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도 사람도 결코 상냥하지 않았던, 그래서 더 고고했던 시절의 기록
아리아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그의 아뜰리에. 인터뷰 도중 그는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음... 내가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은 노래방에서 마음껏 노래를 불러보는 것이에요. 나는 그럴 수가 없는 사람이라서 쓸쓸할 때가 많아요."
그때 나는 ‘그럴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사이의 쓸쓸한 괴리감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인간 김봉남이 국민 디자이너 앙드레 김으로 살아오는 길은 분명 외로웠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만난 앙드레 김은 노래방에서 마이크를 잡은 자신의 모습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최고인가 아닌가에 대해 평생을 까다롭게 굴었던 그는, 일반인과 동화되지 않는 '결벽에 가까운 순백의 삶'을 기꺼이 선택한 이였지 않은가.
사실 그의 옷은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아무나 입어서 편할 수 없는 옷. 꽃으로 비유하자면 생화보다는 '조화'와 같았다.
입는 사람이 아닌 보는 사람의 경외심을 위해 철저히 계산된 '아트웨어'의 세계.
하지만 그 지치지 않는 열망이야말로 패션이 신분의 상징이던 시대, 대중 위에 군림할 수 있었던 카리스마 디자이너들의 철학이자 본질이었다.
판타지 무대 위에서 거행된 '권력자들의 출석 체크'
그는 자신의 성채를 공고히 하기 위해 현실의 권력을 이용할 줄 아는 영리한 외교가이기도 했다.
그의 쇼는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라, 거대한 사교의 장에 가까웠다. 쇼를 시작하기 전 약 10분 동안 이어지는 초청 인사들의 '출석 부르기'는 그 백미였다.
각국 외교 사절부터 도지사, 기업 대표들이 그의 호명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혹한 현실 정치를 하는 이들이 앙드레 김이 지어 올린 허상의 판타지 무대 위에서 그의 통제에 따라 일어났다 앉기를 반복하는 광경은 기묘하면서도 실소가 터져 나오는 대목이었다.
그는 오지 않은 사람을 향해 특유의 발음으로
"Are you absent?"라며 기습적인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이때, 영어 문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그사람이 왔느냐 안왔느냐에 대한 호기심만 장내를 술렁이게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웃픈' 상황을 비웃을 수 없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환상을 권력자들마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현실로 치환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범접할 수 없는 그만의 파워였기 때문이다.
사실, 그는 대중이 생각하는 것처럼 마냥 다정한 '선생님'만은 아니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극도로 친절한 어투를 구사했지만, 자신의 권위가 조금이라도 침해되었다고 판단되는 순간 그는 달라진다. 인터뷰 도중 예리한 이야기들이 그의 성채를 건드리면, 그는 책상을 '탕' 소리 나게 내리치며 서늘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유 기자님?"
그 순간 아뜰리에에 흐르던 화려한 아리아는 침입자를 경고하는 장엄한 진혼곡처럼 들렸다.
그의 엘레강스는 자신의 '작품'과 '권위'를 지키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자 일종의 '의전'이었다. 그의 작품은 항상 고결한 고대 왕국의 이미지를 그리지만, 정작 본인은 그 완벽한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 우아함을 철저히 연기한 지독한 완벽주의자였던 셈이다.
이브 생 로랑은 은퇴를 선언하며 말했다. "이제 시대는 변했고, 이 흐름을 칼에 찔린 비둘기의 심정으로 받아들인다." 앙드레 김 선생의 타계 뉴스를 접하던 날, 나는 한국 패션계의 한 시대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었다.
남다른 삶 탓에 온갖 구설에 시달리기도 하고 때로는 희화화되기도 했지만, 그는 40년을 한결같이 한국 패션을 대표하며 군림했다. 그는 대중에게 투영된 한국 패션 역사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옷감을 사가던 그의 젊은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그때가 정말 패션 디자이너들의 춘삼월 호시절이었을까.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누구보다 팍팍하고 불편하게, 기분이 좋을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럽게 말을 걸어오던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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