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시작한 뒤로 변한 게 많다. 전보다 활기가 생겼다. 집에 있어도 무작정 침대에만 누워 있지 않는다. 여전히 시간이 나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침대에 눕는 것이지만, 적어도 이제 침대와 한 몸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감각을 느낄 줄 아는 여유도 생겼다. 점심시간 뒤 마시는 커피의 달달한 향을 맡고, 고요함 속의 떨림을 감각하고, 공중에 흩날리는 벚꽃잎을 보며 몽글한 감정이 피어오를 수 있는 마음의 공간도 생겼다.
꾸준히 붙잡고 몰두할 취미도 생겼다. 하루 있었던 일이나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고, 미숙한 초안에 대해 AI에게 부족한 점을 피드백받아 글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생각을 글로 완성해 나가는 과정은 대리석을 섬세하게 조각하는 작업 같다.
좌절할 일이 생겨도 더 이상 땅만 파며 우울해하지 않는다. 노래방을 좋아하는 남자친구 덕분에 노래 부르는 재미를 조금 알게 된 뒤로, 신나는 음악을 부르며 좌절을 흘려보낼 줄도 알게 됐다.
연애의 어떤 부분 때문에 변했는지 정확히 말하긴 어렵다. 아이처럼 있어도 눈치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는 것, 물리적으로 편하게 밀착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친구는 남자친구를 만난 뒤 거의 모든 부분이 변했다는 듯 이야기했다. 얼마나 변했는지 자각하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길을 가다 문득, 그 정도로 내가 극적으로 변했다면 이 변화가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화의 이유가 타인이라는 건 나쁜 점일 수도 있다. 다른 사람에게 빌려온 빛이다. 나의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연인에게 의존적이 되거나, 연애가 끝났을 때 빛이 꺼질 수도 있다.
마음이 철렁했지만 곧 다시 안정감을 찾았다. 처음부터 노력해서 획득한 변화가 아니었다. 그저 연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니 변했을 뿐이다. 그러니 딱히 지금의 의미를 평가 절하할 이유가 없다. 연애의 끝을 상상하며 불안해지지도 않는다. 설령 모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원래 상태,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태가 되더라도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결과일 뿐, 내가 안 좋게 변한 것은 아니다. 빛은 꺼질 수도 있다. 그래도 지금은 빛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