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적인 이별편지, 재현이에게

보낼 수 없는, 그러나 들키고 싶은

by 김유자



1월부터 재현이는 연락이 뜸했고, 내가 서운해하자 그제야 한 달 동안 엄청 바쁠 것 같다고 얘기했다. 연구비를 따내는 논문을 갑자기 써야 한다고 했었던 것 같다. 그는 새벽까지 화상회의를 하고 일주일에 7일을 연구실에 출근하고 이른 아침부터 새벽까지 일을 했다. 그 와중에 너는 2월 말까지 거주인 기숙사를 나와서 자취를 하려고 방까지 알아보러 다녔다. 아마도 첫 여자친구가 생겨서 같이 있을 아지트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합리적인 소비만 하고 허투루 돈을 쓰지 않는 네가 2월 말까지인 기숙사를 굳이 갑자기 정리하고 자취방을 구하려고 하는 것은, 그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그 바쁜 와중에 방을 보러 다닌다는 것도, 합리적이고 계산적인 그의 성향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그렇다.

그가 연락이 없고 혼자 바쁘자, 하루 종일 네 생각을 하고, 너의 스케줄에 맞추려 나의 스케줄을 어떻게 조정할지, 너랑 뭘 하고 놀지만 생각하던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나만 이 관계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닌 걸 알면서도 혼자 남은 초라함이 나를 지배했다. 알람이 울리지 않는 핸드폰과 텅 빈 카톡창이, 그때의 버려진 듯한 상실감이, 길바닥에 유기된 듯이 추웠던 감각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 바르지 못한 방향으로 빠그라진 나의 자존심으로, 나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과의 술자리에 나갔고, 새벽까지 술자리에 있었지만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술자리에 있으면서도 재현이의 연락을 계속 기다리다가 그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자 밖에 나가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간이 새벽 2시. 재현이는 새벽까지 화상회의를 하다가 잠이 들었던 거였고, 술이 만취한 나는 그에게 보고 싶다고 술주정을 부렸다.

그다음 날 새벽 6시. 그는 긴 장문의 카톡을 나에게 보냈다. 나의 단점에 대한 지적이었다. 지각을 자주 하는 것, 미래를 준비하지 않고 알바나 친목도모에만 몰두하는 것, 운동을 꾸준히 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지적. 고쳤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아마 너는 한숨도 못 자고 나에 대한 실망과 짜증과 분노를 애써 누르며 이 긴 글을 썼겠지.

나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지난 새벽 그에게 전화로 술주정 부린 것을 후회했고, 긴 카톡을 보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 이유를 나에게 묻지도 않고 혼자 판단 내리고 지적하는 그에게 실망했고, 자존심 상했고, 그러나 그를 잃고 싶지 않았기에, 지적해 줘서 고맙다, 고치도록 하겠다는 긴 장문의 답장을 보냈다. 재현이도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날 그는 헤어지자고 했다. 나와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3-4일간 우리는 헤어짐과 다시 만남을 번복했다. 그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너무 힘들다고 울면서 헤어지자고 했다. 울면서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을 무슨 수로 붙잡겠는가.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또 다음날, 전화기를 붙잡고 이야기를 하다가 둘 다 울며 다시 만나자고 번복했다.

그러다가 또, 그는 3월까지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가 3월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을 때, 시간을 갖자고 했을 때, 나는 알았다고 기다린다고 했다. 2월 말까지 그가 논문으로 엄청 바쁘고, 3월부터는 여유롭다는 사실을 알았으니까. 그런데 다음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얘가 나랑 헤어지고 싶은데 내가 안 떨어져 나가니까 그냥 하는 말이면 어떡하지? 3월이 되어도 그한테서 아무런 연락이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나에 대한 단점을 지적했던 것이, 나를 애정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가 나를 지적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를 신뢰했을 텐데. 그 마음을 의심하지 않았을 텐데. 3월까지 허벅지를 찌르면서라도 묵묵히 그를 기다렸을 텐데.

타인의 행동을 보고 마음대로 판단하지 않았더라면 오해가 쌓이지 않았을 텐데. 그냥 남이라면 그렇게 오해하게 두는 게 맞을지도 몰라. 그런데 연인이라면, 나의 소중한 사람이라면, 오해하지 말고 물어봐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혼자 판단하지 말고 물어보는 태도를 가졌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그 사람을 오해하고 그의 손을 놓았다. 3월까지 기다려달라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 기다려달라는 말이었을 것이다. 근데 나는 알았다고 기다린다고 했다가, 그다음 날, 헤어지자고 했다. 그는 알았다고 했고, 우리는 이후로 한 번 더 만남과 헤어짐의 약속을 번복하다가 마침내 헤어졌다.

