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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선 Dec 01. 2020

오락실 끝판왕과 싸우던
중학생의 나처럼.



윤년이 아니고 union.


중학교 때 자주 가던 오락실이 있다.

친구 '말'이, 윤년 윤년 오락실이라 부르던 곳. 무슨 이름을 그렇게 짓나, 아저씨 참 점잖아 보이는데 했던 그곳.

하지만 뭐, 이름이 대수겠는가. 윤년이던 박년이던 정년이던. 오락실에 오락만 잘되면 될 일이지.

간판은 올려다볼 생각을 안 했는지, 처음부터 없었는지 본 적이 없었고, 입간판은 왜 두셨는지 모를 정도로 항상 열려 있는 오락실 문에 가려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몇 개월, 내가 가던 오락실은 '윤년' 오락실이었다. 날이 차가워진 가을날, 문은 닫혀 있었고 드러난 입간판에는 UNION이라는 이름이 박혀 있었다.  


'말'에게 말했다.
"오락실 이름이 유.니.온. 이네." 발음 하나하나 정확히 똑 집어 말하며. 


'말'이 말한다. 

"응. 유니연."


'말'의 발음에는 문제가 없었다. 사실 꽤나 좋은 발음이라고 할 수 있었으니.



끝판왕.


어쨌든 그곳 유니온 오락실에는, 열심히도 돈을 갖다 바쳤던 게임 하나가 있었다. 친구들은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아 항상 혼자 하던 게임.

점점 레벨이 올라가고, 동시에 돈도 돈대로 없어졌지만, 꽤 올라간 레벨에 친구들도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드디어 나도 끝판왕이라는 놈을 보게 된 날, 무척 흥분하며 긴장한 나는 게임을 시작한다. 

맨 아래, 매우 보잘것없는 몸집의 나는 끝판왕을 깨보겠다며 올라갔다 내려갔다 좌로 우로 분주하다. 위에서 날 내려다보고 있는 끝판왕에게는 의미 없는 움직임으로 보일 뿐이다. 반면, 끝판왕 그놈은 저 위에서 커다란 몸집으로 날 내려다 보고는, 별 움직임 하나 없이 간단히 날 죽여버린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전보다 몇 배의, 돈을 갖다 바치기 시작한다. 흥미를 보이던 친구들도, 인기도 없는 게임에 돈을 쓰는 날 안쓰러워하는 듯하나 상관없다. 저 놈을 꼭 이겨야겠다 불이 붙었기에.

처음, 아무 이유 없는 움직임처럼 보이며 널뛰던 나는, 패턴을 알아가고, 이유 있는 움직임을 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여전히 끝판왕 악당은 쉽게도 날 죽인다.

하지만 그놈은 알지 못한다. 그동안 갖다 바친 돈과 시간을 통해 내가 변했다는 것을, 거기 위에 가만히 서서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화면에 등장할 때마다 항상 그대로인, 덩치만 커다란 너는 노력하는 날 이길 수 없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서두르지 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놈에게 간다.

두려움 없이 용감히, 하지만 정확히 치밀하게 다가가, 일격은 아니더라도 몇 번의 유효한 공격을 가해 놈을 쓰러뜨린다. 끝판왕은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비록 그 얼굴은 나에게만 보였겠지만) 쿵, 쿵, 쿵, 소리를 내며 아래로 떨어진다. 덩치가 커 그런지, 죽는 과정이 참 길기도 하다.


끝판왕을 이긴 것이다.


그리고 그 후로... 


난, 끝판왕을 다시는 깨지 못했다. 어떤 날은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죽곤 했다.

왜 이러냐며 같은 짓을 되풀이할 것 같지만, 다시 돈과 시간을 바칠 것 같지만, 더 이상 연연하지 않는다.

한 번 이긴 너에게, 네 큰 몸집이 나가떨어진 걸 본 나에게, 너는 더 이상 다시 돈과 시간을 바쳐 이길 상대가 되지 않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전 한 움큼 바꿔 쿨하게, 다음 돈 바칠 게임을 향해 나아간다. 


끝판왕과 싸우던 중학생의 나처럼.


유니온 오락실에서 끝판왕과 싸우던 중학생의 나처럼,

어른이 된 나는, 내 안의 우물에 들어차 있는 우울이라는 공황이라는 것들과 싸운다. 더 크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으로 가득 찬.

처음 보곤 놀라 뒷걸음질 치기도 하고, 싸우다 지쳐 고꾸라지기도 한다. 안 되겠다, 안되나 보다, 마음이 아주 어두워지려고도 한다. 중학생 그때의 나처럼 내 손에는 동전 한 움큼은커녕 아무것도 없어.


어느 날.                       싸우다 고꾸라지기를 반복하던 어느 날.

고여있는 그것들이 보였다. 우울이라고 공황이라고 이름 불려진 힘없는 그것들.

온전히 나의 불안과 어두움과 두려움만이 그것들을 강하게 만들고 있었다. 열나게 두들겨 맞던 주인공이, 힘겹게 일어나 입가에 묻은 피를 엄지손으로 닦으며 씩 웃고는 촌스럽게도 말한다. 할 만한 게임이 될 수도 있겠다고. '각성'


그래 그것들은 결국.

부지런히, 열심히,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여러 해 동안 싸우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 

덩치 커다란 과거는 죽고, 죽은 과거를 본 나는 더 이상 그곳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히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내 손에 동전 한 움큼 없이도 말이다.


삶은 계속되고.


끝판왕을 깼다고 해서 내 마음이 항상 푸르른 들판처럼, 아름다운 꽃밭처럼, 고요한 물속과 같을까.


삶은 계속되고 오락실 게임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한,  또 무수히 많은 끝판왕들과 마주쳐야 하는데.

공황과 우울도 가끔 기웃대며 날 찾아와 건드린다. 한 번 깼는데 다시 왔냐며, 그것들이 좋아할 공포와 불안과 두려움을 만들지 않는다. 패턴을 바로 보고 의미 있는 움직임으로 유효한 공격을 가해, 전보다 더 약해진 그것들을 물러가게 만든다. 

물론, 한 번에 이 모든 것들이 없어지면 좋겠지만, 다시 한번, 내가 살아가는 곳은 게임 속이 아닌 현실이다.


삶은 계속되고  다양한 크고 작은  끝판왕들을 마주한다. 오락실에서 모든 게임의  끝판왕을 다 깨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끝판왕들도 굳이 다 쫓아 올라가 깰 필요는 없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을 깨지 않으면, 이것을 극복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것 같은, 굳이 나아가더라도 언젠가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은 일들이, 또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각성'의 순간이 올 때, 우리는 그것들을 향해 '의미 있는' 움직임을 해야 한다. 내가 볼 때, 아무리 그들이 크고 어려워 보여도 내 삶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여 움직이는 이 '의미 있는 몸짓'을 당해낼 수는 없다. 

혹,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그 시간 동안 많이 다치더라도.  


다시 촌스러운 주인공처럼 말해본다. 

'나'를 잃지만 않는다면 할 수 있을 일.

그러면 언젠가, 분명히 저 위 덩치만 커다란 끝판왕을 깨는 날을 보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 것이며

그럼 다시 우린, 동전 한 움큼 없이도 내 삶을 소중히, 날 사랑하는 마음만 가지고 다음 게임을 향해 나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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