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장

메리 크리스마스

by yukkomi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 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장 6절)

구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지옥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구원이 아니라 천국을 누리는 삶이 구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죄의 짓눌림, 죄책감의 짐에서 벗어나는 것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아름다운 성품에 참여하는 삶. 아마 그것이 구원일 것이다.

그 구원을 원하기에 인간은 종교를 만들어내는 것 아닐까?


인간은 스스로 구원받으려 무던히 애쓴다.

경건을 연습하고, 옳고 그름을 분별하며 의롭게 살려고 한다.

그리나, 그 의지와 결단도 결국 한계점에 다다르면 또다시 죄와 죄책감에 묶여 허덕이다 절망한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나 자신과의 관계도 무너진 채 계속 싸우면서도 또 무기력해져 있었다.

아무리 애써도, 그 지옥에서 빠져나올 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

나는 예수님이라는 생명의 근원을 만났다.

문밖에서 듣던 예수님을 문을 열고 만났다.

지식으로 알았던 예수님을 생명의 씨로 내속에 품었다.


이사야는 말한다.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다”라고.

힘 있는 왕도 아니고, 완성된 영웅도 아닌

순결한 아기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천상계의 신, 개념 속의 신으로 계신 것이 아니라 죄 속에서 허덕이는 나의 역사 속으로 몸을 입고 들어오셨다. 나의 의 때문에 온 것이 아니라 죄에 병들어 죽어가는 나에게 찾아오셨다.

그분은 ‘주어진’ 분이었다.

얻어낸 것도 아니고, 성취한 것도 아닌

아무 자격 없는 나에게 건네진 선물이었다.

그분의 어깨에는 정사가 메어져 있었다.

관계를 무너뜨린 책임을 나에게 묻지 않으시고 하나님 자신이 짊어지신 것이다.

인과응보를 따지는 나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스스로 벌을 받으셨다.


그분의 이름은 기묘자(Wonderful) 시다.

나의 얄팍한 지혜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묘한 방식의 구원을 이루셨다. 내가 그동안 벌여놓은 수많은 나의 죗값을 치르시고 죄속에서 자녀를 살려내는 방법...

이해관계와 이기심에 사로잡힌 나는 상상할 수 없었던 사랑의 지혜로 구원하셨다.

하나님의 지혜는 나의 깜깜한 죄속에서 선을 이루시고, 나의 불가능 속에서 의를 이루어 내시는

오로지 사랑에서 비롯된 지혜였다


그분은 모사(Counsellor)이시다.

명령으로 길을 지시하시는 분이 아니라

내 곁에 서서 인생의 수많은 시간을 함께 걸으며

내 뒤에서 뒷바라지하시며

이기심과 피해의식에 갇혀 자기중심적 판단과 관점으로 살던 나를 사랑의 관점으로 조금씩 바꾸어 주시는 분.

“이렇게 해라”가 아니라

“나와 같이 가 보자”라고 말씀하시는 분이다.


전능하신 하나님(The mighty God)이시지만

그 전능은 누르는 힘이 아니라

연약함을 끝까지 품어주시는 힘이었다.

내 영을 예수님의 씨를 가진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시고 부모가 되어주셔서 아빠의 성품에 참여할 때까지 끝까지 책임지시고 키워 가시는 힘이었다.


그분은 영존하시는 아버지(The everlasting Father)다.

조건에 따라 바뀌지 않는 관계,

실패해도 끊어지지 않는 사랑.

재판장이 아니라, 주인이 아니라

아빠로 오신 하나님.

그래서 그분은 평강의 왕(The Prince of Peace)이다.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사랑의 왕이시다.

그 안정되고 일관되고 풍성한 사랑의 양육 안에서 죽었던 관계가 서서히 숨을 쉬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


구원은 나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진행 중이다.

관계의 지옥,이기심의 지옥, 피해의식의 지옥에서 단번에 벗어난 것이 아니라

생명의 씨가 자라나면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다.

지옥이 천국으로 매일매일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변해가는 시간 속에 관계의 기쁨이 영혼에 맺히고 있다.

선악과를 여전히 따먹고 있지만 아빠가 먹여주시는 생명나무의 맛을 보며 생명나무를 더 먹게된다. 그러면서 용서하시고 기다리시는 생명나무의 열매가 조금씩 자라 가고 있다.

나의 믿음이 깨진 자리에 예수님의 믿음이 자라고, 내소망의 절망에도 예수님의 소망이 부활하며, 내 사랑은 무너지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조금씩 계속 자라나고 있다. 구원의 맛을 경험하고 있다.



메리크리스마스!!!

예수님이 내 안에 오심을 우리들 안에 오심을 기뻐하며 경배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디모데후서 3장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