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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할 수 없는 삿포로 눈축제 현장

일본 한 달 살기: 2024 삿포로 눈축제 편

by 유키토피아


세계적으로 유명한

삿포로 눈축제



삿포로 눈 축제는 1950년 오도리 공원에서 학생들이 모여서 만든 6개의 작은 설상이 계기가 되었다. 그 뒤 해마다 규모가 커져 74년이 지난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눈축제 중 하나가 되었다. 최근의 눈축제는 주요 설상들이 모여있는 오도리 공원, 유명 기업들과 콜라보로 만든 동상이 배치된 스스키노 거리, 가족들이 즐길 수 있는 눈썰매장이 있는 쓰도무 이렇게 3 구역으로 나뉜다.


오도리 공원은 13 구역까지 길쭉하게 나있는 공원이라, 일방통행으로 길을 만들어서 한 바퀴를 돌면서 설상 구경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1~2 구역은 이벤트, 전시공간이고 3~11 구역이 설상 구역이다. 메인이 되는 대형 설상은 5개 정도가 있고, 그 주변으로 중소형 설상이 배치된다. 제작 규모가 큰 중형 이상의 설상은 지자체 또는 기업이 주관하며, 소형 설상은 시민들이 직접 제작해 출품하고 있다. 그리고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노점과 연주회가 열리는 소규모 공연장 등 다양한 즐길거리가 있으니 운영 시간대를 잘 확인하고 가는 것이 좋다.


이 눈축제에는 또 한 가지 재밌는 요소가 있는데, 바로 축제 마지막날 볼 수 있는 동상 해체 작업이다. 스스키노 행사장은 축제가 끝나는 마지막날 오후 10시가 되면, 그 즉시 포클레인이 와서 모든 동상을 하나씩 파괴해 나간다. 이는 도로 위에 만들어진 행사장을 빠르게 치우고 혼잡했던 교통상황을 바로잡기 위함인데, 공들여 만든 동상을 과감하게 파괴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보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 이걸 보기 위해 축제 마지막날에 맞춰 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주의할 점은 행사장이 생각보다 많이 미끄럽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아이젠을 착용하는 게 좋다. 여기서는 정말 너 나 할 것 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나는 숙소에서부터 아이젠을 착용하고 와서, 덕분에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열 번 찍어

못 나오는 사진 없다



민족공생상징공간 우포포이 ×〈골든 카무이〉
4 구역에는 올해의 메인이 되는 초대형 설상이 놓여있는데, 올해의 메인 설상은 우포포이 박물관과 애니메이션 <골든카무이>이 컬래버레이션해 만든 캐릭터 설상이다. 홋카이도 관련 작품을 조사하면서 나도 재밌게 본 만화인데, 이 만화가 홋카이도 관광에 큰 기여를 하고 있어 지자체에서 꽤나 밀어주고 있다. 특히 일본의 소수민족인 '아이누' 문화가 잘 표현된 작품이라 아이누 박물관에서도 환영받는다.


처음 보는 초대형 설상이라 너무 신기하고 설레었다. 그래서 이 설상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인증샷은 커녕 사람들 눈치만 보며 한참을 서있었다. 날 찍어줄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삼각대가 있었지만 촬영 도중에 누가 훔쳐갈까 봐 겁이 났다. 모르는 사람에게 부탁해보려 해도 영어도 서투르고 일본어도 못해서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겨우 용기를 내어 사진을 찍던 일본인 무리로 다가가 영어와 손짓발짓으로 '내 사진을 찍어주면 나도 당신을 사진을 찍어주겠다'는 의도를 전달해 겨우 사진을 찍었다.


어… 이거 맞아?

그렇게 겨우 얻어낸 인증샷이 세상에… 정말 나만 나오고 설상은 다 잘렸다. 찍어주신 건 감사하지만, 적어도 캐릭터 얼굴은 나와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한번 더 부탁해 봤는데, 이전과 별로 다르지 않은 처참한 결과만 얻는다. 그리고 다들 정말 사진을 딱 한 장만 찍어줘서,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 슬펐다. 한국인이 그리워진다. 한국인이 남의 인생샷 찍어주는데 진심인 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정말 한국인들 다 어디로 갔는지 코빼기도 안 보인다.


하지만 나는 무너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진짜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3차 도전이다. 이번에는 아이랑 같이 온 젊은 여성분에게 부탁했고, 3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배경도 나도 문제없이 나온 사진을 얻었다. 다른 여행객들이 잔뜩 나오긴 했지만 나 빼고 전부 뒷모습이니 괜찮다. 혼자 온 여행객에게는 이 정도로도 감사할 뿐이다.