나는 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3월에 초라하게 그의 연락을 기다리다가 대답 없는 카톡 방을 보고 무너져 내릴 것이 공포스러웠다.

그의 마음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그가 나를 지적한 이후로, 그의 마음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 3월이 되었는데, 그때의 그가 또다시 나의 단점을 지적하며 이별을 말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믿을 수 없었다.

너는 아마 나를 조금은 원망했을 것이다. 왜 기다려주지 않았을까 하고. 왜 기다린다고 했다가 하루 만에 못 기다리고 헤어지자고 말했을까 하고.

오해는 오해를 낳는다.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타인의 의도는 묻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그가 지적했던 나의 단점도 그렇다. 당시 나는 하루 3번 고용량의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었다. 불안장애 때문에 약이 없으면 생활이 불가능했다. 약을 먹으면 몸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아침에 눈을 떠도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온몸이 무거운 추를 단 듯이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중력이 8배는 되는 것처럼 침대 아래로 몸이 끌어당겨진다. 나는 매일 그것을 이겨내고 학교를 가고 알바를 가고 약속 시간을 맞춰야 했다. 울면서 중력을 이겨내던 나에게 지각은 불가피했다. 하지만 이것을 그 누구에게도 설명하지 못했다. 설명한다 하더라도 이해받을 수 없는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이해받는다 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이겨내야 할 나의 지극히 사적인 영역이고, 타인이 이해해 줄 수 있는 영역이 아니란 것을 알았다. 그리고 또, 정신과 약을 먹는다는 말을 하면, 사람들은 앞에서는 이해하는 척을 하지만, 역시나, 저 사람 정신에 문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한다. 그것이 잘못됐다고는 차마 말 못 하겠다. 경험해보지 않은 것을 무슨 수로 이해하겠는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을 이해한다. 우리 가족도 내가 조금만 짜증내거나 뭔가 불만을 얘기하면 정신과 약을 먹어서 저렇다며 무시한다. 감히 이런 상황에서 애인에게 이런 사실을 말하기란 쉽지 않다. 내가 뭘 해도 내가 정신과 약을 먹어서 그렇다는 프레임이 씌워진다는 것을 나는 이미 수없이 경험했다.

그래서 아무에게도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고, 혼자서 이겨내려 했고, 하지만 역부족이었고, 그럴 때마다 지각을 했고, 다른 변명을 늘어놨다.


알바만 하고 친목에만 몰두하는 것은, 나는 20살부터 부모님에게서 경제적으로 완전히 독립했기 때문에 알바를 하지 않는 것이 불가능했다. 27살까지 알바 한번 안 해보고 부모님의 돈으로 대학원에 다니고 있는 부유한 재현이는 이해 못 하겠지. 알바를 하지 않고서는 생활이 불가능한 것을 그는 아마 절대 이해 못 하겠지. 이건 그의 사회 경험 부족과 타인의 삶을 인정하지 않는 그의 편협함이라고 밖에 설명할 수가 없다. 네가 경험한 것은, 남고와 공대와 군대와 대학원뿐이니까. 그것도 너와 비슷한 사람만으로 구성된 너의 작은 세계만을 살았으니까. 너는 너와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너와 성향이 다른 사람과는 조금도 엮이고 싶어 하지 않고, 곁을 조금도 주지 않는 사람이니까.

이런 모습은, 내가 그를 좋아하게 된 이유였던 인내, 절제, 실체 있는 지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편협함과 오만함에 가깝다.


나는 연애를 꽤 많이 해봤는데, 유독 너만 오랫동안 못 잊는 이유가 뭔지 생각해 봤어. 다른 사람은 한 두 달 지나면 다 잊혀졌는데 말이야. 너랑은 헤어진 지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잊지 못하고 어제 헤어진 것처럼 마음이 힘들더라고.

너는 나의 아니무스였어. 나의 결핍의 집합체. 내가 바라고 원하는, 내가 애써 외면하는 나의 결핍을 모두 갖고 있는 그런 사람, 나의 아니무스, 나의 이상형.

