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걷다

하늘을 달리다

Tash Rabat, Naryn

by Yule

요즘은 수도 비슈케크를 벗어나야만 키며 든다는 말을 (키르기스스탄에 스며들다의 준말) 백만 번 실감하고 있다. 주중에 차량으로 가득한 거리가 주말엔 한산할 만큼, 이곳에 사는 사람들조차 주말엔 도시에 머물지 않는다.


사실 내향인에게 주말 전체를 집 밖에서 보낸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다. 하지만 이제는 업무로부터 나를 온전히 분리하기 위해서라도 도심밖을 나선다. 뭐 데드라인이 급박한 정책 문서 조율이나 다양한 시간대에서 걸려오는 online call은 이제 적응되어 괜찮은데 문제는 Backstopping이다. 원래 계획보다 최대한 앞당겨 귀국을 하고 싶어 휴가를 아끼고 아껴 저축을 하다 보니, 어느새 여름휴가로 2주씩 자리를 비우는 동료들의 업무를 가득 업고 있다. 무자비하게 들어차는 미리 공부하고 들어가야 하는 회의들 속에, 내 일을 자투리로 해야 하는 실정이라니..


그래서 오늘도 떠난다. 문명에서 벗어나 자연의 품에 폭 안길 수 있는 곳으로. 주말이라도 머리를 비워놔야 한다. 이번엔 멀고 먼 여정의 나린 (Naryn)이다. 대부분 지역이 해발 2,000-4,000m 이상의 고지대로, 빙하, 고산 호수, 강, 넓은 초원을 모두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전통 유목문화인 자일로(Zhailoo)가 남아있어 아직 여름이면 가족 단위로 초원으로 이동하며 유르트에서 가축을 방목하며 살고 있다. 무엇보다 나의 관심사인 중국과 로마 제국, 동양과 서양, 유목과 농경, 이슬람과 불교 등 서로 다른 문명들을 연결하던 실크로드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크로드는 그저 물건을 옮기던 길을 칭하는 것 같지만 단순한 ‘선형 경로’가 아니라, 수많은 분기점과 지역적 네트워크로 구성된 복합 경로이다. 키르기스스탄엔 중국 서부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톈산(Tian Shan) 산맥 중턱 해발 약 3,200m에 카라반사라이가 남아있다. 옛 실크로드를 따라 상인과 여행자들이 머무르던 숙소였던 이 석조 건물은 타시 라밧 (Tash Rabat)이라 불린다. 15세기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앙 돔을 중심으로 30여 개의 방이 이어진 제법 규모 있는 건물이다. 이 돌여관을 보기 위해 차를 타고 꼬박 일곱 시간 인근 유르트 숙소에 도착했다. 인터넷도 없는, 끝도 없이 펼져진 야생화가 바람에 산들거리며 노래하는 이 땅은, 숨 쉬는 것만으로도 긴 여정의 목마름을 채워주었다.


에델바이스가 은은하게 수 놓인 비단 같은 산자락에
도레미송이 빠질 수 없지


숙소에서 도보로 30분 정도 천천히 걸어가면 타시 라밧이 나온다. 먼 여정을 걸어온 사람들에게 숙소이자, 동물 보관소, 그리고 안전한 피난처 역할하던 이곳은 전통적인 이슬람 건축 양식과 중앙아시아 건축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현대 기준으로보면 규모가 크진 않지만 초원 위에 위풍당당하게 서있어서 인지 요새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안으로 들어서면 돌로 지어진 돔형 천장과, 중앙홀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방이 나온다. 천장엔 작은 채광구가 있어 햇살이 스며드는데 서늘한 방에 작은 온기를 가져다준다. 마치 고요한 돔 위에 뜬 별처럼, 자연광을 건물 속으로 끌어들이는 장치랄까. 당시 중국으로 이어지는 실크로드 동쪽 길목에 있던 이 건물은 주로 중국 신장 위구르 자치구인 카슈가르(Kashgar) 방향으로 가던 상인들이 쉬던 거점이 되었다고 한다.

원하면 건물 위도 자유롭게 올라갈 수가 있는데 하늘과 연결된 신성한 공간인 중앙돔 그리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산맥가 냇물이 흐르는 전경이 내려다 보인다. 돌 기둥 사이 그늘을 찾아 등을 기대고 앉아 잠시 쉬었다. 멀리 여유자적 말을 타거나 연을 날리며 자연 속에 녹아든 가족단위의 사람들이 보인다. 문득 중국 국경과 가까운 오지 그중 가장 외진 고원지대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이 되지 않을 만큼 아늑하고 포근함이 느껴진다. 생각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아서 인지 이질적 문명이 충돌하지 않고 공존하며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던 실크로드와 이곳이 퍽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투어를 함께 온 사람들과 함께, 냇가를 따라 천천히 오래전 낙타를 타고 걸었을 길을 걸어 숙소로 돌아왔다.



수많은 문명이 말을 달리며 지나가고, 낯선 언어와 음식, 노래가 어우러진 문화의 교차로였던 이 길 위엔 언제나 오늘처럼 경이로운 자연이 있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깎아지른 듯한 협곡, 별이 쏟아지던 밤하늘, 고요히 눈 덮인 산봉우리와 그 품에 피어난 에델바이스처럼, 자연은 그 길을 걷는 길동무이자 위로가 되어주었을 것만 같다. 물론 해발 3천 미터를 넘는 고산지대는 여름에도 영하로 떨어지는 변화무쌍함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잠시 쉬어가며 함께 길을 만들었기에 그 여정이 이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실크로드는 지금도 단순한 옛길로 기억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연결과 교류, 사람과 생각, 문화와 신념이 스며든 길로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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