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나면 그 날은 이미 끝난 것 같았다. 보람차게 살 수 없을 것 같으면, 그 날은 침대에 붙어있었다. 나는 모든 조건이 갖춰지고 결과가 보장될 때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인국에 사는 난쟁이 같다. 내 몸집보다 몇 배나 되는 도구들을 사용해서 씻고, 밥을 먹고, 하루 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그 안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커다란 가구들을 보면 그나마 있던 의욕도 꺾이고 에너지도 없어진다.
오늘은 이상하게 몸이 가벼운 날이었다. 가구들이 평소보다 작아 보였다. 그런데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여전히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그 결과가 의미가 있을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몸은 평소보다 조금 커져있는데 난쟁이의 시각으로 주변을 보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다시 독서실에 가야하나. 곧 있으면 저녁시간이라 다시 독서실로 간다 한들 10분도 공부 못 하고 집에 와야할텐데. 아니면 잠이나 잘까. 근데 지금 잠을 자면 분명 밤에 잠 못 잘꺼야.
‘그냥 청소기나 돌릴까?’
이 생각이 낯설었다. 나에게 청소는 ‘각 잡고 하는 일’이었다. 모든 가구를 빼고 청소기로 밀고, 걸레로 닦고, 다시 가구를 정리하는 일. 그래서 저녁 먹기 전 잠깐의 시간 동안 청소를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었다.
간단하게 청소기만 돌려도 청소가 될 수 있다. 바닥이 번쩍번쩍할 필요 없다. 머리카락만 좀 치워도 청소다. 청소기를 들었다. 생각보다 가벼웠다. 그제서야 더 이상 난 난쟁이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청소를 하고 나니 갑자기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선택지들이 넓어졌다. 이전에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이제는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로 들어왔다. 책상 위에 정리되지 않은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