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담담히 털어놓는 말
9개월간 가족 말고는 누구에게도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고객센터 빼고. 나는 두문불출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친구 4명이 모였던 단톡방도 조용히 나온 지 오래였다.
그러다 얼마 전, 그중 한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가장 친했던 다른 친구와 인연이 다한 듯해서 멀리하게 되었다고만 담백하게 전했다. 지난 일에 더 이상 욕할 것도, 떠들 것도 없었다. 친구도 캐묻지 않았다.
친구는 공무원 생활에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오랜 수험생활 끝에 안정된 직업을 얻었는데, 친구는 사는 게 너무 괴롭다고 말했다. 나는 갈팡질팡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연락 못해서 미안했다며, 사실은 내가 자리 못 잡고 떠돌다 보니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남에게 이런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숨기지 않고 오는 연락에 잠수 타지 않고 이렇게 담담하게 털어놓고 보니 마음이 편했다.
그전에 멀어진 다른 친구들에겐 여유롭고 편하게 사는 모습을 보였는데(그땐 실제로 조금 여유가 있고 편하긴 했었다), 그게 그렇게 질투를 자아냈었나 보다. 끊임없이 걸어오는 기싸움과 비교, 경쟁 구도에서 시달리다가 끝내는 관계를 정리했던 게 떠오른다. 하지만 초라함을 느끼는 마음은 진실이었으며, 버티던 모습을 내려놓고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남은 친구에게 조용히 털어놓은 건 용기였을지도 모른다. 차분하고 속이 깊고 입이 무거운 친구인 걸 아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보고 싶다 ㅇㅇ아.”라고 평소 그렇게 과묵했던 친구가 말했다. 어쩌면 그건 친구 자신을 위한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왠지 아직 세상과의 연결점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신호로도 느껴졌다. 9개월간 대체로 두문불출하면서 딱히 외롭지는 않았다. 오히려 거짓된 인간관계에 진절머리 났고, 사람에 대한 실망으로 가득 차서 그 감정들을 소화하느라 괴로운 시간을 보냈다. 친구의 말 한 마디에 조금은 나아지는 기분이었다.
때때로 초라한 기분이 느껴지고 나는 그 안에서도 조용히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나는 초라함을 느끼는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 도망치지 않는다.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하거나 남 앞에서 있는 척 부풀리지 않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 괜찮은 척도 이제는 안 하기로 했다.
그렇게 초라한 기분을 느끼는 자신을
담담히, 힘껏 끌어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