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체

by 숨비소리

어릴 때 내 글씨체는 엄마 글씨를 그대로 베껴놓은 것 같았다.
'글씨체도 유전이 되나?'
싶을 정도였다.
그에 비해 아버지의 글씨체와는 조금도 닮은 점이 없었다.
둥글둥글하고 귀여운 엄마 글씨체에 비해 아버지의 글씨체는 날려쓴 듯하면서도 반듯한, 1940년대에 태어난 사람이 쓸 법한 그런 글씨체였다.

하지만 오늘 공책에 글을 쓰는데 문득 내 글씨체가 아버지의 글씨체를 닮아가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유품을 정리하다 발견한 일기장에 담겨있던 그 글씨체.
살아오면서 느꼈던 억울함을 토해내던 그 글씨체.
내 유전자 어딘가에 아버지의 글씨체가 담겨있었던 걸까.

아버지 살아생전에 나는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실 아버지는 가족 누구와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돈을 벌지 않았고, 겨우 돈을 벌던 시절에도 벌어온 돈은 주로 노름을 하거나 술을 마시는데 써버렸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 늘 술주정을 부렸다.
사람과 싸우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평생 그런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입원해 있을 때도 코로나라는 핑계로 아버지를 찾아가지 않았다.
아버지를 용서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이 오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가족들은 각자의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을 것이다.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보내야 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각자의 숙제였다.
나는

'아버지한테는 그럴만했어. 아버지, 자식들한테 조금도 제대로 한 게 없잖아.'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하지만 요즘, 나는 아버지가 불쌍하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 꼬여버린 것이 세상의 탓이라 여겼던 아버지.
그래서 세상을 원망하느라 모든 생을 다 써버린 아버지.
그 과정에서 가족들마저 잃어버린 아버지.
죽는 그 순간, 그 누구도 자기를 위해 안타까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던 아버지가 불쌍했다.
그렇게도 똑똑했고 그렇게도 책을 많이 읽었으면서.
그렇게 많은 것을 알았으면서 아버지는 어째서 그 원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알지 못했던 걸까.

예전에는 아버지의 자식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한다.

아버지.
다음 생이 있다면, 그런 건 믿지 않지만 그래도 혹시 그런 게 있다면, 그때도 다시 아버지와 딸로 태어나 봐요.
그리고 그때는, 매일매일 웃으면서 함께 조잘대는 그런 삶을, 자식에게 둘러싸인 채 외롭지 않게 지내는 그런 삶을 살아봐요.
그때는 우리, 서로 미워하지 말고 가족답게 지내봐요.

라고.

아버지를 이해하고 나자, 내 속에 숨어있던 아버지의 글씨체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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