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쇼핑 잔혹사, 서비스라는 개념이 태어나기 전의 풍경
요즘 고급 백화점의 친절함은 눈물겨울 정도다. 특히 명품 매장은 입구에서부터 깍듯한 인사를 건네고, 직원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고급스러운 서비스로 고객의 만족도를 극대화한다.
그러나 30년 전, 대한민국 패션의 메카였던 백화점도 그랬을까?
90년대 초반 명동의 유명 백화점 매장. 그곳엔 지금의 친절한 직원 대신 기 센 ‘판매 전문 언니’들이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취재수첩 한구석에는 이런 황당한 에피소드가 적혀 있다.
"입어봤으면 사는 거지, 그냥 가?"
“이거... 입어봐도 돼요?” 물으면 “안 돼요!!”라고 서슴없이 잘라 말한다.
“그건 꺼내지 마세요. 보통 사이즈라면 다 들어가니까 맘에 안 들면 나중에 바꾸면 되잖아요.”라며 거들떠보지도 않는 매장도 있다.
집에 가서 입어보고 맘에 안 들면 다시 오라는, 분쟁을 예고하는 듯한 기이함이 당시엔 버젓이 존재했다. 디자이너 브랜드인데, 정말 비싼 옷을 파는 매장인데, 이럴 수 있을까?
“아유, 그건 손님한테 안 맞아.”
무안해진 손님이 옷을 벗어 놓고 나가려고 하면, 이번엔 등 뒤로 호통이 날아온다.
“입어보고 그냥 가면 어떡해? 사지도 않을 거면서!”
지금 같으면 당장 ‘고객 만족 센터’가 마비될 상황이지만, 그때는 뒤통수가 따가워도 그냥 그러려니 하던 시절이었다.
마치 시장 바닥의 복숭아 가게 주인이 “이거 달아요! 안 달면 장사 안 해! 믿으라고!”라고 외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른바 ‘복숭아 가게식 경영’이 백화점 안에서도 판을 쳤다.
디자이너의 카리스마, 판매원의 오만이 되다
저가 브랜드도 아닌데, 왜들 그랬을까?
시스템이 없던 시대, 디자이너도 판매원도 카리스마로 소비자를 이기려 들었다. 그때는 패션이 곧 '권위'였다. 옷이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 불리던 시대, 이렇게 입는게 멋이다.는 디자이너의 한마디가 통하던 시대.
이름난 디자이너들 중에는 안 어울리는 고객, 솔직히 구매할 것 같지 않은 고객들은 절대 상대하지 않는다는 이도 있었다. 그런 에티튜드(?)가 자신의 브랜드의 가치를 높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디자이너들의 카리스마가 판매 현장까지 그대로 전이된다는 점이다.
판매원들 역시 고객들 위에 군림하며 매출을 올리는 스타일도 분명히 있었다.
안하무인 격의 오만함과 근거 없는 자부심이 뒤섞인 날것의 에너지가 매장을 지배하는 것이다.
시스템이 친절을 만드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판매원의 ‘기분’이 곧 매장의 규칙이기도 했다.
이런 무질서한 현장을 누비며 나는 기록했다. 패션업계에 닥쳐올 ‘위기와 대변혁’에 대해서 말이다.
결국 예견대로 30년이 지난 지금, 패션계의 생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변했다. 부도와 소멸의 시대를 거쳐 모든 것이 시스템화되었으며, 무례함도 오만함도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물론 요즘도 가끔 도매상가 등지에서 가성비 좋은 옷을 찾으러 다닐 때면 그 시절의 투박한 ‘서비스 부재’와 재회하곤 한다.
마치 욕쟁이 할머니 식당을 찾은 것처럼 헛웃음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그곳엔 ‘사람’과 ‘사람’이 부딪히는 뜨거운 현장의 맛이 남아 있다.
여러분은 어떤 쇼핑의 기억이 남아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