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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Sep 05. 2024

가면을 벗고 싶은 성격장애 환자의 이야기

정서적 독립을 향해서




 오늘은 포장은 과감히 벗겨내고 가장 솔직한 내 이야기를 할 것이다. 꽤 무거운 이야기일 수도 있다.




 수급자로 살며 남의 돈 빌려 안 갚고 할머니가 갚게 하는 친척부부가 있다. 사이비종교에 빠져 현실과 마주하길 피하고 충동적, 어려운 감정조절과 비사교성으로 정신장애가 있나 의심된다. 어떻게 이런 사람도 있나 했다.





 그러나 그들을 욕하기엔 나는 3년 전 성격장애를 진단 받은 사람이다. 강박성 성격장애는 유전과 환경의 영향으로 생긴다고 한다. 학교 다닐 때부터 사회생활까지 대부분 부적응의 반복이었다. 대체 인생을 살면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뭐였을까?





 친할머니는 썩은 음식도 버리지 못할 만큼의 저장강박증이 있어 명절에 오는 며느리들을 고통스럽게 만들어 왔다. 그 밑에서 자란 아버지의 모습은 융통성 없는 에프엠, 강박적인 자기관리와 구두쇠 같은 경제관념,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 과한 통제, 비사교성과 고집이었다. 내 예전 모습과도 중첩되는 부분이 많았다. 나의 경우엔 오랜 치료로 강박이 다소 완화되었지만 가끔 그 사실이 무섭다.





  엄마는 아빠가 능력이 좋고 머리도 좋은 편이지만 수십년을 같이 살아도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모두가 과민하고 유별난 아빠에게 맞추고 살았다. 이런 걸 보니 성격마저 유전과 환경의 영향이 맞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나의 강박성 성격장애로부터 우울증, 사회불안장애, 강박사고와 공황발작까지 생겼었다는 걸 안 후로는 그냥 맥이 빠졌다. 퍼즐이 맞춰진 듯, 이 모든 게 태어나서 내가 맞이할 운명적인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계획은 없다. 이런 진단을 받은 사람을 받아줄 사람도 없을 거고 태어나 삼십여년을 살며 이미 정신적으로는 충분히 고통받았다고 생각한다. 지속된 정신적 문제와 낮은 자존감으로 인간관계를 잘 못하면서 소외와 무시를 받고 느꼈던 스트레스도 컸다.





 얼마 전엔 신점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데 내게 자살을 시도한 적이 없냐고 물었다. 계획은 수없이 세웠지만 결국 못 죽었다고 말했다. 약물중독이나 마찬가지인 담배를 안 끊고 계속 피는 이유? 삶이 소중하지 않으니 굳이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좀 더 노력하면 자연사처럼 빨리 죽을 수도 있을 거다. 너무 극단적인가.





 병이 재발해서 독립에 실패하고 본가로 돌아왔을 때, 오빠와는 다르게 난 계획이 아닌 실수로 만든 자식이지만 어떻게든 힘을 내어 살아나가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낳은 게 후회스럽단 뜻이겠지. 정서적 억압과 조건적인 사랑의 결과로 잘난 자식을 바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난 잘난 자식이 아니고 이젠 착한 자식도 못 되겠으니 부모님이 밉다는 걸 스스로 속이지 않고 그만 인정해야 하는 걸까. 평상시의 감사함과 오랜 미움의 양가감정에서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친한 친구가 말했다

너 그렇게 된 거 부모님 때문이야. 아직도 모르겠어? 그렇지만 원망한다고 바뀌지 않고 결국 너가 자신을 이길 방법을 찾아야 해.





 평소엔 싫은 티가 나지 않게 부모님께 맞추고 복종해왔다. 부모님은 내게 권력자다. 받을 재산도 조금 있으니까. 하지만 겉으론 화목한 가정의 구성원, 속으론 썩어간 마음. 이게 우리집의 나를 보는 진짜 내 시선이었다.




반복해서 스스로 억압해온 감정들은

그야말로 ‘순응 뒤에 감춰진 분노’ 

였다. 




 성인이 되었지만 정서적으로 원가족에게서 제대로 독립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재화된 괜찮은 척, 구김없는 척은 그만하고 이젠 가면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느낀다. 이런 게 정말 필요했던 내 모습이 아닐까? 앞으로도 변화의 노력이 필요하다.





 강박성 성격장애의 방어기제는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좋은 면만 드러내어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해서 안심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이 글을 통해 나의 진실된 부정적인 감정들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드러내 보고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면 좀 더 성숙한 방어기제로 감정을 소화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겠지.





 스스로 생을 마감한 먼 친척 이야기를 두 번이나 들었다. 솔직한 마음으론 실행력이 부러운데 티내지 않기 위해 일반적인 의견을 말하려고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나 난 앞으로도 스스로는 절대 못 죽을 거다. 이런 인생도 끝까지 겨우겨우 이끌고 가겠지.

이 뒤틀린 것들은 앞으로 풀어내거나 품고갈 내 생의 카르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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