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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행복수집러 Jan 27. 2022

사무관님의 충고. 빨리 와서 승진해.


"아이고 우리 멋쟁이 계장님들 여기 다 모여계셨네."     


과장님 어머님께서 소천하셔서 계장들과 함께 조문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데, 뒤늦게 본청 사무관님께서 합류하신다.     


이 사무관님은 내가 감사부서에서 일할 때 내 옆자리에 앉았던 사수로 함께 특정감사 사안감사, 감사원 감사 수감 등을 함께 하며 2년간 호흡을 맞춰온 선배다. 오랜만에 보니 한창 젊을 때의 유쾌하고 활발한 모습은 희미해지셨다. 훨씬 진중하고 품위 있는 관리자의 모습이 보기 좋다. 역시 자리와 세월이 사람을 더욱 숙성시킨다는 말이 맞기는 한가보다.      


"지역청이 도보다 훨씬 힘들지? 온갖 민원도 직접 다 받아내고 해야 하는데."

"아니요. 도가 더 힘들죠. 인정할 건 인정해야죠."

함께 있는 계장들 모두 도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인물들이라 도의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무관님의 이런 인사치레가 우리의 노고를 위로해 주는 것 같아 싫지는 않다. 

         

"어디 좋은 직원 있으면 소개 좀 해 줘."라며 농담을 하신다. 

옆에 있던 총무계장이 "도에서 우리 직원들 키워 놓으면 쏙쏙 다 빼 가서 발령 내기가 너무 힘들어요. 그만 좀 데려가요."라며 하소연을 한다.     

"허허허. 그게 다 그 친구들한테 좋은 거지. 더 큰 곳에서 사람 접하고 일 배우는 것이 얼마나 발전이 되는 일인데."

확실히 공감이 가는 말이다. 팀장이라면 직원의 발전을 위해 마땅히 힘써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까. 그 직원이 그것을 바란다는 전제하에서.


"일 잘하는 친구들은 있는데요. 지역청에 있다가 싫다고 학교로 나간 친구들이라서요. 요즘은 다 학교에 나가려고 하지 지역청에도 안 있으려고 해요."

"그렇지 학교는 5시, 4시 30분에 끝나니까. 진짜 우리도 7급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어서 8급들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어."

옆에서 재정계장이 한마디 거든다.

"지역도 마찬가지예요. 정원대로 운영이 안 되고 있어요. 총무계장님 다음 인사에 우리 계 명진이가 7급 승진할 것 같은데 이번에는 꼭 7급으로 채워주세요."

"그게 뭐 내가 하고 싶다고 쉽게 되나."라며 직원들의 본청과 지역청 근무 기피 현상을 원망한다.     


나는 이러한 사태가 충분히 이해된다. 도에서 근무하면 승진은 빠를 수는 있지만 학교 업무보다는 업무의 강도가 확실히 세고 책임질 일이 많다. 그리고 같은 6급 20호봉이라고 했을 때 업무의 강도와는 별개로 똑같은 봉급을 받는다.(시간외근무수당은 별개로 하자) 

같은 돈을 받고 힘든 일을 하고 싶어 할까 편한 일을 하고 싶어 할까. 거기다가 교육청은 6시 퇴근 학교는 5시 퇴근! 출세하고자 하는 야망이 없는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고 퇴근도 1시간이나 빠른 학교를 선택하지 않을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육아, 가정일, 여가생활 등의 사유로 교육청보다는 학교 근무를 선호한다. 내가 인사업무를 했을 때도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바로 "저 교육청 발령은 절대 안 돼요"였다.


"총무계장은 연차가 있어서 그렇고 재정계장, 예산계장. 이번에 복귀해."

사무관님이 재정계장과 나를 보고 대뜸 말한다.

"네?"

재정계장이 대답한다.

"연락은 왔었죠. 그런데 안 간다고 했어요. 그래서 아마 블랙리스트에 들었을 걸요."

나는 얼마 전까지 도에서 매일 야근하던 기억이 있고, 나오자마자 복귀는 많이 망설여진다.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많이 힘드시죠?'라고 인사하는 지금 자리에도 나름 만족하고 있어 딱히 대답은 하지 않는다.

"진짜 일을 하려고 해도 옛날부터 알던 친구들하고 일하는 게 좋지. 딱 말하면 딱 알아듣고 분위기 파악도 빠르고."

"불러주면 어쨌든 열심히 하겠지만 굳이 간다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야 젊은 나이에 도전을 해야지. 그냥 5~6년 고생한다 생각하고 눈 딱 감고 내.  뭐 나 좀 받아달라고 하며 내신을 낸 다는 게 내 몸값이 10억인데 몸값을 3억 원으로 내리는 듯한 기분이 들 수도 있지. 너희가 커리어도 있고 능력도 있지만 자존심 세우지 말고. 그냥 내신을 내고 빨리 승진해. 요즘은 옛날처럼 내신 없이 막 데려오고 하기도 힘들어. 아니면 오겠다고 얘기라도 하던가."

     

사무관님이 우리를 생각하는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본인도 딱 내 나이 때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겪고 일어나 지금의 자리에 올랐고 앞으로 더 많이 승진하실 분이기에 나도 본인과 같은 길을 걷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이렇게 충고를 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생각이 든다.

     

꼭 도가 아니라도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지역청도 주민들의 집단민원으로 한창 곤경을 겪고 있을 때 나를 적임이라며 팀장으로 불러주셨고,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문제를 해결했다. 지금도 우리 팀원들과 함께 우리가 책임져야 할 크고 작은 일들을 하나둘 씩 처리해나가고 있다. 어디에서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떠한 자세로 일을 하는가. 기관과 주민, 학생들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물론 빠른 승진을 위해서는 도에서 근무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도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중요하고 어려운 업무를 맡고 있어 남보다 먼저 승진하는 것이 그 고생에 대한 보상에 걸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도교육청을 제외한 지역청, 직속기관, 학교 모두 각자의 역할이 있다. 

일에는 어렵고 쉬움이 있지만 각자 역할의 중요성의 크기는 별 차이가 없다. 전투에서도 전투를 지휘하는 사령부의 역할과 전투를 지원하는 보급부대, 실제 전투를 치르는 전투부대의 역할 모두 중요한 것이니까.


빨리 복귀해서 승진하고 너의 발전을 이루어라. 사무관이 되어서 너의 뜻을 펼치고 사회에 공헌하라는 사무관님의 진심 어린 충고는 잘 받았다.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으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천천히 고민해 보자. 다시금 내가 맡은 일과 역할의 중요성 대해 깨달은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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