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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블제이 Jul 29. 2021

코팡안의 고양이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여행지가 누구나 하나씩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함께 간 사람 때문일 수도 있고, 그곳에서 보거나 경험한 것 때문일 수도 있으며, 혹은 아직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곳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코팡안이 그런 곳이다. 


코팡안에 가는 것은 쉽지 않다. 태국 방콕에 도착하여 배 혹은 비행기를 통해 수랏타니 항구에 가고,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신혼여행지로 유명한 코사무이를 지나야 갈 수 있는 곳. 자그마한 섬에 약쟁이 파티광 히피부터 오오라 힐러 차크라 힐러 레이키 선생 등 온갖 종류의 여행객이 다 모여드는 곳. 코팡안에 들어가기 전 우리는 방콕에서 잠시 머물렀고, 한국에서 넘어온 다른 친구들과 함께 크라비와 코란타를 여행했다. 코란타에서는 호텔에 머물렀지만 코팡안에는 집이 있었다.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구한 이 집은 우리보다 먼저 섬에 들어와 살고 있던 친구 커플이 살던 곳이기도 했다. 집주인은 근처 요가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었고 우기에는 본가인 코펜하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미누가 있었다. 미누는 작은 삼색고양이로, 집주인에 의하면 그 집은 미누가 선택한 미누의 집이라고 한다. 그니까, 그냥 집에 살고 있었는데 미누가 굴러 들어왔다는 말이다. 


우리가 처음 집에 도착한 날, 미누는 집 근처를 어슬렁거리다가 밥을 조금 먹는 척하더니 도망가버렸다. 원래 바깥에서 놀고 밤에 들어와 잔다고 들어서 별 걱정은 되지 않았지만 서운했다. 집은 나무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헛간 같은 모양새였는데, 비나 벌레 때문에 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집이 나오는 구조였다. 계단 밑은 오토바이를 세워두거나 물이 끊기는 경우를 대비해 받아놓은 물을 저장해놓는 곳으로 사용했다. 나중에서야 이곳에 때때로 미누가 남자친구를 데려와 함께 노닥거리고 옆집에 살던 앤디의 개가 고양이 냄새를 좇아 어슬렁거린다는 것을 알았다. 미누가 집에 들어온 것은 그 다음 날 오후쯤이었다. 마지못해 우리를 인정하듯 집에는 들어오지도 않고 계단과 파티오를 어슬렁거리다 파티오에 놓여져 있던 테이블에 올라가 잠을 자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해서 밖에서 잠을 잔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밥을 챙겨준다는 것은 동물과 인간 사이에 기본적인 유대 그 이상을 만들어준다는 것을 그때 처음 배웠다. 나는 밥을 주었을 뿐인데 미누는 내 다리 사이를 지나다니며 머리를 부비고 침대에 올라와 내 어깨 근처에 또아리를 틀고 잠을 청했다. 우리가 바닷가에 다녀올 때면 집에 다다라서 오토바이 속도를 크게 줄여야 했는데, 미누가 언제 오토바이 앞으로 튀어나와 배를 뒤집고 애교를 부릴 지 몰라서였다. 하루는 미누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새빨개지기 시작해 병원에 데려가기도 했고, 이 일에 보답이라도 하듯 살아있는 도마뱀을 자꾸 잡아왔다. 꼬리가 잘린 채 공황 상태에 빠진 도마뱀을 쓰레받기로 담아 밖에 버리면서 미누가 정말 고마워서 도마뱀을 잡아온 건지 내가 패닉하는 모습이 우스워 그런 건지 고민하곤 했다. 


우리가 코팡안을 떠나 쿠알라룸푸르로 가던 날은 새벽같이 움직여야 했다. 새벽 비행기를 타기로 해서 그보다 더 일찍 배를 타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택시라고 불리지만 사실은 트럭인 이 자동차를 새벽 세시 반쯤 탔어야 했다. 우리와 함께 침대에서 잠을 자던 미누가 가방 부스럭대는 소리에 깨었고 우리는 자동차가 올 때까지 한참을 바닥에 앉아 미누를 만졌다. 차에 타면서 미누는 여느 때처럼 밖에 나가서 놀겠거니 하고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데, 차가 집에서 멀어질 때쯤 파티오를 바라보자 그 곳에서 초록색 빛 두 개가 빛나고 있었다. 미누는 떠나는 우리를 언제까지고 바라봐주었다. 나는 조금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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