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15 - 0이, 유자에게
유자에게
정말 쓰게 됐네, 교환일기.
거창하게 쓰자는 건 아니지만, 회사 점심시간부터 퇴근하고 나서의 시간, 종종 주말에 만나 공부하는 시간들까지 참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너와 대화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그날은 꽤나 잘살았다!라는 만족감을 주는 날들이 많았어.
그런 대화들이 공중에서 사라져 버리지 않았으면 해서 너와 나누었던 좋은 대화들을 글로 남기고 싶었고, 나중에 우리 그런 대화했었네 하면서 나눌 추억을 하나 만들고 싶더라고.
처음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까 참 고민을 많이 하기도 했고, 너에겐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으로 교환일기의 시작을 열어보겠다고 했지만, 아무래도 교환일기의 시작에는 왜 내가 너와 교환일기를 쓰고 싶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더라.
이미 나를 너무 잘 알고 있겠지만, 나는 정말 모두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람 같아 보이고 수더분해 보인다고들 해. 그래서 사람들이 나와 친해지는 게 어렵지 않다고 느끼게 하는 편인데, 한편으로 굉장히 섬세한 구석이 있어서 의외로 사람들에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아. 나와 가까워지는 첫 번째 울타리는 없다시피 한 아주 낮은 울타리인 반면, 두 번째 울타리는 아주 높은 성벽 같아서 정말 쉽게 누구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편이긴 하단말이지. 의외로 상처를 잘 받는 편이라, 나를 지키기 위해 두 번째 울타리를 꽤나 높게 세워두고 있는 것 같아.
그래서인지 내 두 번째 울타리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런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사람들인데, 내가 하는 노력들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걸 표현해 주고, 어떤 순간에는 자신도 불편할 텐데 나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주고 이해해주려고 노력해줬어. 그 순간 나는 상대에게 그 어떤 말보다도 따듯한 배려를 느끼고, 거기서 나를 마냥 상처주지 않을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얻게 되는 것 같아.
10년 전 독일에 있을 때 친구들과 별을 보러 간 적이 있었어. 친구 중 한 명이 독일어를 잘하는 친구였는데, 문득 그 친구가 독일어로 천문대를 뭐라고 하는지 아냐고 묻더라고. 한국어로는 천문대(天文臺)라고 하고, 영어로는 Observatory라고 하는데, 두 단어 모두 천체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공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그런데 독일어로는 'Sternwarte'라고 해. 독일어는 동사가 제일 마지막에 오는데, Sternwarte는 Stern(별)과 Warte(기다리다)를 합쳐서, 별을 기다린다는 뜻이라고 하더라고.
나는 이 말이 정말 너무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어. 인간에게 일방적으로 관찰되는 별이 아니라, 우리가 별이 지나가는 자리에서 기다린다는, 별의 입장을 헤아린 듯한 독일어 어원이 너무도 따스하게 다가오더라. 그저 어떤 공간을 지칭하는 단어에서도 이런 깊은 배려를 담아내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
너를 보다 보면, Sternwarte 같은 배려가 참 빛나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사회생활을 계속하다 보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으며 마음이 점점 무뎌지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게 참 마음처럼 쉽지 않잖아. 그런데 그렇게 마음의 공간이 잘 나지 않는 상황에서도, 너는 그 가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정말 많이 느꼈어. 내 노력을 묵묵히 알아차려 주기도 했고, 내가 힘들 땐 나를 배려하며 긴 시간을 기다려주기도 했고 말이야. 때론 너무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네 생각을 들으며, 내가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조금 부족했구나를 느끼며 스스로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상대의 입장을 잘 헤아리기까지 네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노력을 해왔을지 감히 어림도 잡지 못하겠어.
너와의 대화는 정말 언제나, 고여있는 대화가 아닌 확장되는 대화였어서 내겐 항상 새로운 시각을 배워나가는 시간들이라, 교환일기를 나누며 서로의 더 내밀한 생각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고, 서로의 세계가 한 뼘씩 더 확장되어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뭔가 가볍게 쓴다고 했는데, 왜 이렇게 무거운 글이 되어버린 것 같지, 하하.
너와 글을 나누며 내 글쓰기도 한 보 전진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