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천천히, 함께 온다

by 숨비소리

지난 금요일, 아들과 함께 단양 다누리 아쿠아리움에 갔다.

작년부터 그렇게나 가고 싶어 하던 아들은 아침부터 신이 났다.

딸아이와 남편은 집에 머물기로 했다.

아빠랑 누나는 사진 찍을 시간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들이 보이콧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를 여유롭게 보고 싶은 아들은, 자기를 기다려 줄 수 있는 엄마와 단둘이 가는 쪽을 택했다.

물론 누나와 아빠는 단양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행복했을 것이다.

마음이 아픈 누나에게 관심을 쏟느라 아들에게 소홀했던 것 같아 늘 미안했던 나는, 오롯이 아들만을 위한 엄마가 되어줄 기회가 생겨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집에서 단양까지는 굉장히 먼 길이지만 조금도 지루하지 않았다.

가는 내내 아들과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물고기 이야기, 친구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아들의 속마음 이야기.

이런저런 말들 속에서 아이가 내색하지 않았던 속마음이 삐죽 얼굴을 내민다.

처음 본 아이의 속마음에는 살짝 가시가 돋아있다.

마음이 아팠고 아이에게 미안했다.


단양에 도착하니 차가 밀린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곳이었나?

새삼 놀란다.

주차할 곳이 없어 강변 근처 저 멀리 주차를 한다.

걸어서 10분 정도, 그리 멀지 않은 길이지만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햇살 아래의 10분은 만만하지 않다.

우산 쓰는 것조차 귀찮아하던 아들이 내가 내민 양산을 펼친다.

중간중간 물을 마셔가며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아빠랑 누나가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지?"


남편은 주차하기가 어려워지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딸아이는 오래 걷는 걸 싫어한다.

함께 왔다면 분명 모두의 미간에 주름만 잔뜩 생겼을 것이다.


더위를 뚫고 겨우 도착했더니 로비가 난장판이다.

그날따라 매표소 전산이 고장 나는 바람에 입구부터 대혼란 그 자체다.


"오늘따라 왜 이러지~"


나는 크게 웃음을 터트린다.

일이 꼬이거나 잘 풀리지 않을 때 웃는 건 내 버릇이다.

제대로 풀어지지 않는 상황에 화를 내기 전에 일단 웃어버린다.

그러면 화를 낼 수 없게 된다.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사사건건 투덜대고 싶진 않다.


다행히 현금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는 수월하게 표를 끊고 입장할 수 있었다.

아쿠아리움 안에 들어간 아들은 눈을 반짝이며 단 한 마리의 물고기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수조 안을 들여다본다.

그 공간에 있는 아이들 중에 아마도 가장 나이가 많았을 것 같은데 그 어떤 아이들보다 더 많은 감탄사를 내뱉고 더 신나게 돌아다닌다.


"엄마, 이 물고기는..."


물고기를 좋아해 어류 질병 관리사(?)인가 하는 내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직업이 꿈인 아이답게, 설명을 보지 않고도 물고기의 이름과 사는 곳, 생태에 대해 읊어댄다.

몇 번이나 들었던 이야기지만 실물을 보며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빠져들게 된다.

아마 우리가 그 공간에서 가장 신난 아이, 가장 신난 어른이었을 것이다.


"엄마, 산천어!!!!!"


아이가 외친다.

작년에 산천어를 보러 국립생태원까지 갔었지만 물고기가 없었던 건지 결국 보지 못한 채 실망하며 돌아왔었는데 이곳에서 드디어 소원성취를 한다.


"우와... 생각보다 크네. 엄마는 작은 줄 알았는데. 이게 이렇게 큰 물고기였어?"


둘이서 신나게 떠들어댄다.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갔다는 종어, 다양한 종류의 폐어, 한중일의 쏘가리, 아가미가 특이한 철갑상어...


2시간 동안 열심히 아쿠아리움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출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는 역시 기념품 가게가 있다.

아들은 멍게와 성게 인형을 골랐다.

딸아이를 위한 기념품으로 펭귄 인형도 하나 샀다.


점심도 먹지 않고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프다.

휴게소에 들러 밥을 먹었다.

두 끼 연속 돈가스지만 아들은 잘 먹는다.

이번에는 나도 돈가스를 시켰다.


"엄마, 그거밖에 안 먹어?"


나는 배가 터지도록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돈가스가 절반은 남았다.

아들은 잘 안 먹는 엄마가 걱정되나 보다.

