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도 재활이 필요해

by 숨비소리

오늘은 상담을 가는 날이다.

지난주는 굉장히 느긋하고 평온한 상태의 연속이었다.


'이제 많이 괜찮은데 상담이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 진짜 문제는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있고, 무의식의 영역을 건드는 것은 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다.


상담선생님이 지난주는 어땠냐고 묻는다.


"굉장히 잘 지냈어요. 예전에는 집을 떠올리면 힘들기만 했는데 요새는 편하고 좋아요. 아이들이 얼른 방학해서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였거든요. 유대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 옛날엔 가족과 함께 있는 것이 해결해야 하는 미션처럼 느껴졌는데 지금은 안 그래요."


선생님은 이제 내 내면에 조금씩 힘이 생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부탁도 하고, 거절도 할 수 있게 된 거라고.

확실히 예전보다 부탁을 많이 하는 편이기는 하다.


나는 우울증 약과 스트레스를 줄이는 약을 먹으며 상담을 받는다.

둘 중 하나만 해서는 효과를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다.

약은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하지만 약이 내 심리적 문제를 치료하지는 못한다.

약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 그동안에 상담으로 내 마음을 살펴보고 그 속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살핀다.

그렇게 나는, 40년 넘게 내 속에 잠들어 있는 상처를 치료하는 중이다.


선생님은 내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불안이 높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불안은 현재의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내면아이가 겪는 거란다.

고성과 싸움이 난무하는 집에서 자라야 했던 어린 시절의 내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불안에 떨고 있다.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일은 굉장히 심도 있는 대화가 필요해요."


선생님은 천천히 진행하고 싶어 하시는 듯했다.

하지만 나는 다음 주부터 하고 싶다고 말한다.

40년 가까이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온 나의 내면아이를 더 기다리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선생님이 시간을 두려고 했던 이유는 아마 나와 친정엄마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지난주의 나는 친정엄마와 화해하는 일을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했기 때문이다.

엄마에 대한 격렬한 반감.

하지만 일주일 사이에 그런 마음은 많이 사그라졌다.

엄마의 사과 때문일까

어느 날 느닷없이 엄마가 내게 사과를 했다.

엄마가 엄마 마음대로 하고 너무 나서는 바람에 내가 선택하고 경험할 기회를 다 빼앗은 거 같아서 미안하다며.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고 했지만 그 말이 위로가 됐나 보다.

이제는 엄마와 나의 관계를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부터는 내 어린 시절에 대해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기억이 드문드문 나기는 하지만 자세하지는 않다.


'아. 등산.'


어렸을 때는 거의 매주 주말마다 아빠, 오빠, 남동생과 함께 등산을 갔다.


"이 차선 밟으면서 걸어봐."


내 팔자걸음이 신경 쓰였던 아빠는 등산을 하며 내 팔자걸음을 고쳐주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생해 가며 실컷 고쳐놨더니, 그 딸이 이제는 안짱다리처럼 걷고 있다는 걸 알면 아빠는 뭐라고 할까.

사이좋은 부녀였다면 깔깔거리면서 웃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기억들을 뒤져본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는다.

엄마와의 추억에는 온기가 없다는 걸.

추억 자체가 그리 많지도 않지만, 몇 안 되는 그 추억을 아무리 떠올려봐도 그 속에는 따뜻함이 없다.

엄마는 분명 나를 사랑했다.

그건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 모든 마음을 예쁜 옷과 피아노를 사주는 것으로 퉁쳐 버렸다.

거기에는 마음이 빠져있다.

나는 엄마와의 추억보다는 엄마와 친하게 지냈던 동네 아줌마들, 엄마 친구들, 이모와의 추억 속에서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슬픈 일이다.

마음이 닿지 않는다는 건.


다음 주부터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갈지, 나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꽤 슬픈 과정이겠구나 하고 생각한다.

공감도, 지지도 받지 못했던 어린 나를 바라보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괜찮다.

왜냐하면 마흔을 넘게 살아온 내가 있으니까.

그 모든 불행에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며 결국 삶을 살아낸 강한 내가 여기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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