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율립 Mar 06. 2019

<타짜>의 숨겨진 명대사들




영화 <타짜>에서는 아무 곳이나 틀어도 찰진 대사를 들을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대사 빨'이 절정을 자랑한다.


"싸늘하다 가슴에 비수가 날아와 꽂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눈보다 빠르니까",

"마포대교는 무너졌냐 새끼야"


절로 슬로모션의 고니가 패 돌리는 장면이 떠오르고, 곽철용의 기름진 건달 자태가 떠오른다.


그러나 <타짜>에는 이러한 잘 알려진 대사들 외에도, 우리 인생을 관통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숨은 명대사들이 여럿 나온다.

영화제에 '대사상'이 있었다면 분명 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모두 휩쓸고도 남았을 것이다.


타짜의 숨은 명대사들을 통해 오늘날을 고찰해본다.








1. "3년 동안 모은 돈을 다 잃었을 때, 고니는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니가 주식판에 빠졌더라면 도박할 현금도 없었을 텐데


예로부터 돈은 귀하고도 천했다. 황금에는 귀한 것 그리고 돌 같이 봐야 하는 것이라는 양가적인 진술이 붙었다. 자본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꽃 핀 세상이지만, 여전히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돈에 대한 경계심이 남아있다. 나 역시도 부자들을 위인으로 보는 사람들, 인생에서 죽어라 돈만 좇는 사람들을 천하게 보았다.


그러나 돈은 죄가 없다. 천한 냄새를 풍기는 범인은 돈 그 자체가 아니라 돈에 얽힌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마음들이다. 돈은 환산 가능한 모든 가치를 담고 있고, 심지어 환산이 불가능한 건강, 사랑, 우정도 돈이 없다면 어딘가 섭섭하다. 돈이 많다면 많은 것을 가질 수 있고, 동시에 많이 베풀고 나눌 수 있다.


고니가 3년 간 모은 돈을 잃었을 때 자신이 먹고 입을 것들이 떠올랐을까? 되려 어머니, 누나 등 주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도박판에서 소중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는 기회를 허공에 날려버리고, 그는 고독한 나락에 빠졌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구차해지거나 외로워진다. 그러나 주인공이 구차할 수는 없는 법이니 외로워져야지.




2. "끗발이 안 오른다 끗발이... 돈이 적어서 그런가?"


본디 음악 듣기 위해 클럽 가고, 혼잣말하려 화투 친다.


자본이 적으면 돈을 벌 수 없는 오늘날의 새로운 자연 질서를 보여준다. 끗발이 붙고 안 붙는 것은 하늘의 뜻이지만, 묘하게 돈 두둑하게 쌓아 놓은 사람에게 붙는 것 같은 건 왜일까?


동시에 이 대사는 오늘날 경력 없는 생취준생의 설움을 예견한다. 회사 면접장에 가면 찾지않아도 위협적인 경쟁자가 눈에 들어온다. 그들은 온 몸에서 왠지 모를 여유와 비즈니스마인드를 풍겨댄. 우연히 그들과 같은 조가 되어 면접장에 들어가면, 아니나 다를까, 도대체 왜 여기 있을까 싶을 정도로 괜찮은 회사의 현직자들이다. 화려한 현장 썰을 통해 면접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그렇게 생취준생들은 또 다음 기회를 기약하게 된다. 취업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다.


여차저차 최종 면접장에 가더라도 경력이 없다 보니 끗발이 안 선다 끗발이.





3. "세상이 아름답고 평등하면 우린 뭘 먹고사니?"


도박판만 피한다고 타짜를 조심할 수 있을까?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한국을 휩쓸었을 때, 그 현상의 원인이 대중들이 정의를 갈망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어느 정치인의 주장에 나는 코웃음을 쳤다. 대중들은 정의가 자신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주장하지, 실제로 정의 자체에 숭고한 가치 부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어떤 이들은 내심 불평등이 거기 있기를 원한다. 분명 저게 추하고, 사악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은 알지만 한 편으론 부정의함, 불평등이 계속 유지되기를 원한다. 그래야 혹시 나에게도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대한 이익이 돌아올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나 엄밀하게, 우리는 다른 사람보다 잘 살기를 원한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도, 이러한 속성을 가진 마음이 악하다는 것도 아니다.




4. "차비 줘서 보내. 손은 좋은데 탈이 안 좋아"

???: "아니, 타짜 기술 다 알려줬더니 이런 대사를?"


나는 얼굴의 어원은 '얼이 담긴 굴절' 즉, 사람의 얼이 나타나 있는 모양새...라고 창의적으로 상상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얼굴은 순 우리말이었다. 그래도 국어사적으로는 틀렸지만 영 쓸모없는 상상은 아닌 것 같다. 사람들은 얼굴을 보고 많은 판단을 내린다. 그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얼굴을 나의 해석대로, 그 사람의 내면이 담긴 그릇으로 인식한다. 그러니 내 해석은 실존적으로 옳다.


변화시킬 수 없는 얼굴에 관심을 둬서 뭐하겠나. 하지만 인상은 다르다. 타고난 이목구비에 기반한 인상이 아닌, 우리의 마음에 기반한 인상을 협의의 인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 인상은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신뢰하는지, 얼마나 좋게 보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호상은 호상을, 울상은 울상을 부른다. 즉 내 마음가짐이 우리가 보는 상대의 얼굴을 결정할 수 있다.


웃자. 그전에 웃는 마음을 갖자.


하루의 풍경이 달라진다.




5. "상상력이 많으면 그 인생 고달파"


국문과 81학번 아귀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노래에 유혹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돛대에 몸을 묶는다. 그리고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가 부인 페넬로페를 만나게 된다. 오디세우스에겐 상상력이 필요했다. 세이렌의 아름다운 노래에 젖지 않고, 끊임없이 페넬로페와의 재회를 떠올렸다. 이 사내는 결국 고통을 극복해냈다. 그리고 이야기는 이후로 수 천 년간 인류에 어떤 고통을 안겨준다.


이상을 좇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 것인가. 고된 것이 본인의 선택이고, 어려운 것을 충분히 알고 택한 길이라면 다행이다. 문제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다는 사실 뒤에 숨어 인생을 허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나는 눈부신 미래가 있으니 괜찮아."


정말 괜찮은 걸까? 이 의미가 비로소 게으름을 편하게 피우는 것과 동치가 될 때 우리 인생은 나락에 빠지게 된다.


적당히 이상을 상상하고 적당히 이상에 고달파 하자.


상상력이 너무나 풍부해서 손모가지 날아간 아귀를 떠올리며.








스콜세즈가 한국에서 나고 자랐을 때.

<타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