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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ck Jul 11. 2023

'필라테스'는 비트겐슈타인에게 말할 수 없는 명제이다

철학과 필라테스 Part 1



진정한 철학은 여러 질문에 대한 지나치게 추상적인 대답들 속에 있지 않다.

‘파리가 파리통에 어떻게 탈출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이 질문에 대한 어떤 단일한 체계적인 대답을 들을 생각은 말아야 한다. 그는 삶과 언어의 조그만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므로 그것들에게 단일한 방법이라는 구속을 입힐 생각은 없었다.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명제: 어떤 문제에 대한 하나의 논리적 판단 내용과 주장을 언어 또는 기호로 표시한 것.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고래는 포유류이다' 따위이다.


출처: 네이버 사전


말할 수 없는 것: 가치의 영역으로 신비한 것

말할 수 있는 것: 검증이 가능한 자연과학의 세계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구분했다.

종교, 미학, 논리적형식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


비트겐슈타인은 오직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 것 외에는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논리적 기호를 통해서 명확하게 정의해야 한다고 말한다.


말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이고

인간이 알 수 없는 것은, 인간이 모르는 것이고,

인간은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 명제 하나가 있다.

'테이블 위에는 맥북이 있다'


이것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는 '말할 수 있는' 명제이다.


여기 명제 하나가 있다.

'필라테스는 여성스럽다'


이것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는 '말할 수 없는' 명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 즉,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만이 말할 수 있는 명제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일상에서 언어로서 말할 수 있는 것과 말할 수 없는 것을 혼동하며 사용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구분해야하고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명제는 침묵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라테스' 이것은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에서 어떠한 명제인가?


조셉 필라테스가 만든 컨트롤로지는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에서는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않은, 말할 수 없는 명제이다. 반면 기능 해부학은 세계의 사실을 반영했기에(과학적 검증) 말할 수 있는 명제이다. 




여기 하나의 명제가 있다.


"조셉 필라테스가 만든 매트 중 Neck Pull은 위험해. 그렇기 때문에 하면 안돼."


이것은 언뜻보면 주어 목적어 동사 명사 형용사 부사가 갖추어져서 논리적 형식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지만, 이것은 혼동된 언어이다.   


    누군가는 지금 당장 동작을 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지금 할 수 없다  

    누군가는 할 수 있을지 할 수 없을지 당장 알 수 없다  

    누군가는 할 수 없다가도 다시 할 수 있다  

    누군가는 할 수 있다가도 다시 할 수 없다  


이렇게 다섯 가지 명제가 나오기 때문에 이것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었다고 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조셉의 컨트롤로지가 언어로서 누군가에게 다가갈 수 없는 이유이다.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 컨트롤로지는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것에 속한다. 그러므로 그가 말했던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가 맞아떨어진다. 즉, 조셉의 컨트롤로지는 말할 수 없는 것에 속하므로 침묵해야 한다.


여기 하나의 명제가 있다.

"팔을 앞으로 드는 것은 굴곡, 뒤로 당기는 것은 신전, 옆으로 들어 올리는 것은 외전이야."


기능 해부학, 이것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고유 움직임에 대해서 과학적으로 검증되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지 않다.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인간의 움직임은 공통되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던 '테이블 위에 맥북이 있다'의 맥락과 동일하다.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다. 비트겐슈타인 입장에서는 이것은 말할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 하나의 명제가 더 있다.

"필라테스 동작 중 Teaser는 상부, 하부 복부 운동이야. 이것을 하려면 어깨가 말리면 안 되고 허리를 세우고 다리를 올려야 해."


언뜻보면 논리적 형식을 갖추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능 해부학과 필라테스를 접목하는 것은 논리적 형식에서 벗어난다. 앞서 말했듯이 필라테스는 언어로서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는 기능 해부학과 같은 맥락으로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할 때 Teaser 동작을 언어로서 느끼지 않는다. 동작을 반복하면 동작이 느껴지는 감각이 달라지고, 바디의 컨디션에 따라 달라진다. 그렇다면 이것은 동일한 사람이라도 상황에 따라 다른 명제들이 나타나기 때문에 명확한 언어로서 정의내릴 수 없다. 그렇기에 과학적 검증을 할 수 없고,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하는 것이다.


기능 해부학과 필라테스를 접목하는 것은, 기능 해부학의 언어로서 일부분을 설명하는 행위이다. 앞서 말한 명제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는지, 세계의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지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이 우려한 언어적 혼동인 것이다.


필라테스를 언어로서 말하고 싶다면,

오리지널 필라테스를 오랜 시간 움직이고 말하라. 그렇지 않으면 세계의 사실을 반영한, 말할 수 있는 명제에만 집중하라. 그것이 비트겐슈타인이 말하는 논리 - 철학 논고의 기초이다.





<참고문헌>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왜 살아야 하는가, 미하엘 하우스켈러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새뮤얼 이녹 스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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