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대기업 PM_5년차 회고

5가지 성장, 4가지 부족한 점 그리고 한국 PM개발문화와의 간극

by 노마드윤



어느덧 독일에서 가장 큰 패션&라이프스타일 이커머스인 '잘란도'에 입사한 지 5년이 꽉 채워지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잘란도는 예상하지 않았지만 이로서 내가 가장 한 곳에 오래 다닌 회사가 되었다. 이를 기념해서 지난 5년간의 회고를 해보려 한다.


It began with...

2021년 7월 코로나 시기에 계약서 하나를 덜렁 들고서 독일어는 한 단어도 모르고 독일이란 곳조차도 잘 모르는 상태로 베를린에 도착했고, 도착 2주 후부터 '재택' 근무를 시작했다.

당시 나는 약 6년 정도의 일 경력이 있었는데, 프로덕트매니저로서 일한건 한 4년 남짓이었고 풀타임 영어로 PM일을 한 적은 없었다. 해외에서 일한 경험도 없었다. B2C 플랫폼만 주로 다루다 보니 B2B 물류/풀필먼트 쪽에 대해서는 아무 지식도 없었다.

그 상태로 덜렁 갑자기 B2B Zalando Fulfillment Solution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당시에는 PM이 나포함 5명, 개발자는 고작 20-30명 정도 되는 작은 팀이었다.



5년 간 나는 성장했는가?

그 후 5년간, 이 팀은 PM이 30명 이상 개발자는 200명 이상되는 실로 성장한다. 그 가파른 성장의 여정에서 내 리드(상사)는 7번이 바뀌었고, 나는 세 가지의 도메인을 옮기며 맡았고, 세 개의 큰 프로덕트의 릴리즈를 했으며, 많은 챌린지를 겪으며 나름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 다시 5년 전의 나를 돌아보면 분명 성장한 것들은 있다. 다만, 내 성장이 조직의 성장만큼 빨랐는가?라고 하면 그건 아닌 것 같다. 중간에 출산과 육아가 잠깐 끼어있었던 부분도 있지만, 내 조직이 빠르게 사업을 확장시키는 동안 나는 그 속도와 지식을 항상 허덕이며 따라가는 축에 속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성장했다고 느끼는 부분들은 아래 다섯 가지 정도일 것 같다.


1. 글로벌 프로덕트 매니지먼트의 기준과 트렌드에 맞춰 일하며 그것이 이제 완전히 체화되었다는 것

무슨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가 대체로 정해지고 그걸 잘 해결하는 것으로 PM의 Scope이 한정된 곳이 많은 한국과 다르게 해외의 PM들은 자기의 Area 혹은 Domain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전체 사업 전략, 프로덕 전략에 맞게끔 자신이 문제의 발굴/우선순위를 정한다. 이 부분을 완전히 체화하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익숙해졌다.

2. 리더십과 이해관계자 관리, 협업에 대해 많이 배웠고 배우고 있다는 것

한국은 Leading with expertise(그 회사와 업계의 지식이 많아져 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리딩하는 형태) 리더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느끼는데 오히려 해외에서는 Leading with Facilitation/Leadership Expertise(팀원들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비전을 설정하며, 조직의 전략을 추진하는 형태)를 더 자주 보는 것 같다. 이는 내가 한국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던 리더십을 배울 수 있게 해 줬다.

그리고 일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항상 친절하고 협조적이지 않은 타 부서의 사람들과 함께 협업할 일들이 늘어나며 이해관계자 관리(stakeholder management)에 대한 능력이 많이 요구되고 있다.

그 외에는

3. 비즈니스 영어 커뮤니케이션이 처음보다는 많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

4. 고객(파트너들)에 대한 이해, 풀필먼트와 물류에 대한 이해가 많이 높아졌다는 것

5. 마지막으로 내 영역에서 어떤 프로덕트 비전을 세워야 할지 윤곽이 명확히 졌다는 것

정도가 나의 주 성장 포인트 들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부족하다고 느낀 점들

성장한 부분들도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거나, 시니어 PM으로써 점점 더 큰 규모의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 기회들이 늘어나며 새롭게 부족한 부분을 발견한 것도 있다.

1. 자기 PR이 익숙지 않고, 이를 위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 아웃풋에 비해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

2. VP레벨, 그 이상의 리더십과의 커넥션을 만들지 못했다는 것

3. 어려운 이해관계자들과의 갈등을 유연히 해결하는 게 아직 힘들다는 것

4. 내 도메인 이외의 도메인에서 진행되는 사업, 프로젝트들을 잘 캐치 업하지 못했다는 것


나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자는 주의 기도 해서, 프로젝트를 하나 시작해서 끝낼 때까지 여러 번 이해관계자들을 모아서 뭘 할지, 뭘 하고 있는지 등 진행상황을 발표하고 업데이트하기보다, 아웃풋 나온 것을 위주로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그런데 B2B특성상 하나의 솔루션을 릴리스하는데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 걸리다 보니, 이 부분에서 우리 실 전체적으로 내가 한 일에 대한 인지도가 떨어진단 생각을 했다.


