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허락받지 않는 외박을 할 때가 있다. 나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 위한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을 때, 그러나 집에 발 디디는 순간 하루치 집안일에 자동으로 움직일 내 모습이 눈에 선할 때 나는 부킹닷컴을 열고 신라스테이 스탠다드룸을 잡는다. 남이 빳빳하게 펴놓은 새하얀 침구에 몸을 폭 내던지고 싶은 날이 있다.
남이 해준 밥의 꿀맛을 알게 됐을 때 비로소 어른의 무게를 느꼈다. 그 강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집으로의 출근’은 워킹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다. 나는 대체 근무자도 없는 가사 노동자. 밥 먹고 바로 설거지 하는 사람은 독하니까 가까이 두지 말라는 인터넷 밈이 돌던데, 그 지독한 자가 바로 나다. 깔끔 떨어서가 아니라 나밖에 범인이 없기 때문에, 한 번 외면한 집안일은 훗날 더 큰 대가를 치르며 해결해야 함을 경험적으로 알기에 눈에 보이는 건 바로 치운다. 혼자 살면서 오히려 살림에 대한 기준이 높아졌다. 평일 중 하루는 정말로 집안을 돌보는 데 전념하려고 시간을 비워둔다.
그나마 평일 대부분은 밖에서 밥을 먹고 들어오는데도 쓸고 닦고 치우는 세 가지 일만 해도 힘에 부친다. 어른이 되어 ‘돈 벌어오는 일’과 ‘살림하는 일’ 둘 다 10년 이상 하고 보니 전자는 그런대로 할 만한데 후자는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돈 벌어오는) 아빠 힘내세요"를 외치는 사회에서 후자를 맡았던 엄마들의 박탈감, 때로는 둘 다 했던 엄마들의 깊은 분노를 헤아려본다.
살림 연차가 쌓일수록 눈에 보이지 않던 일들이 보인다. 어찌 연차가 늘면 일이 효율적으로 되고 능숙해져야 할 텐데 업무가 세분화하면서 되레 일이 늘어난다. 이를테면 여름철 화장실 배수구는 과탄산소다에 세제를 섞어 청소한다든지, 냉장고에서 수 개월 지난 정체모를 음식을 발견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어떤 칸에 어떤 식재료가 있고 소비기한이 얼마나 남았는지 ‘냉장고 지도’를 그려 붙여놓는다든지, 피부 트러블을 예방하기 위해 화장에 쓰이는 각종 브러시와 퍼프를 사나흘에 한 번은 빨아 말린다든지, 간과하기 쉬운 칫솔 건조기 안 물때도 주기적으로 닦아준다든지, 마늘은 다져서 얼음 틀에 얼려놓고 요리할 때마다 하나씩 꺼내 쓴다든지, 페트병에 붙은 비닐은 깨끗하게 제거해 배출한다든지, 수세미는 기름때를 제거하기 위한 애벌용과 일반용, 그리고 컵 세척용까지 세 개를 쓴다든지.
쓰레기를 내다버린 직후의 집,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다.
‘살림적 사고’도 하게 된다. 외식할 때마다 ‘이거 내가 만들면 훨씬 맛있을 텐데’, ‘두 세끼 분량은 뚝딱 만들 텐데’, ‘장 봐서 만들면 5000원이면 될 텐데’ 같은 생각으로 빠지는 것이다. 그나마 요리는 내가 살림 중에서도 가장 서툰 분야이기에 이 정도에서 멈춘다. 평일엔 외식으로 가사 노동을 줄이는 대신 주말 하루 정도는 집밥을 해먹는다. 대충 먹는 느낌은 또 싫어해서 배달음식과 밀키트는 피한다. 영화 ‘올드보이’의 오대수가 15년간 군만두를 먹었다면, 내겐 소울푸드 김치찌개와 된장찌개가 있다. 할머니표 된장과 신김치만 있으면 세상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1위는 같은 재료로 우리 엄마가 만든거) 요리를 내게 먹일 수 있다. 한 번에 지어 소분해 얼린 밥과 함께. 김치찌개는 인천공항에서 입국할 때 푸드코트에서, 된장찌개는 또순이네에서만 사먹는다.
