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기 사랑 나라 사랑
동기 사랑 나라 사랑
대학교 입학 후 가입한 동아리에서 선배들이 주입시켰던 구호다.
인자한 선배도 귀염성 있는 후배도 다 필요 없다! 힘들 땐 동기밖에 없다!
그러니 동기와 돈독하게 지내라는 선배들의 혜안이 담긴 구호였지만 주입식 교육의 산증인이었던 나는 동기 사랑 = 나라 사랑 수학 공식 외우듯 되뇌고 다녔다.
덕분에 나 포함 다섯 명이었던 동기와의 우정은 끈끈하게 이어졌고 지금까지도 우정의 끈을 이어오고 있는 동기는 대략 2명이다.
'대략'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건, 올해 연락을 주고받은 동기는 아예 없고 그나마 2명은 내 맘 속에 종종 그리운 친구이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게 중요했던 동기 사랑은 대학교 졸업 이후 나눌 대상이 없었다.
입사 개념이 없는 직업을 택한 이유로 나는 입사 동기가 쭉 없었고 그것을 만회라도 하라는 하듯 프리랜서라는 직업 특성상 가질 수 없던 퇴사 동기를 갖게 되었다.
나의 퇴사 동기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고 경력도 10년 정도 더 많은 A다.
A를 알게 된 건 6개월 전이었다.
내가 일을 마치면 A가 내 자리에 앉아 일을 한다.
A와 나는 출퇴근이 크로스 되는 사이로 처음 만난 것이다. 5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세요- 인사 사이에
우리는 콩트도 했고 시트콤도 찍었고 '나는 솔로' 얘기도 나눴고 MBTI도 공유했고 고향과 형제관계 등 호구조사도 마쳤다.
주 5일, 5분씩, 6개월의 짧은 시간 동안 급격하게 친해진 우리는 어쩌면 진짜 인연이었을까.
팔자에 없던 퇴사 동기가 된 것이다.
A와 우리 집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았다.
하지만 중간지점은 각자 집에서 출발하면 약 20분이 걸리는 좋은 위치였다.
회사에서 나눈 매일 5분의 대화에서 밥 한 번 먹자-가 빠지지 않았고 언제 먹을까요? 누가 발 빠르게 묻지 않는 이상 시간은 무한할 것만 같았기에 밥을 한 번도 먹지 못했고 결국 회사에서 만난 A와 나는 회사 밖에서 처음으로 밥을 먹게 되었다.
퇴사 동기라는 타이틀을 달고.
동기 사랑의 힘은 실로 대단했다.
우리는 실업급여로 대동단결하며 끈끈해졌다.
6개월 동안 인사와 콩트와 시트콤과 안부와 개인정보 등을 짧게 나눴던 사이지만 마치 6년 이상 함께 일한 동료 같았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각자의 '1회 차 실업급여 신청기'를 늘어놓았다. 떨리고 신기한 마음만은 둘 다 같았다. A는 디지털과 먼 사람이어서 그랬는지 고용센터에 전화를 해서 직접 물어본 뒤 무사히 신청을 했다고 했다.
나는, 맞아요. 그게 제일 확실해요,라며 엄지를 들어 보였다. 생애 처음 실업급여를 신청한 우리는 서로의 경험담을 무용담으로 만들어주었다.
기특하고 잘했다 토닥이면서.
실수한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이니까 당연히 모르지이이이- 맞장구도 쳐가며.
실업급여 무용담을 마친 뒤 우리는 회사의 현 상황에 대해 아는 정보를 공유했다.
우리는 실업급여 동기이자 퇴사 동기였고 혹시 모를 재입사 동기가 될 그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퇴사 당시, 동료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한 아름 안겨주었기에 우리 또한 희망의 든든한 백 삼아 실업급여를 신청하면서도 들뜨고 설레고 떨려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A와 나의 공통된 정보 속에 우리의 재입사 확률을 매우 낮았다.
목구멍이 아프게 깔깔대던 우리는 잠시 엄숙해졌고 앞으로 뭘 해 먹고살지-라는 원초적인 질문을 꺼내고 말았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추상적인 결론으로 그날의 점심 약속은 마무리되었다.
뭐 해 먹고살지-에 앞서 우리에게 중요한 건
2차, 3차, 4차로 이어질 실업급여 신청이었기에.
멤버십에 약해 혼자를 선호하는 나였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기가 있어 좋았다.
처음 해보는 일에 관해서는, 이거 맞아요? 이렇게 하는 거 맞죠? 확인하고 확인시켜 줄 누군가가 있다는 건 확실히 든든한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