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은 말씀과 전해진 말씀
이 당시 복음을 받은 유대인들의 상황은 복잡했다.
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박해와 고난이 시작되자 다시 익숙한 것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그 익숙함이란 곧 율법이었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 직접 관계 맺기보다는
천사나 중재자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려는 '천사 숭배 문화'까지 교회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히브리서는 이러한 상황 속에 있는 유대인에게 쓰인 편지였다.
[1]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찌니 혹 흘러 떠내려갈까 염려하노라.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히 2:1~2)
저자는 **‘천사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과
**‘우리가 들은 말씀’**을 의도적으로 대비시킨다.
여기서 천사를 통해 전해진 말씀은 '율법'을 뜻하고, 들은 말씀은 '복음'이다.
율법은 천사들이 전해 준 것을 사람이 받아 공포한 것이었다
(갈라디아서 3:19).
율법의 순종과, 불순종에는 반드시 보응이 따랐다.
그러나 그 견고함이 곧 생명을 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율법은 왜 주어졌을까?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인간은 그 자유로 어긋난 선택을 했고,
사단의 꼬임을 받아 세상으로 나아갔다.
그 결과, 세상은 사단의 원리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인간은 죽고 죽이며, 죄 속에서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을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셔서 율법을 주셨다.
율법은 인간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제한선이었다.
인간이 완전히, 완전히 무너지지 않도록
더 이상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게 붙들어 둔 '하나님의 손'이었다.
그래서 율법은 심판 이전에 사랑이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보이는 대상을 따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율법과 함께
선지자와 사사와 왕이라는 지도자들을 허락하셨다.
올바른 지도자가 설 때는
하나님의 다스림 아래 평화가 유지되었지만,
그릇된 지도자가 서거나 지도자가 사라질 때마다
인간은 다시 죄의 본성으로 돌아가
서로를 물고 뜯는 싸움을 반복했다.
이렇게 인간은 스스로 지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어쩌면 이 반복되는 역사는
**“인간은 율법으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몸으로 배우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온 400년의 침묵.
선지자도, 예언자도 없는 시간.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던 시기.
이 침묵은 공백의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실존이 완전히 드러나는 시간이었다.
불안해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선지자가 되었다.
하나님이 주시지도 않은 규칙을 만들고
율법을 더 세분화했다.
그렇게 탄생한 이들이 바리새인들이었다.
천사를 통해 주신 율법은
“여기서 멈추라”는 경계선이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율법으로 의로워질 수 있다”로 바꾸어 버렸다.
그 결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점점 더 어렵고, 멀고, 무서운 분으로 왜곡해 놓았다.
율법을 아는 사람들은 지킬 수 없는 자신을 보며 죄책감에 허덕였고, 율법을 모르는 사람들은
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맸다.
바로 그때,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신다.
율법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오해 없이 보여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오셨다.
함께 먹고, 함께 울고, 고치고, 안아 주고,
사랑하며 천국을 선포하셨다.
그분 자신이
하나님의 성품이었고,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리고 결국 그 사랑 때문에 죽임 당하셨다.
인간은... 하나님까지 죽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을 배신한 인간을 끝내 버리지 않으셨다.
오히려, 하나님 없이 살다가 스스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들 인간들을 대신해 그 지옥으로 내려가셨다.
그곳에서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본성을 벗기시고,
순종의 사람으로 부활하셨다.
그리고 그 불순종을 이긴 순종의 씨를
우리 안에 생명으로 심어 주셨다.
그래서 생명을 소유한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누구를 통해 듣지 않고 친자 관계 속에서 직접 듣는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선택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생명을 받은 나에게도 자유가 있다.
자유 의지가 있다.
오늘도 나는 들은 말씀, 곧 복음의 말씀을 취할 것인지 천사를 통해 전해진 말씀, 율법의 말씀을 믿을 것인지 선택하고 있다.
종교는
“순종의 율법을 선택하라”라고 말하고,
사단은
“달콤한 자유의 소리를 들어라”
"네 마음이 이끄는 대로 상처로, 과거로 돌아가라"라고 속삭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나의 사랑의 음성을 들어라.
그리고 생명을 선택하라.”
예수님의 생명을 받고 다시 태어난 나는 때때로 잘못된 선택을 한다. 여전히 흔들린다.
하지만 점점 생명으로 자라남에 따라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믿을 수 있는 생명체, 사망을 선택하는 게 아니라 예수님처럼 생명을 선택하는 순종의 생명체로 자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불순종을 뚫고 자라시는 생명의 씨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미 내 안에 들어와 자라고 계신 생명자체의 능력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