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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요 Jan 01. 2019

워킹맘을 위한 회사는 없다

잊지 않으려 쓰는 글

누군가가 보기엔 사소하고 구질구질한 이야기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에겐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저릿한 이야기이고,

혹 훗날 내가 이 모든 걸 잊고 지금의 나와 같은 상황의 누군가에게 이런 일을 저지르는 사람이 될까 봐 기억해 두려 쓰는 글이다.


_

14개월의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육아 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는 날.

물론 걱정은 되었지만 육아로부터 벗어난다는 생각에 사실은 기대감과 해방감이 더 컸다.


 아직도 어제 일처럼 기억난다. 아침 일찍 화장을 하고 새로 산 옷을 입고 오랜만에 겪는 지옥철도 즐겁게 견디며 회사에 도착했다. 하지만 한 껏 들뜬 건 나뿐이고 하루하루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무심하게 반겨줄 뿐이었다. 심지어는 내 컴퓨터 내 자리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직접 담당자에게 전화 해 내 자리, 내 컴퓨터도 없다고 얘기를 하니, 인사 팀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는 대답뿐이었다. 육아휴직 후 복직은 나에게만 기대되고 나에게만 큰 일이었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다는 것은 결코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일이구나… ‘ 차갑게 깨달았다.

몇 번의 전화와 실랑이 끝에 컴퓨터를 받았다. "누가 쓰던 건데 새거나 다름없어~"라는 말을 들었다. '그래. 일만 할 수 있으면 되지 뭐...'  마음을 가다듬고 전원 버튼을 켰다. 그러자 모니터 가운데가 쩍 하니 갈라져있었다.

빨리 일 좀 했으면... 하고 바라보는 상사의 눈치를 뒤로 하고 다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담당자 왈 "아~ 깨진 모니터가 그거였구나~."  육아휴직자는 어차피 곧 그만둘 테니 새로운 장비를 지원하지 않아 라는 말을 듣는 것 같았다. 결국 그 모니터를 수리하고 몇 주 후 컴퓨터를 받게 되었다.


 장비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디자이너인 나는 그래픽 작업을 할 때 태블릿이라는 장비가 필요해 요청을 했다. 그랬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구입 요청할게요'가 아닌 '찾아볼게요'였다. 이 역시 며칠을 기다려 받게 되었다. 담당자의 손에 들려있는 태블릿에는 먼지가 뽀얗게 쌓여 작동이 되는지 궁금할 정도로 낡은 것이었다.

장비를 받고 나의 첫마디는 "이거 작동되나요?"였다. 그랬더니 담당자가 멋쩍어하며 "아... 한 번 연결해보세요."라는 말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작동은 되었지만 닦아도 닦아도 십 년 묶은 걸레처럼 구정물이 계속 나오는 태블릿을 닦다가 포기하고 그냥 쓰기로 했다.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 홀로 회사의 빈자리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막 입사한 신입사원들도 반짝반짝 빛나는 새 태블릿과 새 컴퓨터를 쓰고 있었다.

속에서 울컥 뜨거운 감정이 올라왔다.


손에 익지 않는 장비들을 억지로 내 것으로 만들며 일했다. 그러던 중 상사로부터 작업을 하려면 필요하니 유료로 깔아야 하는 폰트를 설치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번에는 담당자에게 직접 찾아가 설치를 부탁했다. 담당자는 인상을 팍 쓰며 "이미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아이디 빌려 써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동시 접속이 안돼서 제가 사용할 때는 다른 사람이 작업을 못해요."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도 아니고 일에 필요해서 요청을 하는데, 사정을 하는 꼴이 되어가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상사가 "걔 폰트 좀 깔아줘~ 형"이라고 말했고 순간 담당자는 태세를 전환해 한껏 사람 좋은 어투로 "같이 쓰면 안 돼?"라며 물었다. 상사는 " 에이 그걸 어떻게 같이 써~ 깔아줘~"라며 아무렇지 않게 되받아쳤다. 그러자 " 알았어~" 라며 그 어렵다던 유료 폰트가 말 몇 마디에 설치되고 있었다. 왜 같은 요청을 하는데 요청을 하는 사람에 따라 다른 피드백이 돌아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회사에 무언가를 요청할 때는 언제나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매 번, 매 요청마다 커다란 장애물을 넘고 넘어야 겨우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맘 떠난 애인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매달리는 비참한 심정이 되기 일쑤였다.

육아휴직 전에도 이렇게나 힘든 일이었나 기억을 되짚어 봤지만 그랬던 기억은 없었다.


사소하지만 작은 불편함, 불이익은 잡아도 잡아도 계속 나오는 기분 나쁜 불개미처럼 툭툭 튀어나왔다.

작은 불개미를 불쑥불쑥 만날 때마다, 한없이 작아지고, 서러움을 누르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제대로 일 할 준비는 되어있지 않았지만 할 일은 차곡차곡 준비되어 있었다. 첫날부터 회의에 회의가 거듭되고 있었다. 고작 1년 2개월을 쉬었을 뿐인데 회의 중에 떠도는 말들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영어로 진행되는 회의인 듯 수많은 말들이 귓가에서 튕겨져 나가고 있었다. 일을 할 여건도, 정신도 없었던 첫날, 모두가 당연하다는 듯 야근을 했고, 나도 하는 일 없이 허둥대다가 밤이 늦어서야 퇴근을 했다. 집에 돌아와 보니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가만히 아이의 손가락을 만져보았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가 잘 때 출근해서 잘 때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일찍 퇴근해서도 아이를 재우고 새벽까지 일을 했고,

주말에도 걸핏하면 출근을 했다.

