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그런 믿음을 가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믿음이 지금 내 인생을 답이 없어 보이게 만들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다.
학창 시절의 나는 남들과 달리 어딘가 특별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종종 엉뚱한 방식으로 그 특별함을 증명하려 했다. 시험 기간 자습시간에도 시험공부 대신, 이해하지도 못할 어려운 책을 읽으며 지적 허영을 채웠다. 그때 내가 붙들고 있던 것은 ‘물리학’, ‘영성’ 같은 종류의 책들이었다.
그 허세는 결국 나를 물리학과에 입학하게 만들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버거웠다. 그런데도 특별함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지 못했던 걸까. 9년을 학교에 다니며 겨우 졸업해 놓고도, 나는 대학원에 들어가는 선택을 하고 말았다.
공부가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어쩌면 이 공부가 나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면서도, 나는 ‘나는 남들과 다르니까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물리학 석사생이에요.”라고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나를 똑똑한 사람으로 봐주는 느낌이 달콤했다.
하지만 속은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전공책이 하는 말을 ‘어떻게든’ 대강 이해하기는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물리학의 언어를 하나도 모른 채, 손짓과 발짓으로 뉘앙스를 겨우 짐작하며 물리학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맥락과 사고 단계를 정리하고 또 정리해도, 막 처음 눈 뜬 사람처럼 보고도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마치 모래를 움켜쥐는 것 같았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를 보며 절망했다.
그래도 좋은 인연을 만나 졸업은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물리학을 내 경력으로 이어갈 용기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남들과 다르니 어딘가에 탈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도착한 곳은, 서른다섯 살 무경력 백수였다.
‘특별함’에 대한 내 믿음은, 생산성이 최고 가치인 이 세상에서 나를 다른 의미로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