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
대문자 P인 나에게 여행준비는 비행기표 예매, 숙소와 렌터카 예약이 전부이긴 하지만 말이다.
원래는 비행기표와 숙소 예약으로 끝났어야 할 일이지만 제주도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으니 렌터카 예약이 추가되었다.
하지만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별로 없어서 예약 자체가 어렵지는 않았다.
나는 여행계획 세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여행지에 대해 조사를 하다 보면 이미 그곳을 다녀온 기분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유럽여행도 결국 가지 못했다.
여행계획을 세우는 동안 질려버렸다.
그렇다고 아무 계획도 없이 유럽으로 덥석 떠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가뿐한 마음으로 유럽여행을 포기했다.
내게 계획을 세우는 일은 유럽여행을 접어버릴 만큼 싫은 일이다.
늘 계획 없이 다니다 보니 유명한 장소를 보지 못하거나 갔던 곳 근처를 다음날 다시 가게 되는 일도 생긴다.
비효율의 극치다.
하지만 덕분에 남들은 하지 못할 일을 하기도 하고 가지 못할 곳에 가기도 한다.
누가 오사카에서 오로지 지하철로만 교토까지 이동할 생각을 할까.
사실 나도 의도한 건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지하철을 타게 된 것뿐.
길을 잃고 떠돌던 동네의 구석진 놀이터나 우체국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누가 알까.
어느 집주인의 뛰어난 주차실력(옆차와의 간격이 1cm 정도였다)에 감탄사를 내뱉을 수 있게 된 것도, 골목길을 헤매다가 더위에 지칠 때쯤 발견한 동네 작은 카페에서 시켜 먹은 팥빙수가 의외로 맛있어서 즐거웠던 것도, 내게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덤으로 그렇게 헤매다가 공동묘지에도 갔다.)
휴관일임을 모른 채 들렀다가 닫힌 문 앞에서 '이런 젠장'을 내뱉어야 했던 오르골 박물관도, 오르골 박물관을 향하던 길에 만났던 옛 느낌이 물씬 풍기던 기찻길도, 내게는 행복이었다.
헤매던 그 순간, 그로 인해 우연히 마주친 모든 것들.
내게 여행은 그런 것들의 총합이다.
가족 여행이 노동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갈 때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계획형인 남편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사실 내 딴에는 나답지 않게 계획을 세웠는데도 남편이 화를 내는 경우도 있다.
역시 뭔가 어설픈 거겠지.
'그럼 자기가 계획을 세우면 되잖아.'
라는 문제제기는 뒤로 하고, 가족들의 편의와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내 스타일을 버리다 보니 여행을 가도 무언가 불편하다.
이번 여름, 14년 만에 3박 4일로 혼자 여행을 떠난다.
14년의 세월 동안, 나는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잊었다.
이번에 제주도에 갔을 때는 그럴 수 있을까?
예전처럼 내키는 대로 아무렇게나 다니다가 숨은 보석들을 찾아낼 수 있을까?
아마 그러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자동차엔 네비가 있다.
목적지를 지정하면 정해진 길, 효율적인 길로 나를 안내해 줄 것이다.
그 덕분에 재미가 줄어들긴 하겠지.
하지만 원하면 지정했던 목적지를 지워버릴 수도 있고, 중간 지점을 끼워 넣어 일부러 돌아갈 수도 있다.
아니면 하루 종일 아무 데도 가지 않고 바다에서 수영만 하고 늘어져 있을 수도 있고.
14년 만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돌아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