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면 능력자였다.
2018년도 입사 후 야근은 당연해졌고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퇴근하면 좋았고 매달 10일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들어오는 나의 한 달 치 욕값이 나를 버티게 했다. 급여명세서는 메일로 오는데 바쁘니 몇 달 치 급여명세서를 한꺼번에 확인하기도 했다. 급여가 들어왔다는 문자를 보고 급여통장을 확인하는데 통장에 찍힌 숫자가 낯설었다. 지금이라면 도망쳤을 텐데 그때는 내가 너무 순진했고 착했다. 경리과에 전화를 해서 급여 입금이 잘못되었다고 회사 계좌번호를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나 총무과에서 결재받은 대로 집행했기 때문에 오류는 없다는 말만 들었고 나는 총무과장님께 전화를 했다. 총무과장님은 나에게 화를 내시며 급여가 인상되었는데 경리과에 전화를 하면 어떡하냐는 말을 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감사하다, 죄송하다 말만 할 뿐이었다. 그렇게 그 일을 잊을 즈음 몇 달 뒤 또 급여가 인상되어 입금되었다. 나는 호봉인상인 줄로 만 알았는데 호봉치고는 액수가 많은듯해서 다시 총무과장님께 전화를 했더니 역시나 나의 노고를 치하해 회사에서 나에게는 말도 없이 독단으로 급여를 인상시켰다는 것이었다. 주면 주는 대로 받으라는 말이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도리어 나는 겁이 났다. 얼마나 나를 부려먹으려고 이렇게 돈을 주나 싶은 게 무서웠다.
당시 나는 새벽 6시에 집을 나섰고 출근해서 일을 하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퇴근하는 일상을 반복하고 있었다. 울면서 일을 했고 일하는 기계가 되어갔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지쳐가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들은 잘 때 잠시 얼굴을 볼 뿐이었고 토요일, 명절 전날도 출근을 했었다. 집안일도 전혀 할 수가 없었다. 퇴근하고 씻고 잠을 자고 눈뜨면 다시 출근하는 오토리버스 기계가 된 것 같았다. 집안도 당연히 엉망징창이 되어갔다. 결혼 후 남편은 내 자식과 더불어 돌봐야 할 나이 많은 시어머니자식이었고 가만히 누워서 손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식사, 청소, 빨래 같은 집안일을 했다가는 남자의 체면이 떨어진다는 말 같지도 않은 시아버지의 말을 숙명처럼 받들고 있었다. 전업주부로 살아오던 시절에는 생활비를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 자다가도 일어나 수발을 들어주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의료보험이며 생활비도 대부분 내가 충당하고 있었지만 집안일은 나의 고유한 영역으로 고착되어 나만 기다릴 뿐이었다. 새벽 1시나 2시가 되어 잠을 잘 수 있었고 잘 때까지 집안일에 기운을 빼앗겼다. 그런 나에게 월급이 오르고 있었다. 이 하찮은 나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지만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굳은 결심을 하고 나는 총무과장님을 찾아갔다. 더 이상 야근은 못하겠으니 나의 급여를 깎고 시급으로 급여를 받아도 좋으니 칼퇴근을 하고 싶다고 했다. 난감한 표정을 지으시며 인상된 급여는 특별한 사유 없이 삭감될 수 없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받으라고 또 같은 말을 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내 사무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입사 시 급여가 적기는 했지만 시급보다는 나은 조건이라 그 연봉으로 계약서를 작성했었다. 딱 한 가지 조건은 칼퇴근이었다. 나와 면접을 진행했던 얼음마녀 부장님은 당연히 퇴근시간은 넘기지 않는다 호언장담을 했었다. 그런데 칼퇴 같은 건 나에게 사치였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일이 쏟아졌고 2018년 입사했지만 2016년 서류까지 만들어 채웠다. 그렇게 나의 행복이었던 급여는 무서움으로 바뀌어갔다. 배부른 소리 같지만 급여가 올라간다는 것은 더 열심히 하라는 의미였고 나는 더 이상은 열심히 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나의 한계를 넘어 나를 갈아 넣고 있었다. 모든 돈에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미리 간파하고 도망을 갔었어야 했는데 나는 정말 순진했고 착했다. 그리고 조직을 너무 사랑했다.
입사 후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인데 나의 전임자들은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반나절만에 연락두절을 하고 잠수를 탔고 그래서 경력이 거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나에게 까지 면접의 기회가 왔던 것이었다. 군말 없이 자발적 야근을 하고 수당까지 청구하지 않으면서 비교적 서류 작업도 안정적으로 해 내는 나를 경영진에서는 높이 평가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의 월급이 자꾸 오르고 있었다. 내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생각보다 나는 큰 사람이었지만 내 마음속의 나는 딱 내 키만큼 이었던 것이다.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능력 있는 사람이지만 나의 진가를 나만 몰랐다. 이제 6년 차 나름 짬이 찬 직장인이 되었고 누가 나에게 이유 없이 화를 내면 똑 같이 화를 내고 욕을 하면 똑같이 욕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 직원이 무서워하는 얼음마녀 부장님과 독대를 해도 전혀 밀리지 않는 내면의 힘도 키웠고 조직이 좋아 아직도 조직에 있는 여자사람아줌마로 살아가고 있다. 경력단절을 뚫고 그동안 노력의 대가라고 하기엔 지금의 급여나 복지가 한참 모자란다고 생각하지만 당시 여자사람아줌마인 나의 가능성을 믿어준 이 조직이 아직은 좋아 출근이 즐겁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코로나시기부터 나는 입사 후 몇 년간 하지 못했던 칼퇴라는 걸 하고 있다. 퇴근시간에 퇴근할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기쁘다. 경력단절이라는 긴 터널을 빠져나와 아침에 일어나 갈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른다. 취준생이나 경력단절여성들이 취업을 희망한다면 나의 경험을 통해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면 한다. 또한 경제적인 여유와 더불어 자신의 내면을 키워 단단히 만들었으면 한다. 과거의 나처럼 수발인생으로 살고 싶지 않다면 무엇이든 지금 시작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작하기 좋은 때는 바로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