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1장

순결한 복음 vs 유사복음

by yukkomi

복종치 아니하고 헛된 말을 하며 속이는 자가 많은 중, 특별히 할례당 가운데 심하니 [11]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뜨리는도다.

— 디도서 1:10-11


바울은 본문에서, 그레데 섬에 세워진 초대교회 안에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가정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교회에 들어온 할례당들이 율법이라는 ‘거룩’을 심었는데, 오히려 가정이 무너지는 이상한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현대 교회에서도 경건을 강조하고 말씀을 열심히 가르치며 순종을 외치지만, 가정은 점점 깨져간다.

왜일까?

이는 복음이 순결함을 잃고 변질되어 복음의 생명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유사 복음은 참된 복음과 너무 닮아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쉽게 속는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의 자유”와 “무조건적인 구원의 은혜”를 말하지만, 그 속에는 미묘하게 인간의 행위를 구원의 조건처럼 끼워 넣는다.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는 부족하다”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사람들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자극한다.

이것은 디도가 목회하던 그레데 교회에 침투한 할례당의 주장과 같다.

그들은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니 할례도 받아야 한다”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이처럼 유사 복음은 구원보다 심판을, 은혜보다 행위를 더 강조하며 복음에 인간의 행위를 덧붙인다.


물론 하나님의 심판은 필요하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조차 없다면 인간의 방종으로 세상은 죄로 가득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멸망이 아니라 구원이다.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시되, 사람을 그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구원하고자 하신다.


그런데 오늘날 일부 교회들은 이 하나님의 심판을 ‘공포 마케팅’으로 사용한다.

심판과 저주를 이용해 신자들의 두려움과 죄책감을 자극하고, 헌금과 봉사로 그 마음의 부담을 갚으라고 부추긴다.

그 결과, 복음은 거래가 되고 목회자는 심판자가 되어 그 이익을 취한다.

결국 지도자의 이익을 위해 율법을 이용하는것이다.


또 유사 복음에서 지도자는 말씀의 교사로 군림한다.

성경 말씀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자신에게 순종하는 교인들을 만들고, 말씀의 기준을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으로 바꾼다.

그리고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앉아 자신이 왕 노릇한다.

물론 구원받은 자에게는 삶의 변화가 나타난다.

하지만 변화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다.

그런데 유사 복음은 변화를 강조하며, “구원받은 자임을 스스로 증명하라”라고 말한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자들이 무언가를 해내며 불안함을 안심시키려는 속성을 이용해 당근과 채찍으로 훈련시키고 점수를 매기며,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변화는 결국 자기의, 교만, 정죄의 열매를 맺어 썩어간다.

겉보기엔 교회 안에서 아름다운 모습처럼 보이지만, 가정처럼 감출 수 없는 곳에서 그 열매가 결국 드러나기에 가정이 지옥처럼 변해간다.


무엇보다 유사 복음의 가장 나쁜 점은,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계산적이고 냉정하며 고집스러운 분으로 왜곡시킨다는 것이다.

순종하지 않으면 복을 주지 않는 분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오랫동안 이런 유사 복음의 두려움 속에 머문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만 사랑하지 못하게 된다. 경건 훈련의 도구로 사용된 말씀으로 내 수치감을 자꾸 비추어 하나님 앞에 서면 불편하고 죄송스럽게 느껴지게 만든다.


처음 은혜를 경험했던 사람조차도, 꾸준한 두려움의 가르침 속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격적 신뢰가 아닌 거래의 관계로 변질된다.

“내가 이렇게 했기 때문에 벌을 받는다”,

“이제 이렇게 해야 상을 받는다”는 식의 인과응보적 관계가 형성된다.

유사복음이 복음을 거래 관계로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모독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나의 죄 속에서도 구원을 이루시고, 나의 잘못된 선택 속에서도 자신의 의를 이루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순결한 복음은 '두려움'으로 전파되지 않는다.

참된 복음은 '구원'을 전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전한다.

순결한 복음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나눌 때' 전파된다.

순결한 생명의 씨가 가난한 밭 — 때가 되어 씨를 간절히 원하는 밭 — 에 심어지면 된다.

그 씨를 품고 농부이신 예수님께 꼭 붙어 있으면 된다.


복음의 순결함은 교육으로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씨앗처럼 한 사람의 내면에 심겨, 죄로 자라난 자아와 싸우며 천천히 자란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깎이고 벗겨지며 자라나는 길만이 순결한 복음이 유지되는 유일한 길이다.


[5]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 디모데후서 2:5


복음의 경주는 바통 이어달리기와 같다.

내가 새로 만든 바통을 건네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복음의 바통을 왜곡 없이 다음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순결한 복음의 경주이며, 하나님과 이웃과의 하나 됨이라는 상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경기 규칙이다.


공동체의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외형적 성장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의 질적 성장이다.

복음으로 태어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해지는 것,

그것이 복음 확장의 원리이다.


비록 한 사람 한 사람이 더디 자라더라도, 우리 새싹교회가 양적으로 급히 성장하지 않더라도,

종자 씨를 키우듯이 한 사람 한 사람 공들여 키워 가시는 아버지의 사랑에 잘 붙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아버지의 정원에 살며 그리스도의 생명을 간절히 원하는누군가에게 생명을 전하고, 기다리고, 받아주는 일 —

그것이 복음이 순결하게 퍼져나가는 유일한 길임을, 그 더딘듯한 성장이 하나님의 정확한 양육의 시간임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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