지난 2년간 아무것도 릴리스하지 않은 동료 PM는 지속해서 자신이 하는 프로젝트를 발표하고, 비전을 이야기하고, 프로모션 케이스를 만들어 프로모션에 필요한 조건들을 클리어해나가는 동안, 나는 미련하게 일을 열심히 하고 프로덕트 릴리즈를 하고 임팩트를 만들어내기 바빠서 프로모션 케이스를 만들지도 않았고 이를 위한 발표나 (프로모션에 도움이 될) 리더들과의 관계에 열심히 투자하지도 않았다.


물론 이게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누가 뭘 하는지 알지 어려운 큰 조직에서는 팀장의 추천만으로 승진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신이 자기의 승진을 위해 열심히 프로모션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잘란도에 입사 후 2년 만에 시니어로 승진은 수월했다. 미드레벨에서 시니어는 팀장권한+디렉터 권한정도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니어에서 프린시플 승진은 Director레벨 혹은 그 이상의 여러 명이 스폰서가 돼 주어야 하기에, 리더십과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짧고 흔치 않은 커뮤니케이션 안에서도 좋은 인상을 주는 것) 자기의 프로젝트 / 문제 영역을 지속적으로 그룹에 promote 하고 communication 하는 것, 협업하는 타 부서의 사람들과 갈등관계를 최대한 만들지 않고, 혹은 이를 잘 해결해서 그들도 승진에 동의하게 하는 것들이 필요하다.


(나의 변: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고 오랜 시간 일한 나는 이런 부분이 약하다. 그런데 시간을 쏟지도 않았으니 시니어로 머물러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물론 내 프로모션을 책임지고 밀어줄 팀장을 만나지 못한 불운도 있었다. 최소 2년은 내 위에 있어야 되는데 7번이 바뀌다 보니...)


한국에서 해외로 이직하려는 PM들에게...

점점 더 느껴지는 한국 프로덕 매니지먼트 문화와의 괴리

회사마다, 조직마다 다르겠지만 한 달에 1-2번 꾸준히 커피챗 온라인 콜을 받아 PM, 마케터, 개발, 디자인 분야에 계신 한국 실무자 분들과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며 느낀 것은, 가면 갈수록 한국과 글로벌 PM의 업무방식과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마존 출신의 외국인 프로덕트 리드들이 많은 쿠팡 제외)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한국이 여러모로 글로벌 스탠더드(범용적으로 세계적으로 따르고 있는 프로덕트 매니지먼트 문화)를 따르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스타트업은 배제하고, 규모가 최소 몇천 명 이상되는 회사에서 규정하는 프로덕 매니저의 '역할', 그리고 프로덕 개발 문화 등이 많이 다르다는 뜻이다.

정말 실력있는 한국의 PM분들이지만 이런 부분이 보완이 되지 않으면 시니어일수록 인터뷰를 통과하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간극 1 - 프로덕 개발 문화 차이 (Problem Discovery & Definition 단계의 부재)

Problem Discovery&Definition이 무엇인지는 이 글에서 이미 설명을 했기에 정의는 넘어가겠다. B2B 특성상, 그것도 물류센터와 운영 등이 껴있는 조건의 프로덕트 특성상, 빠르게 개발해서 테스트해 보고 롤백하는 것이 불가능한 섹터의 PM으로 있기 때문에 더 이 문제 발견과, 정의가 중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커피챗 콜을 통해 만난 여러 PM들은 대부분은 문제 발견과 정의를 제대로 해보지 않은 분들이 많았다.

예1. 이 서비스의 XX지표를 N% 올리라고 해서 YY기능을 기획했습니다.

- XX지표를 몇프로 올리라는 건 KPI인데 이게 프로덕트의 골로 정의 됨. 프로덕트의 비전, 전략, 목표에 대한 정의가 부재.

- YY기능을 만드는데 문제 정의가 부재함


예2. 유저가 X%이탈하는 문제를 발견해서 YY를 기획했습니다.

- 유저가 X%이탈하는 문제는 현상이지 '문제'가 아님. 이탈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구조적인 접근 부재.

- 역시 YY기능을 만드는데 문제 정의가 부재함


'현상(XX지표가 % 떨어짐)'을 보고 진짜 root cause를 찾는 문제의 발견도 PM의 중요한 역할이지만, 정말 중요한 역할은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혹은 해결하지 않았을 때의 business Impact (비즈니스적 영향)를 명확히 정리해서 우선순위의 '결정'을 내리는 것에 있다. 바로 이 부분이야말로 AI가 도저히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자, PM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Problem definition 문서야말로 PM의 역할의 빛이 가장 발하는 산출물이 아닐까 한다. 여기서 깊이 다루지 않겠지만, Problem definition문서에는 아래의 항목들이 명료하게 정의되어야 한다.

