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내는 연습

by 숨비소리

5월의 막바지인데도 날씨가 싸늘하다.
반팔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은 나는 발을 동동 거리며 사람을 기다린다.
내 손에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가 들려있다.

잠시 후, BMW 한 대가 집 앞에 멈춰 선다.
아주머니가 내게 후다닥 달려온다.
나는 책을 건네주고, 아주머니는 내게 3000원을 건네준다.

"안녕히 가세요."

그 말 한마디와 함께 우리의 거래는 끝난다.

나는 요즘 책을 정리하는 중이다.
책들에 파묻혀 집이 좁고 답답하게 느껴지는 게 더 이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책을 정리하는 과정은 간단하지 않다.
책을 일일이 꺼내 몇 페이지쯤 읽어본다.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책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는 책은 남겨둔다.
몇 페이지를 읽어봤는데

'아, 이건 아니다.'

싶은 책은 당근 마켓에 올린다.
그렇게 몇 권의 책을 팔았다.

책이 떠나고 나면 시원할 줄 알았는데 마음 한편에 섭섭함이 밀려온다.
내 추억이 하나씩 팔려가는 것 같다.
내게 책은, 나를 버틸 수 있게 해주는 무언가였다.
책이 내게 건네준 것들, 그것들이 나를 채웠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내가 건네받은 것들을 바탕으로 이 힘든 시간들을 버티고 있다.

하지만 안다.
이제 나는 버틸 수 있는 힘을 얻었고, 더 이상은 저 책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걸.

한 권, 한 권, 책꽂이에서 책을 꺼내며 나는 인사를 건넨다.

안녕.
잘 가.
그동안 고마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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