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도 사랑이었다
[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브리서 2:10 )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아비를 잃은 자녀로, 소년가장으로,배신당하고 시험당하며,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인간의 시공간 안에서
인간의 삶을 끝까지 사셨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죄가 없으셨다.
예수님은 인간으로 사셨지만 하나님과 단 한 번도
분리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분이 스스로 심판의 자리에 서셨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를 죄 없으신 분이 대신 짊어지시고 인간이 죄로 인해 받아야 할 대가를
몸으로 치르셨다.
세상에도 심판은 있다.
심판이 없다면 세상은 인간이 만들어 낸 죄악으로
순식간에 지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의 심판이 질서 유지를 위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심판은 구원을 위한 심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진짜 심판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담으로부터 흘러내려온 인간의 죄성이다.
아담은 지혜로우신 하나님을 보며
스스로 지혜로워지려 했다.
“너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사단의 말에 속아 선악과를 따 먹었다.
'내가 판단자가 되겠다.
내가 왕이 되겠다.
내가 나와 세상의 구원자가 되겠다.'
이 어리석은 판단이 죄의 시작이었다.
그 이후 인간은 스스로 옳다고 믿으며 서로를 제거해 왔다.
열강의 왕들은 자기 생각이 선하다며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은 지식과 힘과 돈으로 서로를 밟으며 계급을 만든다.
모두가 왕이 되려는 세상에서 아무도 천국을 살 수 없다.
모두가 왕이 되려 하지만 모두가 지옥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 헛된 쳇바퀴에서 스스로 빠져나오지도 못한다.
나 역시 그 안에 있었다.
나는 가정의 심판자였고 왕이었다.
이게 가족을 살리는 길이라 믿으며 스스로 제사장이 되었고 구원자가 되려 했다.
그러나 그 지난한 노력의 결과는 정반대였다.
아이들과 남편은 점점 죽어 갔고,나는 무기력해졌으며
관계는 무너졌다.
한치 앞을 볼 수 없는양 같은 존재가
목자 노릇을 하겠다는 어리석은 생각,
내 생각만 옳다 여기며 내 아픔만 묵상하고 다른 사람을 헤아리지 못하는 '자기 중심성'
그것이 죄였고 심판의 대상이었다.
죄에 사로잡혀 지옥의 한 방울을 맛보며 죽어 가고 있을 때,언제나 나를 기다리시던 아빠의 손을 붙잡게 되었다.
그때 알았다.
‘아빠를 만난 것’이 곧 구원이라는 것을.
구원 이후에 알게 되었다.
인간은 선악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 아래서
생명나무를 먹을 때 비로소 지혜로워진다는 것을.
참된 지혜는 옳고 그름을 가르는 능력이 아니라
사랑이 자랐을 때 생긴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혼자서는 절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부모와 연결되지 않고,사람들과 사랑으로 연결되지 않고는 결코 살 수 없다는 것을.
그 관계가 수직적 지배가 아니라,수평적 사랑이 되지 않는다면 에덴동산조차 지옥이 된다는 것도.
이 모든 것은 선악과를 먹어 본 후에야 처절하게 알게 되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끝없이 죄를 생산하며
스스로 지옥으로 빠져 가는 인간에게 오셔서 우리가 받아야 할 죽음을 대신 받으시고,
완전히 죽기 전에 다시 아빠가 되어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사랑의 양육 속에서
내 안의 죄의 습관들을 하나씩 청소하고 계신다.
이제야
아빠를 후견인쯤으로 여기던 내가
비로소 아빠를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배우도록
사랑으로 인내하신 아빠의 사랑에 가슴 깊이 감격하게 되었다.
달콤하지만 사망으로 이끄는 사단의 생각을 먹는 것이 아니라,아빠의 사랑을 먹는 것이 사는 길임을 알게 되었다.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녀로 사는 삶,
그것이 진짜 행복한 길이었다.
구원은 단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매일 이루어지는 삶이다.
잘못 먹어 온 선악과가 하루하루 뱉어지고,
생명의 열매를 먹으며 자라 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종교는 말한다.
“구원받았으면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
그것은
머리로만 아는 구원이다.
아빠와 함께 사는 구원의 삶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나온 말이다.
나 역시 그 논리 안에서 죄책감에 시달렸고
성숙한 척 연기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 안다.
구원 안에는 아빠의 보호가 있고 자녀의 자유가 있다.
자녀는 자유 속에서 넘어지며 배우고,
아빠의 양육 속에서 자라
점점 사랑의 선택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를 살리는 존재로 자라난다.
구원의 완성은 사랑으로 하나 됨이다.
하나님 아빠와 그의 자녀들,
온 가족이 사랑으로 연결되는 삶—
그것이 구원의 완성일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목적은 구원이었고,
심판 또한 사랑이었다.
그것이 참된 사랑의 지혜였음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