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아마도 이 당시, 변질된 복음을 전하던 거짓 교사들과 율법주의자들은 바울을
‘율법 폐기론자’로 비난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성경과 율법의 역할을 누구보다 정확히 이해한 사람이었다.
한때 가장 철저한 율법주의자였던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구약 성경을 전혀 다른 빛 아래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바울이 전한 것은 율법을 폐기한 자유가 아니었다.
그가 증언한 것은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였다.
그래서 ‘율법 폐기론자’로 불리던 그가
디모데후서에서 성경의 유익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말한 성경은 신약이 아니라 구약이었다.
그리고 그 구약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유는
율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요 5:39)
바울은 또한 인간이 아무리 노력해도
율법으로는 의로워질 수 없음을 분명히 말한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2)
율법의 조항으로 아무리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가르쳐도,
마음에는 사랑과 화평의 열매가 아니라
정죄의 열매, 자기 의의 열매, 수치감의 열매가 맺혔다.
그 실패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아직 구원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뿌리가 죄에 박혀 있는 한, 죄의 열매밖에 맺힐 수 없었다.
그래서 바울은 다시 복음을 말한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딤후 3:15)
율법이 요구하던 것을 인간이 스스로 해내는 방식이 아니라,
예수와 하나 됨으로써 율법이 ‘이루어지는 인간’이 되는 것.
율법뿐 아니라 하나님의 최고의 법, 곧 생명의 법은
예수와의 연합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이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의 권위를 결코 부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구약 성경이 처음부터 끝까지
“율법을 지켜라”가 아니라
**“구원자와 하나 돼라”**고 말해 왔음을 드러낸다.
바울은 분명한 선을 긋는다.
“이 사람이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라”(행21:28)
— 율법주의자들의 비난
“또는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이는 우리가 이런 말 한다고 비방을 받는 것이라)
그 정죄는 마땅하니라.”
(로마서 3:8)
— 방종적 자유에 대한 비난
그는 거짓 교사들이 말하던 율법주의도 거부하고,
세상이 말하는 방종의 자유도 거부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구약 성경은 태초부터의 인간 역사를 가감 없이 기록함으로
인간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죄가 얼마나 잔인한 열매를 맺는지를 폭로한다.
그러나 그 모든 역사 속에서도
하나님은 사랑으로 인간을 포기하지 않으셨음을 증언한다.
그래서 오직 구원자를 통해서만
인간은 동물적 생존의 삶에서 끌려 나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답게 살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오직 예수와 하나 됨으로만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을 교육한다.
구약은 거울처럼 우리의 죄를 비추고,
손가락으로 구원자 예수님과 사랑의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붙든 길은 언제나 하나였다.
예수 안에서의 하나 됨.
그리고 디모데에게 말한다.
“내가 그 길을 걸었듯, 너도 예수님만 믿고 가라.”
이제 내가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안에서 다시 보게 된 모든 성경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이 나를 어떤 계획으로 창조하셨는지
(사랑하기 위해 )를 보여 주고,
어린 인간의 어리석은 선택 속에서도 스스로 어리석은 자녀의 잘못의 대가를 받으시고 (대속)
한 사람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주시고, 그 용납과 사랑 속에서 얼마나 아름답게 키워 가시는지(성숙)를 들려준다.
성경은 나에게 자녀를 향한 아빠의 태교일기이자
아빠의 양육일기이며, 아직 미완이지만 앞으로 내가 맺게 될 열매에 대한 약속의 사랑의 편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