마음이 고운 아이다.

너무 고와서 불편한 마음은 다 숨겨버리는 아이.

그래서 네 마음에 조그마한 가시들이 자라났던 걸까.


"다음에도 엄마랑만 오면 좋겠다."


그동안 아빠, 누나와 함께 아쿠아리움을 갈 때마다 어지간히도 눈치를 봤나 보다.

마음이 짠하다.


"그래. 다음에도 엄마랑 둘이 오자. 근데 어디를 가지?"


자기는 식물도 괜찮다고 하길래 다음엔 세종시에 있는 식물원에 가기로 한다.


집에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다 되었다.

내려오는 길에 사고가 두 번이나 나는 바람에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시간까지 딸아이는 저녁을 먹지 않고 있다.

후딱 김에 밥과 김치를 넣고 김밥을 싸준다.

깔끔한 게 먹고 싶을 때 딸아이가 종종 해달라고 하는 음식이다.

남편은 어묵꽂이를 먹겠다며 냄비에 물을 올린다.

부엌에 온 남편 곁으로 다가가 한 마디를 건넨다.


"아들한테 아빠가 안 놀아줘서 섭섭하지 않냐니까 안 섭섭하대. 말해도 소용없으니까 포기했다고 하더라."


굉장히 마음 아픈 말이어서 남편에게 꼭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남편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일단 말은 전한다.

그러고 보니 요즘 내가 좀 변했다.

예전에는 부탁도 못 했고 남편의 반응이 걱정돼서 이런 말도 못 했는데 요즘은 일단 할 말은 하고 본다.

낮에도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딸내미, 약이 너무 강하면 조증이 나타난대. 잠 잘 자는지 지켜보라고 하시던데 요즘 안 자려고 하고 또 너무 텐션이 높아서 우울증 약이 너무 강한 게 아닌가 싶어. 그래서 다음 주에 병원에 갈 때 약 조절을 해볼 건데 그때까지는 딸내미가 스스로 조절을 할 수 없는 상태인 거니까 짜증 나게 행동 하거나 행동이 과하다 싶어도 화내지 말고 조금만 더 참아줘."


라고 말했다.

예전이었다면 이런 말을 하는 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충 하루를 마무리하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남편이 방에서 나오며 말한다.


"얘들아, 게임하자."


아들이 했던 말이 마음에 걸린 걸까.

아이들은 신이 나서 방에서 뛰어나온다.


"사람이 7시간 넘게 운전한다고 녹초가 돼서 누워있는데 하필 이 타이밍에......"


라고 말하며 남편을 째려보지만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니 나도 기분이 좋다.

피곤하지만 즐거운 기분으로 게임을 한다.


게임을 하다가 갑자기 딸아이가 쿠우쿠우에 구슬 아이스크림이 디저트로 나왔다는 얘기를 꺼낸다.


"구슬 아이스크림 좋아하는데. 가고 싶다."


아들이 말한다.


"엄마도 쿠우쿠우 가고 싶었는데. 내일 가볼래?"


그래서 토요일의 점심은 쿠우쿠우에서 먹기로 했다.

분명 나는 제대로 먹지 못할 테지만 아들을 위해 가기로 한다.


'나간 김에 아들 옷도 사 올까...'


단양 가던 길에 아들이 했던 말이 문득 떠오른다.


"바지도 티도 다 비슷한 거밖에 없어서 옷 입는 재미가 없어."


그건 네가 청바지나 면바지 같은 건 안 입으려고 했기 때문에 그런 건데...


"그럼 다른 스타일로 입어볼래?"

"어. 옷 사러 갈래."


그렇게 아들이랑 쇼핑을 하러 가기로 했었다.


'사춘기가 오나보네.'


성조숙증을 치료 중인 아들은 아직 신체적인 2차 성징은 없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사춘기 소년이 되어가고 있나 보다.

아이가 점점 나에게서 멀어져 간다.

자라나는 아이의 키만큼, 조금씩, 조금씩.

그 조금이 쌓여 언젠가 아이를 마음껏 안아주지 못하게 되기 전에 많이 안아주고 많이 사랑해 줘야지.


게임이 끝나자 각자 자기의 방으로 돌아간다.

나는 소파에 누워 늘어져 있다.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에는 행복함이 밀려든다.

오늘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이 내 마음을 행복으로 채워준다.


요즘 나는 가족들과 함께 있는 이 시간이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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