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왜 거기서 나와!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람.
다음날 출근하라는 전화가 왔다. 그것도 당장 내일부터.
나는 안된다고 했다. 냉장고가 비어 있었고 방학중이라 밑반찬이라도 몇 가지 해놔야만 했다. 당장 출근을 하지 못한다는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아이들 반찬 때문이라고 아니 그깟 반찬 때문에 출근을 미룬다는 말이 믿기지 않았는지 전화기 너머로 코웃음이 들려왔다. 그리고 차가운 얼음 마녀로 돌아가 전화를 끊었다. 출근 후에 안 사실이지만 그런 하찮은 이유로 출근을 미루면 안 되는 것이었다. 좀 더 근사한 이유를 만들어서라도 말했어야 했다. 얼음마녀는 그 조직의 실세였다. 물론 월급은 받지만 재단 이사장님이 어릴 때부터 이미 이조직에 몸담고 있었던 문고리였는데 나는 알지 못했다.
출근을 한 첫날은 밥 먹고 시간만 보내다 왔고 둘째 날부터 일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전년도 사업결산서와 그해의 사업계획서를 내놓으라는데 전임자는 연락두절이고 내 책상 위에는 A4 용지 2장의 인수인계서만 있을 뿐이었다. 서류로는 어디 내놔도 밀리지 않던 나지만 업무파악 자체가 되지 않았고 증빙자료도 하나도 없었다. 견적서와 명세서도 없이 카드전표만 있을 뿐이었다. 어쩜 이렇게 허술하게 일을 하고 있었는지 돈은 썼지만 어떤 용도로 어느 회사에 결제했는지 연락처조차 없었다. 물품구입에 몇백만 원을 사용했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남은 물품도 물론 없었다. 당연히 증빙도 없었다. 퇴근시간이 5시 30분 인지도 출근 하고 한 달이 다 되어서야 알았다. 아무도 나에게 회사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하다못해 직원식당에서 국통에 국자를 깊이 넣어야 건더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도 몰라서 2주는 국물만 먹었다. 없는 증빙자료를 찾아 경리과에 저녁 8시가 넘어 전표철에 코를 박고 나의 증빙 전표를 뒤지고 있었다. 경리과 대리도 나와 동갑으로 비슷한 시기에 입사해 멘땅에 헤딩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타 부서였지만 늦은 저녁 퇴근도 못하고 타 부서까지 가서 전표를 뒤지는 나를 이해해 주었다. 그렇게 둘이서 전표를 찾고 영수증을 복사하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었는데 밖이 소란스러웠다. 부티나는 나이 많은 여자분과 어디서 많이 들어본 남자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11개월 계약직을 했고 다시 재계약을 하기로 구두약속을 한 기관의 대표가 복도에 서 있었다. 사실 나는 정규직이라는 메리트만 보고 출근을 했고 간을 보다가 힘들면 그만 둘 생각이었다. 차라리 11개월 계약직을 한번 더 하자 생각이 있었다. 나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그런데 세상 좁게도 경리과 앞 복도에서 그 돌아갈 곳이라 생각했던 그 기관의 대표를 만났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는 한순간에 돌아갈 곳을 잃었고 어쩌면 정규직도 계약직도 다 잃는 멍청이가 될 것 같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부티나는 나이 든 여자는 당시 출근한 회사의 재단 이사장님이었고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기관의 대표는 수십 년 동안 오빠 동생하는 막역한 사이였다고 한다. 재산을 만들면서 도움을 받아 그때 인연을 몇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오고 계시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얄팍한 마음으로 저울질을 하고 있었다. 정말 세상 좁고 특히 대도시가 아니면 3번의 만남만 거치면 친척이거나 친구 거나 고향사람이다. 할 수 없이 며칠 후 연차를 내고 음료수와 간식을 사들고 재계약을 못하게 된 죄인으로 사죄를 하러 찾아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어야만 했다. 어차피 나는 이곳에서 일할 운명이었던 것 같다. 직원들도 좋은 곳에 취업이 되었다며 축하를 해주었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정규직과 계약직을 저울질해 양다리를 해보려고 했지만 세상은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하지도 않은 사업들을 정리하고 영수증을 찾고 전년도 결산서와 당해연도 계획서를 만들어 내야만 했다. 이렇게 나의 야근의 서막이 시작되었다.
그때 도망쳤어야 했다는 걸 나는 얼마뒤 알았지만 때는 늦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