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니 빗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나를 짓누르고 있는 듯 몸이 무겁고 아팠다.
끙끙 거리며 한참을 누워있었다.
'아, 영화.'
아이들과 조조로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한 게 생각났다.
후딱 몸을 일으켜 급하게 밥을 준비했다.
아이들이 밥을 먹는 동안 날씨를 확인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비는 더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비가 너무 많이 오는데?"
나가기 싫은 마음을 담아 아이들에게 한 마디를 건넸다.
"내일 보러 갈까?"
딸아이가 동생에게 묻는다.
"그래."
아들이 대답한다.
집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한숨이 터져 나온다.
싱크대에는 설거지 거리가 한가득 쌓여있다.
감자튀김을 만들 거라며 썰어서 물에 담가둔 감자도 있다.
호기롭게 소파 매트를 만들겠다며 집에 있는 천들을 모아 조각조각으로 잘라내느라 널어놓은 천, 가위, 천조각, 실밥들이 거실에 널브러져 있다.
머리가 어지럽다.
얼른 adhd약을 삼킨다.
의사가 처방한 아침약은 10미리지만 20미리짜리 약을 선택한다.
요즘은 예전처럼 약을 먹어도 효과가 떨어진다.
의사는 우울증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다.
나는 우울증으로 부족해진 집중력을 약으로 채워 넣는다.
약효가 나타나길 기다리며 소파에 잠시 누웠다.
근육통이 몰려왔다.
아이를 낳고 나선 장마철만 되면 이렇다.
하지만 지금은 저기압 때문인지 근래에 몸을 너무 무리하게 사용해서인지 알 수 없다.
타고난 에너지 레벨이 무척 낮은 사람인데 억지로 쥐어짜 내며 살아가고 있다.
이제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다는 게 느껴지는 요즘, 어쩌면 몸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인지도 모른다.
제발 좀 쉬어.
"딸내미가 멕시코 요릿집 간다는데?"
남편이 며칠 만에 말을 걸어왔다.
오늘 외식을 하러 가기로 했었지, 참.
비가 이렇게 오는데 꼭 나가야 하나 싶지만 나가기 싫어하는 사람이 오래간만에 나가기로 마음먹은 거니까 조용히 따라주기로 한다.
"아빠~ 같이 오락하자~"
딸아이가 아빠에게 매달린다.
웬일로 남편이 흔쾌히 응해준다.
"엄마는 아프니까 안 되고."
그렇게 나를 제외한 3명이서 게임을 한다.
그동안 나는 식세기를 돌린다.
남은 그릇들을 손으로 씻어 건조대에 정리한다.
흰 빨래들만 분류해서 세탁기에 집어넣는다.
아침에 도착한 택배들을 정리한다.
하는 김에 재활용통도 조금 정리해 놓는다.
널브러진 천 쪼가리들을 치운다.
다이소에서 천을 넣어둘 바구니를 사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감자에서 물기를 빼 기름에 튀긴다.
그 사이 세탁기가 다 돌아갔다.
빨래를 건조기에 옮겨 담고 이번에는 색깔옷들을 빨기 시작한다.
일을 하는 동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남편도 오래간만에 아이들과 함께 웃는다.
나는 베란다로 가 식물들에게 물을 준다.
화분 하나는 다시 옮겨 심어야 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아이들과 남편의 웃음소리가 계속 들려온다.
모두가 웃고 나만 일한다.
하지만 왠지 나도 함께 어울려 웃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빠와 아이들이 함께 하며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
내가 남편에게 원했던 건 어쩌면 집안일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저렇게 웃으며 시간을 보내주는 거였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내가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을 내 아이들이 가질 수 있기를 바랐던 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