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쉽을 수락한 것은 2019년 11월. 해를 넘기고 2020년 1월에 멧으로 사원증을 만들기 위해 갔다. 인턴쉽의 시작 날짜는 2020년 2월 1일이었다.
1월의 뉴욕은 너무 춥다. 특히 센트럴 파크 근처 어퍼 이스트는 너무너무 춥다. 하지만 기쁜 마음으로 멧으로 갔다.
추운 날씨와 오전 시간대에도 불구하고 이미 미술관에는 관광객이 꽤 있었다. 그리고 멧의 빨간 브랜드 컬러의 플래그가 눈에 띄어다. "THE MET 150" 이후에 내가 이 150주년 기념 전시 관련 프로젝트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이때까지도 '나보고 메일 잘못 보냈다고 하면 어쩌지'라는 약간의 불안감과 싱숭생숭함으로 가득 찼다.
세큐리티에게 "나.. 사원증 만들어 왔는데.." 하니까 웃으면서 기다리라고 했다. 세큐리티 직원이 한 명이 직접 나를 HR팀으로 데려갔다. 이때 처음 알았는데 멧은 3개의 큰 건물로 이어져있는데 이게 서로 연결이 직접적으로 되어있지가 않다. 나의 미로 찾기는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사실 마지막 출근날까지 길 헤맴)
사원증을 만드는 것은 간단했다.
"너 포지션이 뭐야?"
"디지털 부서의 UX 인턴"
"(얼굴 사진 찍고, 지문 찍음)"
"끝났어. 니 사원증은 시작 날에 니 슈퍼바이저가 직접 줄 거야."
10분도 안되어서 모든 절차가 끝나고 터덜터덜 나왔다. Staff Only라는 글자가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
정확히 2월 1일은 아니고 대충 그 주의 평일이 나의 첫 시작 날짜였다. 일단 오후 12시까지 가기로 했다. 떨리는 맘으로 멧으로 갔다. 이번에는 세큐리티가 아니라 나의 진짜 팀원이 나를 데려오기로 했다. 미술관 1층에서 길 잃은 강아지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는데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유키?"
나는 새내기 인턴이 지을 수 있는 최대한의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반겼다. 곱슬머리에 모자와 안경을 쓴 E와 처음 만났다. 지난 4개월 동안 2개의 인턴쉽을 하며 "뉴욕 사는 젊은 백인 남성"에 대한 여러 선입관과 편견이 쌓이고 있던 차였다. 그리고 E는 나의 그 많은 고정관념과 정반대였다.
그는.. 매우 조용하고.. 조용했다..
나를 데리고 5층의 디지털 부서에 가는 동안 그는 말이 없었다. 처음에 나는 그가 나에게 화가 났나 싶었는데 그냥 수줍음이 무척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게 되자 "나 같은 내성적인 너드는 재택근무가 파라다이스다"라고 했다. 그리고 팀원 모두 수긍했다.
하지만 첫날에는 E의 말없는 모습이 날 더 긴장시켰다. 그래서 그가 알려주는 지름길 따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다. 몽롱한 상태로 오피스에 도착했다. 생각보다 아담한 사이즈의 오피스가 나를 반겼다.
상당히 작은 규모의 팀이었다. 무엇보다 작은 것은
내 책상. 엄마가 이거 보고 "책상 좀 바꿔달라 해.."라고 안타까워하셨다. 하지만 책상의 크기와 상관없이 재택근무하게 되니까 저 작은 공간이 그리워졌다.
저 의자에 멀뚱멀뚱 앉아있으니 수줍음 많은 E가 와서 나의 어카운트 세팅을 도와줬다. 비밀번호를 설정하고, 멧 전체 슬랙에 들어가고(내 휴대폰 케이스가 고양이인 것을 보고 "유키 고양이 좋아해...? 고양이 슬랙에 초대해줄게..."), 와이파이에 접속하고. 그리고 이때쯤 나는 E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아 이 사람.. 내성적이고 수줍음 많은 사람이다! 내 앞에서 본인이 떨고 있다..!'
급속도로 그에게 깊은 유대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디지털 부서는 크게 2개로 갈린다.
-Content Team: 모든 디지털 채널에 올라가는 사진, 영상, 글을 책임진다.
-UX Team: 멧의 모든 디지털 프로덕트를 책임진다. 나는 이곳에 소속되어있다.
각 부서에는 개발자들과 프로젝트 매니저들이 전방위로 퍼져있다. 어떤 인적구조인지 전혀 모르겠다. 애초에 Digital Department는 신생 부서다. 부서를 총괄하는 매니저를 제외한 디렉터/팀장급들도 굉장히 젊은 사람들이다. 90프로가 인턴쉽을 통해 전환된 사람들이거나 막 대학/대학원을 졸업한 사람들이다.(주로 석/박사) 주로 4-5명의 작은 팀들로 구성되어있어서, 실제 프로젝트와 관련된 사람 아니면 만날 일이 없다.
우리 UX팀은 개발자 파트/ 디자이너 파트로 또 갈린다. 디자이너 파트는 총 4명이다. 매니저, 그리고 3명의 디자이너. 그렇다. 이들은 고양이 손이 필요했다. 바로 내 손!
슈퍼바이저가 바빠서 사원증은 다음날 받기로 했다. 어영부영하다 보니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첫날은 E가 출구로 데려다줬다. 입구에서 그와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뒤를 돌아보니 1월 밤의 멧이 모습이 보였다. 손님들이 다 빠져나간 전시장을 지나 퇴근을 하자니 또 기분이 묘해졌다.
(>>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