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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기열 KI YULL YU Nov 26. 2024

태어나 처음 본 책, 그 책의 힘

유기열의 일상다반사- 나의 뿌리

책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6살 때쯤 할아버지 제사 날로 기억된다. 제사를 지내려 큰집에 갔다. 그때는 아버지 3형제가 한 마을에 다 살고 있어 명절이나 제사 날에는 큰아버지 집에 모두 모였기 때문이다.


식구들이 다 모이자 큰아버지가 문갑(文匣)에서 기름칠을 한 것처럼 반질반질하고 누르스름하게 생긴 서책(書冊)을 꺼내었다. 강릉 유씨 족보(族譜)라고 했다. 당시 족보는 3형제 중 맏인 큰아버지 집에만 있었다. 족보는 한자(漢字)로 세로로 쓰여 있었다. 내용이 무척 궁금하였으나 한글도 모르는 나에겐 한문으로 써진 족보는 그림의 떡이었다.


큰아버지는 한학을 공부한 한량(閑良)이었다. 3형제 가족이 모일 때, 특히 선대조상(先代祖上)의 제사 날에는 큰아버지는 족보를 펴 보이며 우리의 뿌리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그런 때 큰아버지는 제일 즐거워하고 흐뭇해 했다.


그 족보가 내가 태어나 본 첫 책이었다. 한문을 몰라 스스로는 내용을 알 수 없었어도, 큰아버지의 설명을 들어 나의 시조(始祖)는 중국 한제국(漢帝國, BC202)의 초대 황제인 한고조(漢高祖, BC256, 247?~BC195?) 유방(劉邦)이고, 도시조(都始祖)는 중국에서 넘어온 한고조의 41세손(世孫) 유전(劉筌)이며, 나는 유전의 29세손이라는 것을 알았다.


한고조 초상화(나무위키)


너무나 유명해 유씨의 시조로 잘 못 알고 있는 유비(劉備, 161?~223?)는 유방의 22세손?이며 221년에 촉한(蜀漢)의 소열황제(昭烈皇帝)가 되었다는 것은 나중에 안 일이다. 그 뒤를 이은 유선(劉禪) 효회황제(孝懷皇帝)를 끝으로 263년에 촉한이 망할 때까지 유방이 세운 한제국은 약470여간 유지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까 나의 뿌리는 BC256?년, 현재로부터 약2,300여년전까지는 역사적으로 확실하다는 것이다. 족보가 없었다면, 아니 누군가 당시 일들을 기록하지 않았다면 이런 사실을 알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족보가 새삼 돋보였다.


이렇게 태어나 처음 보게 된 책, 족보는 내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


첫째, 기록의 중요성을 알게 해주었다. 이런 영향으로 나는 사는 동안 언제나 어디서나 종이와 연필을 꼭 가지고 다니며 메모를 했다. 그러다 휴대폰이 나오면서부터는 종이 대신에 휴대폰에 메모를 하는 편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역사는 없다. 더 나아가 학문도 예술도 과학도 산업도, 인류의 문명과 문화도 발전이 더디고 창의성도 떨어지리라고 본다.


둘째, 배움과 앎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한자를 몰라 족보를 읽을 수 없었을 때의 답답함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배우고 알아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자기가 되고자 하는 사람도 될 수 있고 살고 싶은 삶도 살 수 있음을 절감하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쉬지 않고 책을 읽고, 열심히 배우고 익히며 살고 있다.


셋째, 내 몸에는 황제의 피가 흐르고 있으니 황제답게 살려고 노력했다. 경솔하지 않고 황제 후손답게 품위(品位)와 품격(品格)을 유지하려 애썼다.


분명 책에는 힘이 있다. 인간의 기억력 한계를 극복해주기도 하고 한 인간의 삶을 바꾸기도 한다. 세상을 바꾸기도 한다.


족보를 처음 대했을 때는 그저 큰아버지가 말해주는 이야기로만 어렴풋이 내용을 조금 알았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처음 마주한 책, 족보는 지금까지도 내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러분은 태어나 처음 본 책을 기억하시나요? 그 책으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으셨나요? 한번쯤 생각해 보고, 족보를 꺼내어 여러분의 뿌리를 더듬어 보세요.


필자 주


1. 유전(劉筌)이 한국에 온 시기는 족보에는 고려 문종36년인 1082년이라고 되어있으나 유씨역사연구회(劉氏歷史硏究會)에 따르면 이 보다 300년이 빠른 신라 선덕왕3년인 782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2. 한제국(漢帝國)과 한고조(漢高祖) 등에 관련한 연대는 자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어 물음표?를 부쳤다. 한고조는 한태조(漢太祖) 시황제(始皇帝) 고황제(高皇帝)의 약칭이다.


3. 유전(劉筌)은 중국에서 8명의 한림학사(翰林學士)와 함께 한국에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은 유전(劉筌), 임팔급(林八及), 설인검(薛仁儉 또는 설인경-薛仁敬), 송규(宋奎), 허동(許), 권지기(權之奇), 최호(崔沍 또는 ), 공덕수(孔德狩)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 중 한국에 건너온 연대가 밝혀진 사람은 임팔급782년 또는 850~900년, 송규926년, 유전1082년으로 모두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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