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개 싸움처럼 실패해 보기

처맞고도 웃을 수 있을까?

by 해섬

실패는 온갖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온다.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5가지 감정 상태가 번갈아가며 문을 두드린다.

똑똑똑, 어떤 날은 분노가 2 연타

똑똑똑, 어떤 날은 우울이 2 연타

제멋대로 긴 해도, 시도 때도 없이 안부를 묻는다.

'아직 회복 안 됐지?', '응, 그래.'


실패라는 결과는 보통 불안과 좌절, 수치심, 자책과 무기력을 만들어내는데,

이런 감정들이 너무나도 감사한 운수 좋은 날 분에 넘치게 들어오면,

정신이 혼미해지고 자기 확신도 흔들리게 된다.


오는 파도 가리지 않고 전부 맞아보겠다는 생각은 맷집을 키울 수는 있겠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은 생각보다 녹록하지 않고 심지어 재미도 없다.


실패를 견디는 힘은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게 아니라

흔들리거나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정신력이 강하다는 건 흔들리지 않는 게 아니라 흔들려도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감정을 휘두른다고 안될 일이 되진 안겠으나,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감정을 억누른다고 해소되지도 않는다.

억지로 막아봐야 덧난다면 그게 더 큰 이자로 돌아온다.


처맞고 쓰러져서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릴 때 동생과 베개 싸움을 하면 처맞아도 그렇게 행복했다.

애초에 서로를 합법적으로 두들겨 팰 수 있도록 상호 합의하에 머리, 어깨, 무릎, 발 차례대로 훑어주는 계획된 놀이였으니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했던가?

실패라고 선언하는 게 아무렇지는 않겠지만, 계획된 실패라면 그래도 조금은 즐겁지 않을까?

'우와, 또 실패했네'가 반복된다면, 계속 웃고만 있을 수도 없겠으나..


내가 기준을 세우고, 스스로의 감정선을 읽으며,

회복할 방법까지 설계할 수 있다면 실패라는 상황이 감히 나를 망가뜨리진 못하지 않을까?


누군가 또 실패했냐고 묻는다면,

처맞아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도록 실패를 설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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