What problem are we solving? (value proposition) -what

For whom? (target market) - who

How big is the opportunity? (market size) - why (impact)

How will we measure success? (metrics / revenue strategy)

What alternatives exist today? (competitive landscape)

Why are we best suited to pursue this? (our differentiator)

Why now? (market timing) - why (now , what if we don't)

How will we get this to market? (go-to-market strategy if this is applicable)

What factors are critical to success? (solution requirements / constraints) - t-shirt size estimation (xs - 1 month M - 1Q L - 2-3Q XL - 1 yrs) /confidence level/risk

여기까지는 Inspired 책에서 추천하고 있는 항목들이고 나는 추가로 아래 항목들을 문제 정의 문서에 추가한다.

Dependencies (With whom do we have dependencies to solve this problem?)

Risk (What are the risks?)

Recommendations & Sign off table (위 사항 모두를 검토했을 때 메인 작성자 PM이 추천하는 방향성이나 high-level solution options를 넣고 key sponsors or stakeholders의 sign-off를 받는다.


우리 회사에서는 Sr.PM으로서 40% 시간을 문제 발견/정의에 60% 시간을 솔루션 디자인&딜리버리에 쓰라고 추천하고 있다. 보통 Sr.PM은 프로젝트 4-6개 정도를 맡는데 2-3개는 문제 발견/정의 단계에 있고 2-3개는 솔루션 디자인과 딜리버리 단계에 있다고 보면 된다.


간극 2 - 협업, 리딩, 매니징, 이슈 제기 등과 관련된 문화의 차이

프로덕 디벨롭먼트에 대한 문화차이가 간극 1이었다면, 두 번째 간극은 협업을 하는 방법, 프로젝트든 팀이든 이해관계자들이든 리딩하고 매니징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escalation(문제를 상사 혹은 그 이상의 레벨에게) 하는 문화등이 한국과 차이가 많다고 느낀다.


한국에서 협업하고 문제가 생기면 이를 해결하는 방법과는 굉장히 다른 정치적인 전략과 싸움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것에 타고나서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나처럼 헤멜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여러 실(department)에 걸친 PM들이랑의 협업이 나는 사실 가장 어려운데, 그들도 그들만의 initiatives들이 많이 있고 압박을 받고 있기 협업 시 상당한 에너지가 요구된다. 이때 그래도 최대한 갈등과 혼선을 피하기 위해 하는 몇 가지의 작업들이 있는데, 이를 공유해 보자면...

첫째. 하나의 목적을 위해 너무 많은 실들이 엮인 규모가 있는 프로젝트이고, Dependency가 서로에게 많을수록 PMO, PJM (즉, 프로젝트매니저)를 영입해서 각 Workstream PM들의 진행상황을 체크하고, 팔로우 업하는 일과 Risk를 리더십에게 공유하는 일을 맡기면 좋다. 내가 PM인데, 주로 리딩하는 입장에 있다고 해서 PJM의 업무까지 도맡을 필요는 없다.

둘째. 전체를 아우르는 하나의 프로덕트 도큐먼트를 만들어서, 개요를 작성할 때 Ways of Working, Guiding Principle을 꼭 정의하고 기록한 후 Kick-off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Ways of working은 말 그대로 협업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룰을 서로 논의 후 정해서 적어놓는 거다. 그리고 Guiding Principle은 프로덕트의 골을 달성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포인트들이 뭔지 적시해서 모두가 각 기능의 경중과 우선순위에 대한 감을 쉽게 잡을 수 있게 한다.


대부분의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최소한 우리 회사는 상당히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Head of Product는 보통 알아서 각 PM들이 문제를 발굴/정의/해결하게 내버려준다. 그의 역할은 방향성과 우선순위를 전체 사업 전략, 우리 실 전략에 따라 잘 맞춰져 있는지 점검하고, Impact에 대한 의미 있는 중요한 질문들을 던져서 스스로 점검하게 하고, 팀장의 '권한'이 필요한 문제가 있을 때 이를 해결하는 서포터의 역할을 한다. 이 것이 내가 위에서 언급한 Leading with Facilitation/Leadership Expertise이다.


앞으로의 N 년

앞으로 내가 프로덕트매니징을 몇 년 더 할지 (혹은 AI바람으로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아직 배울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 부분들을 돌아보면 PM 스킬, 경험에 대한 것보다는 이해관계자 관리, 전략적인 말하기, 리더십 기르기, Self-promotion잘하기, 그리고 업계에 대한 지식 더 늘리기 등이다.


지금으로부터 5년 후에 이런 부분들이 많이 성장해 있기를 바라며 :)


저는 유투브 '노마드 윤' 채널을 운영하며 2주에 한번씩 저의 독일 회사생활, 워킹맘 일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상담은 https://linktr.ee/NomadYun 통해서 커피챗 온라인 콜, CV리뷰 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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