집에 가기 싫어하는 상사와 6시 이후의 스케줄은 무조건 오케이인 팀장의 꿀 조합으로 끝도 없이 일이 밀려들었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아이를 못 보니 영상통화로라도 얼굴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전화를 걸었다. 화면에 비친 아이는 나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엉엉 울었다. 너무 보고 싶은데 참는 것처럼. 14개월 아이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이 지어진 다는 게 신기하면서 슬펐다. 그냥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너도 나처럼 똑같이 힘들었구나. 아니 너는 말도 못 하니 나보다 더 힘들었겠구나. 통화를 끝마치지도 못하고 나까지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마음을 가다듬으려 할수록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렇게 몇 시간을 울었다. 그런 날에도 어김없이 야근의 그림자는 드리워지고 있었다. 도저히 야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 용기를 내 얘기를 했다. "저 오늘만 좀 봐주세요." 그렇게 나오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 뒤통수에 대고 누군가가 "이래서 애엄마는 안돼"라고 수군거릴 것만 같았다.



누구보다 잘하고 싶었다.

이 직업을 잃고 싶지 않았다.

힘든 일이지만 재미있었다.

빛나는 20대의 청춘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곳이었다.



남고 싶은 백만가지 이유를 뒤로하고 결국 나는 몇 달 후 이직을 하게 되었다.

일은 조금 다르지만, 워라밸이 지켜지는, 나와 같은 아이 엄마들이 많다는 곳으로.

퇴직이 아닌 이직을 하게 된, 운 좋은 상황임을 알고 있었지만 기쁘기보다는 결국 나도 수많은 여자 선배들처럼 버텨내지 못한 또 한 명의 워킹맘이 된 것 같아 착잡했다. 그만두는 그 날까지 내가 나약한 걸까, 조금만 더 해볼걸 그랬나 수도 없이 흔들렸다.

더 악착같이 버텨서 '애엄마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라는 생각도 했지만,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게 뭘까 싶었다. 내 알량한 자존심 하나 지키자고, 아이와 남편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천 번을 흔들려서 힘든 결정을 했고, 회사에 소식을 알렸다.

그리고 내가 들은 첫마디는

"정말 실망이네, 이제 다른 사람들은 육아휴직을 어떻게 써?"였다.

못 견딜 상황을 못 견뎌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는데, 나와 같은 상황의 여직원들이 받게 될 불이익의 원인 제공자까지 되어야 하다니 너무 억울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내가 지금껏 당해온 힘든 상황들을 끝도 없이 설명했고, 만나는 사람마다 필요 이상으로 얘기했다.

단순히 애엄마라서 나약해서, 모성애에 절어서 하는 감정적 결정이 아니라고 확성기에 대고 얘기하고 싶었다.

이렇게라도 해야 다음에 복직을 하는 나와 같은 여직원들의 처우가 조금이라도 나아지지 않을까, 또 하나의 나쁜 선례로 남고 싶지 않은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회사는 팀장의 책임, 상사의 책임으로 돌렸다. 그 팀장이 잘못했네, 요즘은 바뀌었다고 하더니 아녔네...라는 말만이 돌아왔다. 들리는 소문엔 질책을 해야 한다는 요구에 인사 팀장이 끝없이 야근하는 팀장과 상사의 입장을 두둔했다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무슨 질책이냐는 거였다. 앞에서는 내 말을 다 이해하는 척했지만 결국은 야근을 밥 먹듯 하던지, 가정과 건강을 박살 내던지 성과만 내주기를 바라는 것이 회사구나 싶었다.

내가 그만둔 이후 팀장은 결국 많은 질책을 받았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아있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나아졌길 기대했지만 역시나 끝없는 야근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는 절망적인 소식만이 들릴 뿐이었다.



전엔 이런 느낌을 한 번도 받지 못했는데 이상하게도 육아휴직 이후에 다시 만난 회사는 너무나도 어리숙했다. 나는 회사가 워킹맘을 버티지 못하게 일부러 이렇게 못되게 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생각이 너무 짧고, 미성숙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대는 중학생을 만난 기분이었다.

나는 회사도 구성원들도 모두 워킹맘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원한다고 믿는다. 다만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 고민하지 않았고, 아니 해본 적이 없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일터로 돌아온 워킹맘들이 그 미숙한 과정 속에서 상처 받고, 같이 허우적대다가 나와 같은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만두려고 복직을 하는 사람은 없다.

어떻게든 남아보려 발버둥 치는 워킹맘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워킹맘들의 노력만큼 회사도, 사회도 함께 노력하고 생각했으면 한다.

워킹맘이 일하기 좋은 사회가 다른 구성원들에게도 나쁠 리 없으니까.

 

나의 후배들은 워킹맘이라는 꼬리표를 떼고 한 명의 사람으로 행복하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작지만 최대한 크게 몸부림 칠 것이다.



사진은 필름 카메라로 아이와의 일상을 기록하는 남편의 홈페이지(www.hudulgi.net)에서


나는 악착같이 직장에 남아보려 애쓰는 불행한 워킹맘이 되고 싶지 않다.

아이와 있을 땐 행복한 엄마로, 회사에서는 행복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법을 찾을 것이다.


또다시 어떤 이유로든 소중한 아이와의 일상을 희생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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