너와 헤어지고 나서, 나는 몸의 반 쪽이 떼어진 것처럼 아프고 힘들었어. 나의 결핍을 채워주던 네가 없어져서 심각하게 공허했어. 그렇지만 그 결핍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나의 그림자 같은 부분이라, 마주할 수가 없었어. 3년 정도는 애써 무시하며 외면하며 살았어. 좋아하지도 않는, 그러나 나의 아니무스 목록을 일부 갖고 있는 사람들과 연애 같은 걸 두 번 정도하고 나서 깨달았어.

너처럼, 나의 아니무스 목록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은 흔치 않구나. 그 목록의 일부만을 충족하는 사람은 많지만, 일부만을 충족하는 것만으로는, 노력을 해도 애정이 생기기 않는구나.

그리고 또 한 가지, 나의 결핍의 목록들, 인내, 절제, 침착함, 언행을 심사숙고함, 온화함, 실체 있는 지성.

나의 결핍을 남에게 외주를 주고 타인을 통해서 채우려 해서는 안 되는 거구나. 내가 스스로 체화해야 하는 거구나. 사실 완전히 타인을 복제하거나 흉내 내는 것은 불가능 해. 따라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지. 그것도 더군다나 나의 결핍인 부분을 어떻게 완벽히 복제하고 체화할 수 있겠어. 목표는 그것을 필요한 때에, 필요한 정도로 꺼내어 쓸 수 있는 정도로 만드는 거야.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니무스가 필요하지 않은 거지. 네가 채워주던 결핍을 내가 스스로 채울 수 있으니까 말이야.

이게 그림자의 통합이야. 너는 나의 밝은 면이 좋다고 했지. 그 말에 나는, 누구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고 했고, 너는 맞아,,라고 말했지. 아마도 네가 그때 삼켰던 말은, 그러나 타인의 그림자는 감당하기 힘들어.. 였겠지. 네가 왠지 이 그림자에 대한 이론을 궁금해할 것 같아서.

지금의 나는, 나의 결핍의 목록들을 체화시키는 데에 거의 성공한 것 같아. 조금만 더 노력하면 내면과 외면의 그림자 통합이 완성될 것 같아.

그림자가 통합되면 스스로의 결핍을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게 돼. 이전까지는, 나의 결핍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을 필요로 했었다면, 스스로 결핍을 채운 그림자의 통합 이후에는, 아니무스인 사람을 발견해도, 그 사람을 필요(need)로 하지 않고, 원하는(want) 정도로 관점이 바뀌게 돼.

그리고 신기한 건, 이걸 깨달음과 동시에 나의 아니무스에 일치하는 사람을 찾았다는 거야. 나의 아니무스를 완벽하게 갖고 있는 그런 사람은 너 말고는 없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것도 사실 너를 알기 전보다 더 전에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이었어.


우리가 정말 만약 다시 만난다 해도 결혼은 할 수 없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너는 또 나의 단점을 찾고 있을 거고, 나의 단점을 지적할 거야. 지금의 나는, 그때 네가 지적했던 단점을 모두 제거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나의 또 다른 단점을 찾아낼거야. 어떤 20년 경력의 이혼 전문 변호사가 그러더라. 이혼하는 커플의 공통점은 사랑이 바닥나서도, 가치관이 달라서도 아니고, 상대를 끊임없이 지적하는 거였대. 그게 이혼하는 커플의 공통점이라고 그러더라. 사랑이 바닥나도 결혼 생활은 유지되고, 가치관이 달라도 결혼 생활은 유지된대. 근데 상대를 끊임없이 지적하고 단점을 찾아내는 사람은 결혼을 유지할 수 없었대. 아무튼 그러니까 말이야. 나는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네가 바라던 대로 성공한 박사가 되었으면 좋겠어. 그 성공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네가 말한 성공은 아마도, 사회가 정해놓은 명예와 권위와 경제적인 것을 모두 충족한 삶이겠지. 아마 넌 그걸 다 얻을 것 같아. 넌 똑똑한 데다가 성실하기까지 하니까. 그렇게 성공한 박사가 되길 진심으로 바라.

네가 써줬던 편지들을 3년이 지난 이제야 불태우면서 내 안의 너에게 장례를 치러줬어. 이렇게 늦게, 이별을 받아들여서 미안. 내가 원래 뭐든지 좀 느린 편이야.


네가 이 편지를 볼 일은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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