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이유가 되는 상태

by 이유진

이전에 지인에게서 일상의 즐거움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는 어떻게 일상에서 즐거움이 있을 수 있는 건지 질문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극적인 사건도 없고 사람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어떤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건지 오히려 궁금했다. 일상의 즐거움을 못 느끼는 상태가 2주 이상이 되면 우울증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을 때는 그럼 세상 모든 사람이 우울증에 걸려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행복에 대한 나의 감각도 즐거움과 똑같았다. 나이는 먹어가는데 여전히 백수인데다 이렇고 저렇고 그렇고 그런데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이유가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감사일기를 매일 써본 적도 있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느끼고 쓴 건 없었다.


지금 돌아보니 착각을 단단히 했던 것 같다. 행복은 어떤 기준을 통과해서 플러스 상태가 되어야 성취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 대학원에서 뛰어난 두각을 나타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나서는 그래도 명함을 내밀 만한 번듯한 직업은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30대 중반이 다가왔을 때는 돈을 얼마 정도 모아놓고 번듯한 사람과 결혼을 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요 며칠 난생 처음 보는 감정을 느끼고 있다. 처음 느껴보는 것이라 행복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사이에 남자친구가 생기긴 했지만 이 감정을 그걸로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박사 과정 진학은 포기했고, 시험은 몇 번 더 떨어졌고, 나이는 한두 살 더 먹고, 여전히 백수고, 통장 잔고는 0원이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서 독서실로 향하는 길에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게 행복하고, 독서실에 앉아 모의고사를 푸는 게 행복하고, 집에 와서 가족들과 함께 밥 먹는 게 행복하고, 밥 먹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고 고요함을 느끼는 게 행복하다. 오후 공부를 끝내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 행복하고, 저녁을 먹고 노트북을 펴서 글을 쓰는 게 행복하다.


지금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가 상상하고 믿었던 행복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다. 뭐라고 정확하게 정의하긴 힘들지만 적어도 아무런 걱정을 느끼지 못하는 상태는 아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상태도 아니다.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흥분되어 있는 상태도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상태도 아니다. 그냥 모든 것이 이유가 되는 상태다. 이 상태가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가공감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