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1장

창조의 하나님

by yukkomi


디모데 후서를 쓸 당시 바울의 영적 자녀인 디모데가 목회자로 있던 에베소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거짓 신화와 족보를 해석하는 가르침, 율법주의와 세속주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더불어, 교회 밖에서는 기독교인에 대한 박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바울 역시 잠시의 자유 끝에 다시 감옥에 재 투옥됐고, 자신의 순교를 예감하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아마도 바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는 바울이 곧 순교할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크게 염려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울의 재수감으로 인해 교회 안팎에서 바울의 사도성이 조롱받았을 것이다.

바울은 그런 디모데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고난을 겁내지 말라고 말한다. 당당히 고난을 받으라라고 한다.



자녀가 고생하는 것을 기뻐하는 부모가 또 어디 있겠는가!

자녀가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 주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바울이 디모데에게 겁내지 말고 고난을 받으라고 말한 것은, 그 고난이 결국 자녀에게 유익이 되기 때문이었다.


디모데후서 1:1 KRV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편지의 서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원해서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내가 무엇을 약속해서 사도가 된 것도 아니며,

사도직 역시 내가 계획해서 얻은 것이 아니었다고.

오히려 바울은 정반대의 삶을 살던 사람이었다.

그런 바울이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구원을 받았고, 생명의 약속을 받았으며, 사도직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았다.

그리고 디모데의 직분 역시 바울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선택과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을 디모데에게 말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약속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약속을 이루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속에서 일어난다 그러니 고난도 그 섭리 속에 있다는 것을 말해주려는 것 아니었을까?


인생의 모든 과정은 결국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과정인 것 같다.

그렇다면 ‘다 이루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길이 열렸다는 것이다. 죗값을 다 치렀고 하나가 되는 길이 열렸다는 뜻이 아닐까?

그 하나됨을 위해 고난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고난을 통해 자녀에게 하실 일이 있다는 거다.


예수님의 생명은 불같은 고난 속에서 타 죽을 것 같지만, 결국 죽지 않는 불멸의 생명이다.

맹렬한 불길 속에 죄와 하나 됐던 자아가 죽고, 내 상처와 이기심이 죽는다. 그리고 예수님과 하나 된 부활의 생명만이 살아남는다. 마치 불길 속에 제련된 정금처럼...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고난을 받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리고 예수의 생명에 안겨 그 불길을 견디라고 말한다.


이 편지를 쓰던 당시, 감옥에 있던 바울은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리고 얼마 후, 고난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사단은 교회 안팎으로 생명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돼있었고 바울의 순교에 박수를 쳤을 것이다.

하지만... 핍박의 고난 속에서 생명의 불꽃은 더 멀리 퍼졌고, 사단의 예상과는 달리 생명은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하나님은 사단도 사용하시어 약속을 이루셨다. 그 섭리를 이미 알았기에 바울은 자신의 목숨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관제로 자신을 기꺼이 드렸다. 예수님처럼...

죽음 앞에서도 생명을 잃지 않고,

죽음 앞에서 믿음의 확신과 기쁨을 잃지 않을 수 있는 이 놀라운 생명과 고난이라는 시간을 통과하며 하나 되어있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의 생명에 붙어 있으라, 예수님의 생명에 안겨 불같은 시련을 견디라고 말한다.

그리고 어서 와서 바울이 가진 생명과 기쁨의 믿음을 나누어 받으라고 한다.



돌이켜 보면 그렇다.

내가 구원받은 것도 나의 어떠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

그리고 나의 성장 역시, 내 모든 과정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만약 내 인생에 고난이 없었다면

과연 예수님을 영접했을까?

영접한 이후에도 고난이 없었다면

예수님께 끝까지 붙어 있을 수 있었을까?

그토록 간절한 마음이 있었을까?

고통 중에 있는 타인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을까?

고난은 세상으로 달려가던 나를 예수님께로 돌이켰고, 바람만 불면 날아갈 수밖에 없던 믿음의 씨를 아빠의 품 속에 깊이 박아 주었다.

그리고 그 이후의 고난은 뿌리를 더 깊이 내리게 했고 다른 생명의 뿌리와 연결되게 했다.

고난의 불꽃은 내 자아로 자라나던 죄와 상처,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다고 여겼던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주었고 진정 아름다운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의지를 성장시키는 생명의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8:28)”

이 말씀이 바로 이런 말씀이 아니었을까?


하나님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창조하시는 분이시고,

죄 가운데서 선을 이루어 내시는 분이며,

죽음 속에서 생명을 만들어 내시는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그 창조의 하나님께서

은혜로 나를 부르셨고,

지금도 은혜로 나를 키워 가고 계신다.

내가 할 일은 단 하나,

주님의 손을 놓지 않는 것,

주님께 꼭 붙어 있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인 공동체에 꼭 붙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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