악 채널만 있었다. 이걸 써야 하나? 고민이 시작됐다. 뚝심을 갖고 기다릴 만큼 여유가 있진 않았기 때문이다. 여유로운 취준생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마는, 비교적 나이가 좀 있던 터라 급한 마음이 증폭되어 있었다. 당시 나이 스물아홉. 지금이야 그게 뭐가 늦냐며 코웃음을 치겠지만 그땐 스터디 안에서도, 200명쯤 되는 작문 강의실 안에서도 최고령자였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 압박을 받았던 것 같다.


결국 음악 채널에 나를 끼워 맞추기로 했다. 이미 피디와 나의 궁합을 맞춰놨고 예능까진 맞춰놨으니 음악만 찾으면 되는 거잖아. 좋아하지도 않는데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지만, 좋아하는 부분을 찾아내고 좋아한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 아니니까. 나의 과거 속에서 증거를 찾아보기로 했다. 나름 오래(...) 살았으니 뭐라도 있겠지.


사실 십 대 시절부터 노래방 가는 걸 정말 싫어했다. 음치인 데다 음역대도 좁아서 부를 수 있는 노래가 거의 없었고, 춤추는 것도 어색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몸짓도 내겐 힘든데 춤은 무슨 놈의 춤. 한국인이 음주가무의 민족이라고 하면 나는 한국인 아니야, 라며 어쩌다 노래방에 가게 되면 탬버린만 붙잡고 손이 부어오를 때까지 치곤 했다. 이걸 놓으면 나에게 마이크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필사적으로.


다행히, 정말 다행히 박자는 기가 막히게 맞출 자신이 있었다. 초중고를 다니며 사물놀이를 하고, 대학 때 밴드에서 드럼을 친 건 그래서였을 것이다. 음악이 좋은 건 잘 모르겠지만 박자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헤아려 보니, 한창 유행이던 대국민 오디션은 내가 유일하게 봤던 예능이었다. 드라마를 좋아하던 사람이어서 그런지 수많은 감동 서사들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아이돌이나 힙합 프로그램은 정말 노관심이던데. 천만다행이었다.


타악기 러버와 오디션의 드라마 서사 러버. 이걸 엮어서 면접에 들어가서는, 세상 모든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학창 시절 내내 드럼을 친 사람처럼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합격했다. 합격을 하고 나니, 나는 정말 세상 모든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학창 시절 내내 드럼을 친 사람이 맞는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음악 채널에서 시작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울 정도로 좋았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방송을 만드는 사람들은 어느 컬러의 프로그램이든 맞춰갈 능력이 있지만, 음악 무대를 준비하는 과정에는 약간의 특수성이 있다. 아무래도 일반 예능만 하던 사람들에겐 생소한 개념과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리얼리티 현장에 나가거나 편집을 하는 건 연차가 쌓이고도 할 수 있지만 쇼를 만드는 과정엔 연차가 쌓이고 진입하기가 조금 버거울 수도 있기 때문에, 이것을 막내 때부터 배워 쌓아 갈 수 있었다는 건 확실한 행운이라고 본다.


가장 힘든 막내 시절, 음악 무대가 주는 감동을 옆에서 지켜본 것도 상당한 동력이 되었다. 음악은 의식주만큼이나 사람들의 삶과, 그리고 특히 영상과 떨어질 수가 없다 보니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에겐 여러 모로 주효한 배움이었던 셈이다.




과거의 이력을 한껏 부풀려 면접을 통과했지만, 돌이켜보면 당시 면접관님들도 무언가를 보지 않았었나 싶다. 내가 대애단히 음악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아시지 않았을까. 적어도 음악 무대에 충분히 감동받을 수 있고, 그걸 만들어가는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일 거라 예측하셨던 것 같다.


만약 내게 열다섯 살쯤 어린 동생이 있다면, 일단 뭐라도 하라는 뻔한 말을 매일 해주고 싶다. 어차피 사회 초년생에게 대단한 능력을 기대하는 업계 선배는 없다. 하지만 어떠한 색깔의 싹인지를 확인하긴 해야 한다. 그러니 너의 싹에 다채로운 컬러감을 주기 위해 뭐라도 해 보라고, 그걸 살짝만 엮어서 면접장에 들어가면 알아서 판단해 줄 거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고 싶다.




PS


아 물론 그렇게 음악 피디가 된 과거의 저는 아이돌 판에 들어가 여기저기서 치이게 됩니다... 아이돌의 이응도 몰랐던 막내 피디가 음악 방송에 배정받으면 어떻게 되는지, 다음 주에 또 글을 올릴 수 있길 기원하며 편집기를 잡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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