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후서 3:1~9

말세

by yukkomi

바울의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늘 “말세”를 이야기해 왔다. 아마 그 이전의 사람들도 같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말세라 할 수 있을까?

바울이 말한 말세는 단지 전쟁과 기근이 많은 시대를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복음을 잃은 시대, 복음이 변질된 시대, 빛을 잃고 소금의 맛이 사라진 시대를 말세라 부른 것이 아닐까.

빛과 소금이 남아 있다면 어둠 속에서도 소망은 있다. 그러나 그 소망이 사라진 시대, 그것이 말세다.


본질을 잃은 복음은 씨 없는 수박과 같아서 다음 세대로 이어질 수 없고, 변질된 복음은 유전자가 변형된 씨처럼 기형적인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의 승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직접 본 이들이 살아 있던 때에 이미 복음이 변질되었다는 사실은 인간의 죄성이 얼마나 깊은지를 보여 준다. 동시에 이는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복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의 현상, 곧 복음이 사라지거나 변질될 때 나타나는 열매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복음을 잃으면 결국 죄의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다. 자유라는 이름의 방종, 자기중심적 사고, 무자비함과 자족함의 결여, 감사의 상실, 관계의 파괴가 그것이다. 복음이 힘을 잃을 때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성은 무너지고, 인간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세계로 되돌아간다.

또 하나의 특징은 변질된 복음의 등장이다. 인간은 죄의 결과를 어느 정도 알기에, 스스로 복음의 아름다움을 흉내 내려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 낸 ‘아름다움’은 생명을 살리지 못한 채 형식만 남긴 신앙을 낳는다. 자기 의라는 열매, 교만이라는 열매가 맺힌다.


결국 사람들은 각자 죄의 열매를 생산하며 스로 말세를 살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시대는 어떠한가.

세상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있는데, 빛은 힘을 잃고 소금은 맛을 잃어 간다. 교회의 십자가는 많지만, 복음은 생명력을 잃었다.

유사 복음은 복음의 일부를 닮았지만 사람을 살리지 못한다.

자유를 말하면서 양심이 마비된 신앙이 있고, 거룩을 흉내 내기 위해 율법으로 통제하며 관계를 질식시키는 신앙이 있다. 지식을 가르쳐 잠시 머리만 기쁘게 한 채 삶으로 흘러가지 않는 신앙도 있다.

얀네와 얌브레처럼 능력과 기적으로 사람을 현혹하지만, 그 기적이 관계와 생명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문제 해결이나 현실 회피의 도구로 전락하는 신앙도 있다.


이 모든 현상의 뿌리는 하나다. 복음이 순결을 잃었기 때문이다.


순결한 복음 안에는 자유와 질서가 함께 있고, 순수함과 성숙이 공존한다. 독립성과 관계성이 함께 있으며, 깨달음은 반드시 삶의 변화로 이어진다.


그래서 바울의 결론은 단순하다. 죽음을 앞둔 바울은 질서나 원칙을 강조하지 않는다. 그는 디모데에게, 그동안 생명 안에서 배우고 확신한 것에 머물라고 권한다. 거짓 교사들에게 흔들리지 말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그분과 함께 살아가며 그 생명을 나누라고 말한다.


순결한 복음은 그 자체에 힘이 있다. 원칙을 몰라도, 애써 거룩해지려 하지 않아도 생명은 스스로 살아난다. 기적이 없어도, 아버지를 알아 가고 나를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삶 자체가 기적이다. 그리고 인간 스스로는 순결을 지킬 수 없다. 오직 순결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받아 그 생명에 붙어 자라 갈 뿐이다. 이 순결한 복음만이 변질되지 않고 흘러가 나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며,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도 천국을 살게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디모데후서 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