인증샷을 찍고 난 뒤에는 옆에 있던 우포포이 박물관 홍보부스로 들어갔다. 기념품을 구매하면서, 직원 한데 어설픈 일본어와 영어로 이 만화 봤다며 “굿!”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더니 진짜 엄청 좋아했다. 마지막에 홍보부스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 달라고 요청했더니, 정말 온 열정을 다해서 사진을 찍어줬을 정도다. 이렇게까지 열정적으로 찍어달란 건 아니었는데… 엄청난 직업 정신이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주변인들의 시선이 전부 사진 찍히는 내쪽으로 몰리니까 약간 수치스럽긴 했다. 내가 친구들을 모델 삼아 사진 찍어줄 때, 친구들 기분이 딱 이랬겠구나 싶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거울치료 공격을 당한 카메라맨이었다.


그래도 항상 카메라를 들던 입장에서 찍히는 입장이 된 다는 건 또 다른 경험과 시선을 가지게 해 준다. 처음엔 사진 찍히는 게 어색했지만, 이렇게 한 달 내내 타인에게 사진촬영을 부탁하다 보니 이제는 누가 사진을 잘 찍어줄 것 같은지 관상을 보일 지경이다.


그리고 깨달은 여행사진 꿀팁 3가지가 있다.

첫째, 여행 인증샷은 한국인이 제일 잘 찍어주니 한국인을 찾자.
둘째, 인생샷을 얻을 때까지 새로운 사람에게 사진을 부탁하자. 그럼 분명 하나는 건지게 된다.
셋째, 내향인이라면 삼각대 하나면 충분하다. 다만 촬영 중 도난을 조심할 것!





영광을 향해 질주하는 서러브레드
구 삿포로역 정차장


5 구역에는 눈축제 제작위원회가 직접 제작한 경주마 설상이다. 경마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서도 명마 품종으로 유명한 서러브레드의 98%가 홋카이도에서 태어난다. 제작위원회는 삿포로 경마장을 달리는 서레브레드를 설상으로 표현했다. 이 설상은 5분 정도의 박진감 넘치는 빔프로젝트 쇼까지 구경할 수 있다. 이 설상은 작년에도 있었다고 들었는데, 인기가 많은지 또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건 8 구역 '구 삿포로역 정차장'이다. 현재의 삿포로역의 시초가 된 구 삿포로역 정차장은 1908년 당시에 지어진 건물을 재현한 설상으로, 유럽의 근대적 디자인을 가지고 있어 매우 예쁘게 생긴 건물이다. 실제 건물은 사라진 상태이고 '홋카이도 개척의 마을'이라는 곳에 재현되어 있는데, 그 재현 건축물을 본떠서 만들었다고 한다. 삿포로역을 중심으로 바뀌어가는 시대를 표현한 빔프로젝트 쇼는 연출과 내용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어서, 이 설상이 나에게는 가장 인상 깊게 남아있다.



뿌이뿌이 모루카 / 독일 노이슈반슈타인 성
스노우 미쿠 / 닛신 미끄럼틀


그 뒤로 9 구역은 시민참여 설상, 10 구역은 현재 홋카이도 야구감독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는 신조 츠요시의 설상이다. 뒤로 갈수록퀄리티가 떨어져서 눈도장만 찍고 빠르게 지나쳤다. 마지막에는 삿포로 자매 도시 대전(?!)의 조화로움을 도자기의 형태로 표현한 설상도 발견했다. 잘 만든 작품이지만, 대전과 삿포로가 도대체 어쩌다가 자매도시가 된 것인지 그 경위가 너무 신경 쓰여서 사실 작품에 집중을 못했다. (ㅋㅋㅋ)





방심하는 순간

사건은 발생한다


막바지에 들어서는 사실 집중을 할 수 없었다. 맨 처음 박물관 부스에서 지갑을 찾다가 지갑이 없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숙소에 두고 왔다는 것을 바로 깨달을 수 있었는데, 문제는 어디다 뒀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딱 지갑의 위치만 안개가 낀 것처럼 기억이 흐릿했다.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나르다가 너무 힘들어서 그만 방심했나 보다. 그나마 안심하는 건 짐은 전부 내 개인공간에 풀어두고 커튼을 쳐두었기 때문에 괜찮을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은 있었다. 하지만 완벽하게 안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함이 커져갔다. 결국은 스스키노 행사장과 동상 해체쇼는 과감하게 생략하고 축제 구경 1시간 만에 숙소로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다행히 지갑은 내 침대 이불속에 꽁꽁 숨겨져 있었다.

숙소에서 화장실 들릴 때 숨겨놓고 까먹은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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