여름을 앞두고 업체를 부르던 에어컨 필터 청소도 지난해부터는 그냥 내가 한다. 유튜브에서 에어컨 분해 영상을 틀어놓고 따라 해보니 철마다 30분만 투자하면 된다. 이렇게 또 살림적 사고를 한다.
‘30분만 투자하면 7만원 안 버려도 되네!’
내 일요일 시계는 삼성 그랑데 AI 세탁기에 맞춰 분할 된다. 35분짜리 쾌속 코스, 50분짜리 울 코스, 1시간 50분짜리 타올 코스에 맞춰 쾌속 돌아갈 때 밥 먹고 타올 돌아갈 때 외출한다. 이때 계산을 잘 해야 한다. 세탁기가 다 도는 데 맞춰 건조기를 돌리고, 한 번에 세 벌까지만 들어가는 에어드레서를 주말에는 1시간30분씩 세 번 돌려야 하므로 옷감에 따라 빨래를 돌리는 순서도 잘 정해야 한다. 이러면 반나절이 훅 간다.
이런 살림의 세세한 기준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살림을 잘 하고 싶어서(여기서 ‘잘’은 완벽하게가 아니다. 효율성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살림 강의도 들어보고 각종 살림법을 다룬 실용서도 국내에 출간된 건 한 번씩은 다 들춰봤다. 난관에 부딪힐 때마다 유튜브에서 살림 비법 쇼츠를 찾아보고 익힌다. 급기야 조선일보 ‘리빙포인트’에 내가 발견한 살림법을 제보해 실리게 되는데...
“욕실 세면대 수도꼭지(수전)에 바셀린을 바르고 수건으로 닦아보자. 광택이 살아나고 얼룩이 덜 생긴다. 간간이 하면 좋다.”
진짜다. 내가 제보한 살림법. 왜 갑자기 수전에 바셀린을 발라보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사진출처: 조선일보
그래서 올해 휴가는 ‘내 손으로 집안일 안 하기’를 테마로 했다. 무조건 밖에서 밥을 해결하고 숙소 돌아와서는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살고 싶었다. 그러면서 글쓰기에만 전념하고 싶었다. 하루짜리 머무는 느낌 말고 ‘살림 없는 생활’을 하고 싶어 2주 이상 장기 투숙할 수 있는 방을 하나 구했다. 요청할 때마다 청소도 해준다.
그러나 살림에는 관성이 있어서, ‘이 정도쯤이야’ 하는 생각으로 나도 모르게 몸을 굽힌다. 간단한 손빨래 정도는 샤워하면서 하고 나오거나, 외식에 질려 배달을 시켜 먹어도 바로바로 상을 닦는다. 머리를 말리고 나면 물티슈로 주변 머리카락을 훔친다. 로봇 청소기도 이렇게까지 자동 반응은 안 할 것이다. 쓸고 닦고를 해야 비로소 내가 머무는 공간같은 느낌이 든다. 단순히 부지런함과 주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수리 정신이 내 안에 흐르고 있는 것인가. 이런 ‘5분만’이 모여서 나의 시간을 갉아먹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최근 제목만 보고 바로 손에 잡은 책이 있다. 신문기자 생활을 접고 미니멀리스트로 활약 중인 일본인 이나가키 에미코의 <살림 지옥 해방 일지>. 결국 살림지옥에서 헤어나오는 것도 삶의 간소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채소도 키워먹고 음식은 간단하게 차리고 행주 하나를 부지런히 빨아쓰는 삶인데 은퇴 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밖에서 일하는 나를 ‘내조’하려면 부지런히 가사 노동 하는 또 하나의 자아를 버릴 수가 있을까. 결국 살림이란 것도 일하는 내게 최상의 컨디션을 선사하기 위함이다. 내가 지치지 않으면서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적정한 선을 찾는 게 살림의 궁극적 경지가 아닐까. 결국 살림에서 필요한 건 해방이 아니라 타협이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